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메일

'나'로 사는 것이 아니고 내안에 있는 '불성'으로 살아진다.

장백산-1 2011. 8. 4. 14:46

'나'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내안에 있는 '불성'으로 살아간다

( It is no longer I who live; but it is Buddha nature who lives within me.)

 

불교에서 최고의 목표로 생각하는 성불(成佛)이란 무엇일까?
부처의 경지를 실현하여(깨달아서) 부처님이 된다는 말인데, 과연 그것은 무슨 말일까?

 
아주 상식적으로 말해보면 '인간의 잠재력을 완전히 실현한다(To realize the full potential of human nature)'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우리 모두가 원하는 바가 아닌가. 그렇다. 그러기 위해 인간은 교육을 하고, 자기를 개발하고, 자아을 성취하고자 한다. 모두 완전한 능력을 개발하여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노력한다. 영원한 행복과 무한한 생명을 꿈꾸면서, 인간은 자기를 완전히 실현하고자 한다. 그래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은 아니 모든 생명은 성불하기 위해서 살아간다. 초월적 인격신을 믿는 종교에서는 구원받아 영생의 복락을 누리기 위해서라고.


무한한 것이 가능하게 태어난 유한한 존재인 인간은 끝없이 영적인 여행과 모험을 계속해왔다. 그 결과는 두 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인간 스스로의 노력과 수행으로 완전한 경지를 이루는 것이고(이것은 자력自力의 길) 다른 하나는 초월적인 존재의 은혜에 힘입어 구원을 얻는 것(이것이 타력他力의 길)이다. 겉으로 보면 달라 보이는 자력과 타력의 길은 사실 동전의 양면과 같고, 빛과 어둠의 댄스와 같아 서로가 서로를 당겨주고 밀어준다. 알에서 깨어나오고자 하는 새는 알껍질을 안에서 부터 밖으로 쫀다. 그러면 스승(인간)이나 초월적 존재(神과 불보살)의 영적인 힘이 동시에 밖에서 부터 안으로 쪼아준다. 그 찰라 알이 깨어지면서 새로운 신천지가 전개된다. 깨달음이요 구원이다.

알에서 깨어나오고자 하는 사람이여, 그 간절한 마음이 진실로 온 몸과 마음이 아플만큼 간절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종교생활도 또 다른 세상잡사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갇혀진 영혼이 괴로워 몸부림치는 이여, 불성의 공덕과  불보살(신)의 은총은 차고 넘쳐서 누리에 가득한 것을 기억하고 믿으시라. 그 크고 무한한 사랑은 풀잎 하나도 빼놓지 아니하며 티끌 하나도 놓치지 아니하느니, 우리는 이미 그 안에 있고, 그 속에 살고 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To be saved is to be in Christ."-구원은 그리스도와 같이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는 일상생활을 하되 불성속에서 호흡하고 먹고 마시고, 불성으로 살아가라는 말이지 않겠는가.

 

 내안에 깃들어 있는 무한 차원인 불성 혹은 신성(그리스도의 성품)과 항상 연결되어 있음을 때때로 확인하여야 한다. 그 연결을 잊어버렸다면 온몸으로 아파하고 즉시 되돌아와 그 관계를 회복하여야 한다. 여기에 일상생활과 영성 사이의 긴장이 있다. 이 긴장이 바로 나로 하여금 깨어 있게 한다. 새벽이 오기를 학수고대하는 장닭처럼,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신부처럼, 우리는 정신의 새벽이 밝아올 그 때를 놓칠 수 없다.

 

'내가 나를 살지 말게 하시고, 내안에 있는 그리스도가 나를 살게 하소서'라고 기도하는 바울 처럼 우리 불자들은 내안에 깃든 불성으로 일상을 살아가기를 기도한다. 불성이 담긴 손길로 이웃의 손을 잡아주고, 불성이 담긴 눈으로 세상을 보기를. 그리하여 껍데기 세상속에서 불성이 일으키는 놀라운 사랑을 체험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