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제록}을 통한 선 공부 / 김태완
3 말하지 않고 말할 줄 알아야
나에게는 남에게 줄 한 법(法)도 없으니, 나의 모든 말은 다만 병을 치료하고
묶인 것을 풀어주기 위한 것일 뿐이다.
그대들 제방의 도 닦는 이들이여!
시험삼아 사물에 의지하지 않고 나와 보라. 내 그대들과 더불어 의논하고자 한다.
5년 10년이 지나도 한 사람도 없고, 모두가 풀잎과 대나무에 붙어 사는
정령(精靈)이요 들여우요 도깨비로서, 온갖 똥덩어리를 어지러이 씹어
먹고 있구나. 이런 눈 먼 놈들은 온 세상 신도들의 보시(布施)를 헛되이
소비하면서도, "나는 출가한 사람이다"라고 말하며 이러한 견해를 짓고
있는 것이다. 내 그대들에게 말하노니, 부처도 없고 법도 없고 닦음도 없고
깨달음도 없다. 그런데도 이와 같이 엉뚱한 곳에서 무엇을 구하려 하느냐?
눈 먼 놈들은 머리 위에 또 머리를 놓으려 하지만,
너희들에게 도대체 무엇이 부족하냐?
도(道)는 어디에 있는 무엇인가? 선(禪)을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가?
부처를 어디에서 만날 것인가? 본성(本性)을 어떻게 볼 것인가?
말을 따라 가지 않고, 말에 속박되지 않고, 말에 속지 않는다면, 이 모든
말에 그대로 아무런 허물이나 문제가 없다. 말이 그대로 모두 진실하며,
말이 그대로 모두 여여(如如)하며, 말이 그대로 모두 실재(實在)이며,
말이 그대로 모두 평등하여 한 마디의 말도 생겨나거나 없어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도(道)가 그대로 말이면서 도(道)요, 선(禪)이 그대로 말이면서
선의 실천이요, 부처가 그대로 말이면서 지금 여기에서 만나는 부처요,
본성이 그대로 말이면서 지금 보고 있는 본성이다. 말이 곧 도(道)요,
생각이 곧 선(禪)이요, 욕망이 곧 부처요, 느낌이 곧 본성이요,
육체가 곧 본래면목(本來面目)이다.
<반야심경>에서 물질이 곧 공(空)이며, 느낌이 곧 공이며, 생각이 곧
공이며, 의지가 곧 공이며, 의식이 곧 공이라고 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반야심경>도 없고, 물질도 없고, 공(空)도 없고, 느낌도 없고,
생각도 없고, 의지도 없고, 의식도 없고, 나아가 없음도 없어야, 비로소
<반야심경>의 말을 참으로 소화한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말에 속고 말에 속박되고 말을 따라 다니기 때문에, 도(道)를 찾아 헤매고,
선(禪)을 실천하지 못하여 고민하고, 부처를 만나지 못하여 안타까와 하고,
본성을 보지 못하여 절망하는 것이다. 생각에 속고 생각에 속박되고 생각을
따라 다니는 것도 마찬가지며, 느낌과 욕망에 있어서도 같다.
말이나 생각이나 느낌이나 욕망이나 육체를 따라가고 속박되고 속음으로써
온갖 번잡스런 일들이 있고, 온갖 번민이 있으며, 온갖 세상사가 펼쳐진다.
그러나 어떤 것에도 따라가거나 속거나 속박되지 않는다면, 본래 아무 일도
없고 아무 것도 없고 풀어야 할 어떤 문제도 없고 채워야 할 어떤 부족함도
없고 도달해야 할 어떤 목표도 없다. 따라서 속박되고 속아서 따라다니는
것이 바로 이른바 중생의 일이고, 그런 일이 없는 것이 바로 부처의 일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부처의 일을 하며 부처의 삶을 살 수가 있을까?
말하지 않고 말을 하며, 글 읽지 않고 글을 읽으며,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며,
보지 않고 보며, 듣지 않고 들으며, 걷지 않고 걸음을 걸으며, 행동하지 않고
행동할 줄 알아야 한다. 이렇게 할 줄 알면 지금 이 글을 읽음에 아무 허물이
없겠지만, 이렇게 할 줄 모르면 단 한 글자에서도 허물을 면하지 못하리라.
자! 어떻게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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