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의 주례사 [금고옥조]입니

[스크랩] 일체유심조란?

장백산-1 2011. 7. 28. 23:01

 

 

흔히 "일체 유심조" 하면 모든 것은 마음을 대상 따라서 이렇게도 저렇게도 쓸수 있는것으로 잘못 설명 하는 분이 많다 유명한 이성계와 무학대사의 대화도 그렇다 자기 마음이 돼지면 상대가 돼지로 보이고 자기 마음이 부처면 상대가 부처로 보인다는 말을 가지고 자기 마음을 이렇게,  저렇게, 자기 편리한데로 쓸수 있는것이라고 해석하는 경우를 본다

 

이는 일수사견과 같이 똑같은 물도 아귀는 불로 고기는 집으로 사람은 물로 천인은 유리로, 중생들의 업 따라서 이렇게 저렇게 보인다는 것은 자기 마음이 중심이 아니라 자기 마음이 대상 따라서  흔들리고 있다는 해석이다 중생들은 이와같이 한가지 물을 놓고도 여러가지 차별상을 나타내고 있다(차별상에서 보면 이우주는 십법계가 전개된다)

 

그러나 이 모든 차별상은 겉모습만 보고 사는 중생심이 나타내는 차별상에 불과하고,실제에 있어서는 다 똑같은 한 마음의 여러 작용임을 알수 있다 화엄경에서는 이를 두고 화가가 백지상에 자기 마음대로 그림을 그려내는 것이 갖가지 차별상을 그려내는것 같지만 이는 한마음이 그려내고 있는 일심의 세계(법계)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육십 화엄경(六十華嚴經 卷十 夜摩天宮菩薩說偈品)의 보살림 보살(如來林菩薩)의 게송에서 말한다. "심여 공화사(心如工 師) 마음은 뛰어난 화가와 같아서 화종종 오음( 種種五陰) 갖가지 오음으로 그림을 그리나니 일체 세간중(一切世界中) 모든 세간 가운데 무법 이부조(無法而不造) 법마다 그리지 못할 것이 없느니라 -

 

"일체 유심조"는 화엄경 의 "약인 욕요지 삼세 일체불 응관 법계성 일체 유심조"에서 온 말이다  (만약에 사람이 삼세의 일체 부처님을 알고저 할진데는 마땅히 법계의 성품을 관하라 일체가 마음뿐이니라) 이말은 부처님이 깨달으신 "영원한진리 연기법"이 제법의 구성요소로 되어있는 법계를 살펴보라는 말이다(법계성)

 

그러면 법계성을 정견하는 그 마음이 바로 깨달은 마음이다(식심견성), 그러므로 일체 유심조는 일체(삼계,만법)가 그대로 마음임을 말하고 있다 . 이 마음을 깨치면 누구나 부처다(심즉시불)

우리는 삼법인에서 일체 모든 현상은 고정 불변한것이 아니고 변하는것 이므로 제법은 무상하고 고이고 무아 임을 확인 한바 있다

 

우리 몸은 조건적으로 찰라 찰라 화하고 나투는것이여서 사실은 법성의 작용에 불과 한것이다 실재로 나라고 할만한 몸은 그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영원히 있는 것은 "조건적인 활동상을 보여주고 있는 법계성" 뿐이다 그래서 법계가 법성이요 법성이 법계이므로 일체즉 유심인것이다 일진 법계가 그대로 한마음의 세계(체용일치)다

 

따라서 여기 일체유심조에 오며는 일진법계의 평등한 성품을 바로보고 깨달아서,"지금 여기있는 현존이 바로 깨달은 그 마음의 지은바요 그 부처의 나툼 "이라는 의미로 이해 해야한다 문맥상으로 보드라도 삼세부처님을 알고자 하면..법계성을 봐라..법계성을 보면 일체가 유심조다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는 화엄경의 사구게에 나오는 말씀이다. 약인 욕요지(若人 欲了知) 삼세 일체불(三世 一切佛) 응관 법계성(應觀 法界性) 일체 유심조(一切 唯心造) 만약 여러분이 과거 현재 미래 모든 부처를 명백하게 알고자 하는가? (그렇다면) 법계의 근본을 잘 관조해 보라-. 

