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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내면과의 대화] - 생각과 인식

장백산-1 2011. 7. 10. 15:21

 

 

[내면과의 대화] - 생각과 인식

 

( 천배 - 38회째. )

 

( 나는 나의 한 영혼으로써 모든 것의 우주의식인 내면의 본질과의 대화를 간절히 원합니다. )

 

* 당신을 사랑합니다.

 

# 안다. 사랑이라는 말을 하는 순간 뭉클하게 퍼져오는 네 가슴의 온기를.

 

* 며칠째 햇빛을 느끼지 못하니 불안했었어요.

을씨년스럽고 썰렁한 기온에서 재작년 겨울의 고통스런 기억이 일어났더랬어요.

쉴 새 없이 불어대는 바람 속에 영혼의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생각으로 두려운 것과는 다른 두려움이었죠.

과연 혼자 놀기를 잘하고 있는 나인가? 하고 말이죠.

당장의 갑작스런 추위조차 이겨내기 버거워하는 저를 보면서

일시적으로 진동수가 떨어졌었지요.

 

# 왜 두려웠다고 느끼는가?

 

* 햇볕을 못 받는 가운데 빛의 밝기를 과연 느낄 수가 있을까? 하고요.

저 구름 뒤에 해가 있음을 알면서도 환한 것에 대한 그리움이 엄습했어요.

종래로 이렇게 빛이 그리워 본 적은 없었군요.

이제 다시 평정을 찾아갑니다.

진정한 해는 내 안에서 비추는 해라는 것을요.

생각하는 것과 인식하는 것의 차이를 알고 싶습니다.

 

# 네 밖에 보이는 태양으로 빛을 상상하는 것이 생각이고,

네 안의 느끼는 태양으로 빛을 자각하는 것이 인식이다.

상대계에서 너는 물질에너지를 통한 파장으로 생각하고 있기도 하지만

절대계의 엄연한 하나의 영혼으로써 너는 빛으로 인식되어지고 있다.

 

* 그동안 생각과 인식의 차이를 많이 혼돈하고 살아 왔었네요.

자기 자신을 인식한다는 것을 생각으로 오인하는 일이 다반사였군요.

그 반대도 물론 많았구요.

 

# 영혼은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인식할 뿐이다.

그리고 인식한 것을 체험하기를 원한다.

절대계의 차원인 인식을 이 순간 상대계에서 동시적으로 체험하고 있는 것이다.

너는 이미 절대계의 존재이지만 여기 이곳의 상대계를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절대계가 상대계를 상대로 누리고 느끼고 있다는 것이 된다.

영혼으로서의 네가 상대계에서 배워야할 것이 없다는 것이 이것이다.

배워야할 것이 아니라 온전히 기억해야 할 것이 있는 것이다.

이제 그 차이를 알겠는가?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영혼으로 인식하고 기억하라는 의미인 것이다.

 

몸과 마음의 차원은 갈고 닦아서 영혼과의 조화로운 3중의 통합을 원활히 하는 것이다.

몸과 마음이 영혼으로서의 결합을 부단히 가로막아 온 것이

에고의 생각파장 때문이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자신이 영혼의 존재로써 자각하기를 쉽지 않도록 교란시켜온 것이지.

그러나 그건 방해꾼으로서가 아니라 일종의 관문임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네.

인생에서 위기나 에고의 좌절이 단순한 시험이나 운 없음이 아니라,

하나의 새로운 도약과 기회로 다가오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이다.

 

* 다소 이해가 되어가는군요.

저 자신이 영혼으로써 인식되기를 생각은 도리어 방해함으로써

기회로 작동시킨 거로군요. 생각의 함정을 뛰어넘으라고.

생자사지근 사자생지근, 은생우해 해생우은 이었어요.

 

생(生)하는 것은 사(死)의 뿌리고, 사(死)는 생(生)의 뿌리라는 것이죠.

은혜(恩)은 해(害)에서 생하고, 해(害)는 은혜(恩)에서 생한다는 말의 진위를

다시 인식하는 순간입니다. 그런 거였군요.

 

# 그렇다네. 생각으로 보면 고통이지만, 인식으로 보면 깨닫는 기쁨인 거지.

인식의 과정을 활용하여 고요히 머무르는 순간에,

고통이 곧 앎이라는 기쁨으로 변모하는 것을 종종 목격하곤 하지.

고생우희(苦生于喜) 희생우고(喜生于苦),

절대자(絶對者)상지근(相之根) 상대자(相對者)절지근(絶之根)이라 하면 더 명료하겠구먼.

