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의 주례사 [금고옥조]입니

[스크랩]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는 사실이 있다 23 - 여덟째 가름 : 부처님이 가르친 것과 오늘날의 세계 - 3,4

장백산-1 2011. 7. 18. 13:07
 

여덟째 가름 : 부처님이 가르친 것과 오늘날의 세계 -- 3


  불제자가 되려고 할 때 반드시 거쳐야 될 입문의식(또는 세례)은 없다.(그러나 승가의 일원인 비구比丘가 되려면 장구한 과정의 계율 훈련과 교육을 거쳐야 한다.) 어떤 이가 부처의 가르침을 이해한다면, 그리고 그 가르침이 올바른 "길"이라고  확신을 품게 되어 따르려  애쓴다면 그이는 불제자이다. 그렇지만 불교국가에 이어져 내려오는 오랜 전통에 의한다면 일반적으로 "세 보물"(三寶)이라 부르는 부처와 가르침(法)과 동아리(僧)를 자기의 피난처로 삼아야  불제자로 여겨지게 된다. 그리고 속가제자가 지켜야될 최소한의 윤리적 의무인 "다섯 계율"(Panca-sila;五戒)을 지킬 것을 약속한다. 다섯 계율은 ⑴생명을 파괴하지 말 것(不殺生), ⑵훔치지 말 것(不偸盜), ⑶간통을 범하지 말 것(不邪淫), ⑷거짓말을 하지 말 것(不妄語), ⑸취하는 음료를 마시지 말 것(不飮), 등인데, 옛 경전에서 주어진 문구대로 낭송한다. 불교의  종교적 절기의 법회에서 승려의 선창에 따라 이 구절들을 낭송한다.


  불제자가 거행하지 않으면 않되는  외형적인 예식이나 의식은 없다. 불교는 살아가는 방법이어서 필수적인 것은  다만 "거룩한 여덟 길"에 따르는 것뿐이다. 물론 모든 불교국가에는 종교의 절기에 소박하고 아름다운 의식이 있다. 절에는 불상과 탑(stupa)이나 부도(dagabas) 그리고 보리수를 모시는 제단이 있다. 거기에 불제자들이 예배를 드리고 꽃을 공양하며 등불을 켜고 향을 사른다.[각주3] 이것은 유신론唯神論적 종교에서 하는 기도 행위와는 전혀 다르다. 이것은 길을 알려준 스승을 기념하여 경의를 표하는 방법일 따름이다. 이런 전통적 행사는 필수적이진 않지만 지적으로, 정신적으로  미숙한 사람들에게 종교적 감흥과  요구를 만족시켜주고 그 사람들이 점차 길에 들어서도록 도와주는 데에 그 나름의 가치를 지닌다.



[각주3] <역주> 상좌불교 지역에서는 이러한 것만을 공양한다. 우리네 절집안에서는 돈, 쌀, 과자, 과일 같은 것들을 바치고 있는데, 좀 생각 해 볼 문제가 아닐런지 .....


       여덟째 가름 : 부처님이 가르친 것과 오늘날의 세계 -- 4


  불교가 오로지 고상한 이상과  지고한 도덕적, 철학적 사상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민중들의  사회적, 경제적 복지는 무시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잘못 안 것이다. 부처는 인간의 행복에 관심이 있었다. 도덕적이고 정신적 원리에 기초한 순수한 삶을  살아나가지 않고서는 행복을 누리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물질적, 사회적  조건들에 무관심하고서는 그런 삶을 살아가기가 어려움을 부처는 알고 있었다.


  불교는 물질적인 부 자체를 목적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것은 목적을 위한 수단, 즉  더 높고, 더 거룩한 목적을 위한  수단일 따름이다. 그러나 그것은 필수불가결한 수단, 즉 인간의 행복을 위해 지고한 목표를 성취키 위한 필수불가결한 수단이다. 그래서  불교는 정신적 성공에 도움이 되는 어떤 최소한의 물질적 조건에 대한 요구를 인정한다. 심지어 어떤 외딴곳에서 명상에 전념하는 승려까지도 그러하다.[각주4]


[각주4] 승가의 일원인  불교 승려는 사유재산의 소유를  바랄 수 없지만 공유재산(Sanghika;僧家物)을 소유하는 것은 허용된다.

