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스크랩] 5 나는 어디에 있는가?

장백산-1 2011. 10. 11. 14:35

『임제록』을 통한 선 공부 / 김태완

 

5. 나는 어디에 있는가?

대체로 <1>을 읽고 있을 때에는 인상이 찌푸려 질 것이고 때로는 속조차 좋지

않을 것이다. 반면에 <2>를 읽을 때에는 인상이 펴질 것이고 속도 편안할

것이고 때로는 미소조차 얼굴에 번질 것이다.

이런 면에서 <1>에 있는 것들과 <2>에 있는 것들은 분명 다른 것들로 실감이 된다.

<3> 이제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스스로를 바로 돌이켜 보라. 눈을 어디에 두고

발은 어떻게 하고 코에는 어떤 냄새를 맡고 손에는 어떤 촉감을 느끼고 귀에는

무슨 소리가 들리고 어떤 생각을 하면서 지금 이렇게 글을 읽고 있는가?

지금까지 짧은 시간이지만 여러 생각과 느낌과 감각들이 나타나고 사라지는데,

이 모든 생각과 느낌과 감각들은 모두 나(我)에게서 나타나고 사라진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나타나기 전이나 나타날 때나 지나갈 때나 지나가고난

지금이나 나에게 달라진 것이 무엇인가? 아마 느낌이나 몸의 상태나 생각이나

욕망과 같은 것들은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그대로 달라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경험들이 달라지고 있는 바로 그 지점에 늘 그대로 머물러 있다.

경험들은 매 순간 지나가고 있고, 지나가고 있는 바로 그 곳에 늘 한결같이

내가 있다. 매 순간 나는 달라지는 다양한 경험을 나 자신에게서 느끼고

알아차리면서, 나 자신은 늘 그렇게 경험 속에 있다. 그러나 내가 경험과

떨어져서 경험과 마주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지금 이 순간 나타나는

경험과 따로 있는 별개의 존재가 아니다. 나는 지금 여기의 경험을 떠나서

따로 찾을 수가 없다. 나를 찾는 행위 자체가 나의 경험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더라고 늘 나는 나의 경험 속에 있다.

그러나 지금 여기의 경험 속에서 스쳐 지나가는 경험과는 달리 나는 늘 이

자리에 변함 없이 있다. 그러한 나를 알겠는가?
그대들 제방에서 오는 자들은 모두 마음을 가지고, 부처를 구하고 법을 구하며,

해탈을 구하고 삼계에서 벗어나기를 구한다. 어리석은 사람들아, 그대들은

삼계를 벗어나 어디로 가려 하느냐? 부처와 조사는 숭상하여 잡아맨 이름일

뿐이다. 그대들이 삼계를 알고자 하는가? 삼계는 그대들의 지금 법을 듣는

마음 바탕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대들이 한 생각 마음에 탐내는 것이 욕계이고,

그대들이 한 생각 마음에 성내는 것이 색계이며, 그대들이 한 생각 마음에

어리석은 것이 무색계이니, 이들 삼계는 그대 집 속의 가구들이다.

삼계가 스스로 ‘나는 삼계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들 눈 앞에서

신령스럽게 만물을 비추고 세계를 헤아려보는 사람이 삼계에다 이름을

붙이는 것이다.

자! 지금부터 한 번 시험삼아 살펴보자.

다음의 글을 천천히 잘 읽으면서 그 뜻을 충분히 음미해 보자.

<1> 욕설, 똥, 악취, 시궁창, 주정꾼이 거리에 토해 놓은 음식 찌꺼기, 바퀴벌레,

 뱀, 건달, 깡패, 술주정, 시비, 돈이 없음, 불명예, 시기, 질투, 식욕, 성욕, 욕설,

분노, 사기, 파렴치, 비열, 도둑질, 강도, 살인, 강간, 성추행, 모욕감, 싸움, 원한,

두려움, 공포, 걱정, 피로, 몸살, 아픔, 중생, 어리석음, 지옥, 고통, 후회.

<2> 칭찬, 싱싱한 딸기와 사과, 감미로운 장미의 향기, 맑은 계곡물, 시원한 바람,

상쾌한 물소리, 착하고 정직한 사람, 포근함, 안정감, 사랑, 행복, 상쾌함, 즐거움,

웃음, 유쾌함, 우정, 믿음, 격려, 안도, 건강, 풍족함, 따스함, 돈에 대한 무관심,

명예에 대한 욕망 없음, 지금 이대로 만족함, 지금 이 순간 더 바랄 것이 없음,

편안함, 부처, 깨달음, 지혜, 해탈, 초탈.

 

대체로 <1>을 읽고 있을 때에는 인상이 찌푸려 질 것이고 때로는 속조차 좋지

않을 것이다. 반면에 <2>를 읽을 때에는 인상이 펴질 것이고 속도 편안할 것이고

때로는 미소조차 얼굴에 번질 것이다.

이런 면에서 <1>에 있는 것들과 <2>에 있는 것들은 분명 다른 것들로 실감이 된다.

<3> 이제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스스로를 바로 돌이켜 보라. 눈을 어디에

두고 발은 어떻게 하고 코에는 어떤 냄새를 맡고 손에는 어떤 촉감을 느끼고

귀에는 무슨 소리가 들리고 어떤 생각을 하면서 지금 이렇게 글을 읽고 있는가?

지금까지 짧은 시간이지만 여러 생각과 느낌과 감각들이 나타나고 사라지는데,

이 모든 생각과 느낌과 감각들은 모두 나(我)에게서 나타나고 사라진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나타나기 전이나 나타날 때나 지나갈 때나 지나가고난

지금이나 나에게 달라진 것이 무엇인가? 아마 느낌이나 몸의 상태나 생각이나

욕망과 같은 것들은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그대로 달라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경험들이 달라지고 있는 바로 그 지점에 늘 그대로 머물러 있다.

경험들은 매 순간 지나가고 있고, 지나가고 있는 바로 그 곳에 늘 한결같이

내가 있다. 매 순간 나는 달라지는 다양한 경험을 나 자신에게서 느끼고

알아차리면서, 나 자신은 늘 그렇게 경험 속에 있다. 그러나 내가 경험과

떨어져서 경험과 마주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지금 이 순간 나타나는

경험과 따로 있는 별개의 존재가 아니다. 나는 지금 여기의 경험을 떠나서

따로 찾을 수가 없다. 나를 찾는 행위 자체가 나의 경험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더라고 늘 나는 나의 경험 속에 있다.

그러나 지금 여기의 경험 속에서 스쳐 지나가는 경험과는 달리 나는 늘

이 자리에 변함 없이 있다. 그러한 나를 알겠는가?

 


출처 : 무진장 - 행운의 집
글쓴이 : 유당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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