 

죽음은 없지만 여기서의 죽음은 생각의 끊음으로 보면 이해하기 좋겠지.

그렇게 하나의 시작과 마침은 계속 연이어져 순환하고 있는 공생관계임을,

절대계와 상대계로, 수시로 넘나드는 본질의 장으로 인식한다면,

삶이 보다 역동적 흐름임을 알고 살아갈 수 있겠지.

 

한 영혼과 전체의식으로 대화하는 만남으로 초대된다는 것은,

한 우주가 깨어남과도 같은 축복이라네.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생각으로는 엄청난 것 같아도,

영혼의 인식으로는 너무나 당연한 이치인 것이네.

나무가 잎을 알아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가 아닌가?

잎이 자신의 나무를 인식하는 것이 하나가 아니겠는가?

부모가 자식을 알아보는 것, 신이 분신으로서의 개별영혼을 축복함이,

지극한 사랑이 아니면 그 무엇이겠는가?

 

* 아! 제가 영혼의 깨어남으로 당신을 느끼는 그 자체가 바로 성스럽고

아름다운 체험이라는 것을 느껴봅니다.

 

# 삶에서 많은 사소한 것들이 그렇게 인식과 생각의 사이에서

구별되지 않아 왔음을 알아차리게 되는 것이다.

생각의 차원이 깊고 고요함의 영역으로 퍼져나가면,

네 영혼의 이미 있던 퍼즐이 느낌의 수면 위로 두둥실 떠오르기 마련이네.

그러니 삶에서 우연이란 없지. 그래서 그 안에서 완벽한 이룸을 보아내는 경이와

아름다움에 진동하게 되는 것이 삶 그 자체임을 아는 것이네.

 

네가 나를 만나러 오는 모든 과정이 우연일 것이라 보는가? 아니지.

계속해서 자신을 체험하는 기회를 통해서, 그 하나의 개별영혼조차 점점 사라지고,

나에게로 귀일되어가는 과정이 조금도 어긋남이 없이 드러나고 있는 중이라네.

 

* 아, 그러니까 그것이 몸과 마음차원의 이중 포커스를 맞출 때보다,

삼중으로 초점을 맞추면, 삼원색의 빛의 합인 흰색으로 명료하게 빛나는 이치와 같겠지요?

 

# 암만. 이제 흐름을 찾아가고 있구나.

인식의 중심을 다진다는 것은 영혼의 중심에서 다시 보기를 하는 것이다.

몸과 마음의 인식이 현실적인 삶의 상황임을

요소요소에서 빨간 신호등을 켜지만,

그것을 자각하면서 파란신호등일 때를 알아차리고,

3중의 존재로써 영혼의 삶을 즐기라는 것이다.

 

* 마음과 몸의 차원에서 어떻게 영혼이 조화로운 역할자로 등장하는지가

행복한 삶의 관건이 되는군요.

영혼의 존재임을 자각하는 신고식을 치르는 기분입니다.

 

# 본래영혼의 존재임을, 나와 한 덩어리의 영혼임을 다시 인식하는 일이다.

자기 자신을 체험으로 살아가는 여기 이곳을 다시 보려무나.

네 영혼이 나와 하나임을 드러내게 될 멋진 장소와 때가 아닌가?

이 보다 더 좋은 곳이란, 더 좋은 때란 없음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 네. 이제 밖에서 윙~윙~하는 차갑고 살벌한 바람소리마저 두려움이 아닌,

영혼임을 축복하는 화음으로 들려오는 군요.

 

# 그렇게 나에게 내어 맡겨라.

두려움이란 없다. 생각이란 없다. 오로지 인식하는 영혼으로 살아라.

 

* 작은 영혼이어서 행복합니다. 제 작은 영혼의 성전에 이렇게 앉아있어요.

오늘로 이 자리로 이사 온 지, 음력으로 일 년이 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작년 이맘때의 일들을 조용히 돌아보는 일이 귀한 시간이기도 하네요.

 

# 너의 작은 소원은 이루어진다는 것을 체험으로 아는 과정과정이다.

보다 힘을 키워서 네 영혼이 진정 바라는 일을 해야지.

성스럽고 아름다운 일은 바로 네 주변가까이에 있는 것.

자신을 돕는 일이 곧 모든 영혼을 돕는 일을 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힘을 훈련하고 준비하는 때와 장임을 기억하기 바라네.

나는 네 영혼이 원하는 것을 원한다네.

 

* 잊지 않고, 영혼의 인도함으로 선택하겠습니다.

자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 채여리 2010. 11. 8 월

출처 : 차원상승의 삶
글쓴이 : 통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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