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의 주례사 [금고옥조]입니

[스크랩] 아름다운 마무리

장백산-1 2011. 7. 10. 02:30

아름다운 마무리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때그때 삶의 매듭들이 지어진다.
그런 매듭을 통해서 안으로 여물어 간다.
흔히 이 육신이 내 몸인 줄 알고 지내는데
병이 들어 앓게 되면 내 몸이 내가 아님을 인식하게 된다.
내 몸이지만 뜻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병을 치료하면서 속으로 염원했다.
이 병고를 거치면서 보다 너그럽고, 따뜻하고, 친절하고,
이해심 많고, 자비로운 사람이 되고자 했다.
묵묵히 서있는 겨울나무들을 바라보고
더러는 거칠거칠한 줄기들을 쓰다듬으며
내 속에 고인 말들을 전한다.




겨울나무들에게 두런두런 말을 걸고 있으면
가슴이 따뜻하게 차오른다.
삶의 비참함은 죽는다는 사실보다
살아 있는 동안 내부에서 무언가가 죽어 간다는 사실에 있다.
꽃이나 달을 보고도 반길 줄 모르는 무뎌진 감성,
저녁노을  앞에서 지나온 삶을 되돌아볼 줄 모르는 무감각,
넋을 잃고 텔레비전 앞에서 허물어져 가는 일상,
이런 것이 죽음에 한 걸음씩 다가섬이다.

깨어 있고자 하는 사람은 삶의 종착점에 이를 때까지
거듭거듭 새롭게 일깨워야 한다.





조선 영조때 사람,
유중림이 지은 <산림경제> 중 '독서 권장하기'에 이런 글이 실려 있다.
"글이란 읽으면 읽을수록 사리를 판단하는 눈이 밝아진다.
그리고 어리석은 사람도 총명해진다.
흔히 독서를 부귀나 공명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독서의 진정한 즐거움을 모르는 속된 무리다"

송나라 때의 학자 황산곡은 말했다.
"사대부는 사흘 동안 책을 읽지 않으면 스스로 깨달은 언어가 무의미하고,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기가 가증스럽다"
  
배가 고프면 음식을 먹듯이
사람은 정신의 음식인 책도 함께 받아들여야한다.
1년365일을 책다운 책 한권 읽지 않고 지내는 사람이 있다면
그의 삶은 이미 녹슬어 있다.

옛글에 또 이런 구절이 있다.
"어릴 때부터 책을 읽으면 젊어서 유익하다.
젊어서 책을 읽으면 늙어서 쇠하지 않는다.
늙어서 책을 읽으면 죽어서 썩지 않는다."






삶은 순간순간이 아름다운 마무리이자
새로운 시작이어야 한다

아름다운 마므리는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일의과정에서. 길의 도중에서
잃어버린  초심을 회복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근원적인 물음
‘나는 누구인가?’하고 묻는 것이다.

삶의 순간순간마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는 물음에서
그때그때 마무리가 이루어진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내려놓음이다.
내려놓음은 일의 결과,

세상에서의 성공과 실패를 뛰어넘어
자신의 순수 존재에 이르는 내면의 연금술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비움이다.
채움만을 위해 달려온 생각을 버리고
비움에 다가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마무리는 비움이고
그 비움이 가져다주는 충만으로 자신을 채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살아온 날들에 대해
찬사를 보내는 것.
타인의 상처를 치유하고  잃어버렀던 나를 찾는것.
수많은 의존과 타성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홀로 서는 것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용서이고. 이해이고. 자비이다.


현재의 나 자신은  과거의 나 자신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달라져야 한다.
그래야 날마다 새로운  날일 수 있다.
벽에 걸어 두었던 족자를 떼어 내고 빈 벽으로 비워둔다.
그 빈 공간에 그림없는 그림을 그린다.
그 자리에 무었을 걸어둘까 하는 생각만으로도 넉넉하다.
무엇인가 채워지지않은 여백의 운치를  누리고자 해서다.




한동안 내가 맡아 가지고 있던 것들을 새 주인에게 죄다 드리고 싶다.
누구든지 나와 마주치는 사람들은  내게 맡겨놓은  것들을 내가 먼 길 떠나기 전에
두루두루 챙겨가기 바란다.
그래서 이 세상에 올 때처럼 빈손으로 갈 수 있도록 해 주기 바란다.

살아있는 모든것은  때가되면 그 생을 마감한다.
이것은 누구도 어길 수 없는 생명의 질서이며 신비이다.
만약 삶에 죽음이 없다면  삶은 그 의미를 잃게될 것이다.
죽음이 삶을 받쳐주기 때문에 그 삶이 빛날 수 있다.

 


출처 : 사리암
글쓴이 : 소나무의 지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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