  부처는 삶을 사회적, 경제적 배경의 맥락에서 벗어난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부처는 삶을 전체적으로, 즉 모든 사회적, 경제적 그리고 정치적 측면에서 바라보았다. 윤리적, 정신적 그리고 철학적 문제들에 대한 그의 가르침은 아주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회적, 경제적 그리고 정치적 과제들에 대한 그의  가르침은 조금 밖에 알려져있지  않다. 특히 서양에서 그러하다. 그러나 이것들을 다룬 수 많은 설법이 고대 불경들에 흩어져있다. 그 예를 조금만 들어보기로 하자.

 《디가-니까야》의《짝까밧띠시하나다-경Cakkavattisihanada-sutta》({轉輪聖王修行經}長阿含6)은 가난(daliddiya;貧窮)이 도둑질, 거짓말, 폭력, 증오, 잔학, 등등의 부도덕과 범죄의 원인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옛날 왕들은 오늘날의 정부들과 같이 범죄를 형벌로 진압하려고 애썼다. 같은 니까야의 《꾸타단따-경Kutadanta-sutta》({究羅檀頭經}長阿含23)은 이것이 얼마나 무익한가를  설명한다. 이 방법으로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고 말한다. 대신에 부처는 범죄를 뿌리뽑기 위해선 민중의 경제적 형편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제안하였다. 농업을 위해선 농부와 경작자에게 종자와 다른 시설들이 제공되어야  한다. 무역업자와 상업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자본이 제공되어야 한다. 노동자에겐 충분한 임금이 지급되어야 한다. 이렇게 민중에게 충분한  수입을 벌어들이기 위한 기회가 제공된다면 만족하게 될 것이며, 불안감이나 고민을 갖지 않게 되어서 결과적으로 국가는 평화로워져서 범죄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이런 이유로 부처는 경제적 형편을 개선시켜주는 것이 평민들에게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했다. 이것이  욕망과 집착으로 재산을 긁어모으는 것을 용인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부처의 기본적인 가르침에 반대된다.


뿐만 아니라, 생계를  벌어들이는 것은 무엇이라도 허용한  것도 아니다. 우리가 앞에서 보았듯이 무기의 생산과 판매같이 부처가 사악한 생계수단이라고 비난한 돈벌이도 있다.


  한번은 디가자누Dighajanu라는 사람이  부처를 찾아와서 말했다. '선생님. 저희는 처자식과 더불어 가정생활을 꾸려 가는 그저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세존이시여. 이 세상과 저 세상에서 저희들의 행복에 도움이 될 만한 어떤 교리를 가르쳐 주십시오.'


  부처는 그에게 세속적 삶의 행복에 도움이 되는 것이 네 가지가 있다고 말한다. 첫째, 어떤 직업에  종사하건 간에 기술이 좋아야하고, 유능해야하며, 열심히 일해야하고, 활기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하는 일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한다(utthana-sampada;努力具足).  둘째, 이마에 땀을 흘리고 정당하게 번  수입을 지켜야 한다(arakkha-sampada;守護具足).(이는 재산을 도둑등으로부터 지켜야 한다고 암시하는 것이다. 이 모든 개념들은 시대적 배경과 대조하여 고려되어야 한다.)[각주5] 셋째, 믿음직하고, 학식이 있으며, 덕망이 있고, 도량이  넓으며, 지적인 친구, 해악에서 떠난 바른길에 들도록 도와줄 친구, 그런 훌륭한 친구가 있어야 한다(kalyana-mitta;善友). 넷째, 수입을 알맞게 나누어서 너무 많지 않게 그렇다고 너무 적지도 않게끔 써야 한다.  즉, 게걸스럽게 재산을 긁어모아도 않되지만 사치스럽게 살아도 안 된다. 다시 말해 분수에 맞게 살아야 한다(samajivikata;等命).