 

그러나 여기서 조심해야 할것은 앞에서 말한  심여 공화사나 일체 유심조를 마음이 창조주라는 말로 알아서는 안된다 일체라는 것은 사실은 찰라 찰라 변하여 고정 된것이 없는것인데 사람들이 있는 것으로 착시 현상을 일으키는것에 불과하고 실재는 이것 있으면 저것 있는 변화상으로써 그자체가 조건성이요 관련성이요 상의성이다 따라서 일체 만법 그대로 자기 마음의 조화요 마음 뿐 인것이다

  

그런데 마음이 모든법의 근본이라는 취지에서 말한 원효스님의 말씀도, 결과적으로는, 지난밤에 먹었을때는 아무 이상이 없었던 그 물인데, 새벽에 그 물이 해골물임을 보고 역겨운 마음이 생겼다는 말이니  새로 생긴 이 마음은 대상따라 흔들리는 중생심임을 깨달았다는 말이다 

 

원효스님이 해골물을 마시고 나서 "마음이 생기면 종종의 법이 생하고 마음이 멸하면 안과 밖이 다르지 않네"라고  한것은 종종의 차별 현상이 나타 나는 것은 중생심 이요 이 중생심을 멸하면 모든 차별심이 없어져 부처의 마음이 된다는 것이다 스님은 해골물에서 이 도리를 깨치셨다  

 

삼계가 마음이요 만법이 오직 식 뿐인데 마음밖에 따로 구할 무엇이 있으랴!

이 또한 양변을 떠난 중도의 마음이다 모든것은 이 마음이 빚은 것이다 이 마음은 그만큼 자유 스럽고  평등하고 평화스러운 마음이다 이제 의상스님은 몰라도 원효 당신은 이제 중국 가서 따로 구할 법이 없어져 버렸다 

 

원효스님이 일체유심조의 도리를 깨달은 뒤 읊었다는 게송이다. 心生卽種種法生 心滅卽龕墳不二 三界唯心 萬法唯識 心外無法 胡用別求 (심생즉종종법생 심멸즉감분불이 삼계유심 만법유식 심외무법 호용별구) 마음이 생하는 까닭에 여러 가지 법이 생기고 마음이 멸하면 안과 밖이 다르지 않네 삼계가 오직 마음이요, 모든 현상이 또한 식(識)에 기초하니 마음밖에 아무 것도 없는데 무엇을 따로 구하랴 -

 

따라서 대상 따라서 움직이는 중생의 차별심에서 보며는,마음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중생의 마음이 될수도 있고 부처의 마음이 될수도 있다 하겠으나, 깨달은 부처의 마음으로 보면,마음은 양쪽을 떠나 다 통해 있으므로,물결이 물이듯이 일체가 그대로 마음 뿐이라 이 마음으로 살면  어디서나 주인공이요 참인 것이다

 

그래서 마음과 중생과 부처 이 셋은 아무런 차별이 없다 한것이다 이는 중생과 부처가 본래 둘 아닌 평등한 일심(중도)인데 다만 중생은 그 차별 경계만 보고 사는것에 불과하다 그래도 본질적으로는 중생이 붇다이지 중생 놔 두고 붇다가 따로 있는것은 아니다  삼세의 모든 부처님이 다 이 마음을 깨달아서 그 마음으로 된 부처다

 

-여심 불역이(如心佛亦爾) 마음과 부처 또한 그와 같으며
여불 중생연(如佛衆生然) 부처와 중생 역시 그와 같아서
심불 급중생(心佛及衆生) 마음과 부처와 중생 시삼 무차별(是三無差別) 이 셋은 차별이 없느니라." -


 

 마음을 깨치면 그 마음이 부처인 것이지 마음을 떠나 부처를 따로 구해서는 안된다 마음 따로 부처 따로가 될수 없는 것이다 부처를 마음밖에서 구하고 찾고 하는사람은 부처를 자기 마음안에서 찾지않고 딴데서 구하는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부처를 보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보면 조사를 죽여야  진불(참된부처)을 본다고 한다

 

부처는 양변을 떠난 그 마음을 깨치신 분이다 " 이것 있으면 저것 있고 이것 없으면 저것 없는것" (사성제의 환멸연기의 도리) 을 아는 바로 함이 없이 하는 그 마음을 깨친자 이다

팔정도도 양변을 떠난 이 마음을 행하는 중도행이다

 

마음으로 법성을 깨닫고(지혜) 그 마음에 흔들림이 없이(선정)계행을 실천하면(지계) 그것이 계정혜 일심이다

이 일심 그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면 그 사람이 바로 부처다 일체 유심조의 사상과 하나도 다를 바 없다 

이 마음은 시공을 초월해 언제 어듸서나 무엇으로 되어 있든지 간에 항상 변함이 없다

 

한마음 일진 법계에서 보면 나무 사람 땅 하늘 이 모든것이 다 부처아닌 것이 하나도 없다 모두가 부처의 위치에서 조건적인 작용을 일으키며 자기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 마음에서 나타난 일체의 변화상을 보고 그 경계에 떨어져 좋다 궂다 끄달리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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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공덕총림 덕림회 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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