[각주5] <역주> 당시는 격동기였고  제정일치의 신분 질서가 붕괴되는 혼란기였다. 특히, 육사외도의 한 사람인 뿌라나 까사빠Purana Kassapa는 '어떤 일을 하던지 또는 시키던지, ..... 생명을 해치더라도,  도둑질을 하더라도, 타인의 집에 침입하더라도, ..... 강도질을 하더라도, ..... 타인의  처와 통하더라도, 거짓말을 하더라도,  이런 짓을 해도 악을 행한 것이 되지 않는다.  설령, 날이 선 무기를 갖고서 이 세상의 생물을 모두 하나의  고기더미나 고기덩이로 만들어도 이것으로 인하여 악이 생기는 것도 아니며,  또한 악의 과보果報가 오는 것도 아니다.'[D. II, pp.17~18,  中村元, 《佛敎의 本質》, 19~20쪽에서 인용]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나서 부처는 내세來世에서 평신도의  행복에 도움이 되는 네 가지 미덕을  설한다. ⑴"믿음"(Saddha;信): 도덕적, 정신적,  그리고 지적 가치들에 대해 믿음과 확신을 가져야 한다. ⑵"계율"(Sila;戒): 생명을 파괴하고 해를 입히는 것을 금해야  한다. 훔치고 사기치는 것, 간통하는 것, 거짓말하는 것, 그리고 취하는 음료를 금해야 한다. ⑶"베품"(Caga;捨): 자기 재산에 대한 집착과  열망을 버리고 자비와 너그러움을 길러야 한다. ⑷"지혜"(Panna;慧):  괴로움을 완전히 파괴하고  열반을 실현토록 이끌어주는 지혜를 개발하여야 한다.


  어떤 때는 부처가 돈을 저축하고  쓰는데 대해 세부적으로 가르친 일까지 있었다. 예를 들면 시갈라라는 젊은이에게 말할 때 수입의 사분의 일은 일상의 지출로, 반은 사업에 투자하고, 사분의 일은 어떤 위기에 대비하여 남겨두어야 한다고 하였다.


  한번은 부처가, 대  부호이며 가장 헌신적인 평신도  제자의 한 사람이며, 유명한 사밧티(舍衛城)의  기원정사를 설립해준 아나타삔디까에게 평범하게 가정생활을 하는 재가자에겐 네 가지 행복이 있다고 말했다. 첫 번째 행복은 경제적 안정, 또는 충분한 재산을 정당하고 올바른 수단으로 벌어서 향유하는 것이다(atthi-sukha). 두  번째 행복은 재산을 너그럽게 자신과 가족과 친구와 친척 그리고 바른 일에 쓰는 일이다(bhoga-sukha). 세 번째 행복은 빚이 없는  것(anana-sukha), 네 번째 행복은 생각으로나 말로나 행동으로나 간에 해악을 저지르지  않고 오점없이 순수한 삶을 사는 것이다(anavajja-sukha). 여기서 이들 중에 세 가지가 경제에 대한 것임과 더불어, 궁극적으로 부처는  경제적, 물질적, 행복은 더러움이 없고 훌륭한 생활에서 나오는 정신적  행복의 '16분의 1의 값어치도 없다'라고 그 부호에게 상기시킨 것에 주목해야 한다.


  위에 주어진 몇 가지 예에서 부처는 경제적 부를 인간의 행복에 필요한 것이라고 여겼지만, 오로지 물질적이기만 해서 정신적, 도덕적 근본이 결여된 것이라면 진정하고 진실된 발전이라 인정치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불교는 물질적 발전을 고취시키면서도  사회가 행복하고 평화스럽고 만족되기 위한 윤리적 정신적 성격의 발전을 언제나 대단히 강조해 왔다.

출처 : 옥련암
글쓴이 : 산빛노을(원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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