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제록』을 통한 선 공부/ 김태완
4. 변함 없는 공간
도 닦는 이들이여! 그대들 눈 앞에서 작용하는 이것은 조사나 부처와 다르지 않다.
다만 그대들이 믿지 않기 때문에 곧 밖에서 찾지만, 착각하지 말라!
밖에는 법이 없고, 안에서도 법은 얻을 수 없다. 그대들은 나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취하기 보다는 일 없이 쉬는 것이 좋다. 이미 일어난 것은 이어가지 말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은 일어나도록 버려두지 않으면, 이것이 그대들이 10년
법을 구하여 돌아 다니는 것보다 더 낫다. 나의 견처에는 많은 것이 없다.
다만 평상(平常)하게 옷 입고 밥 먹으며 일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 뿐이다.
나(我)는 어디에 있는가?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 도(道)는 어디에 있는가? 부처는
어디에 있는가? 자성(自性)은 어디에 있는가? 지금 이 질문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도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확인 된다. 아무리 멀어도 눈 앞을 벗어나지 않으며,
귓 가를 떠나지 않으며, 머리 속을 넘어서지 않는다. 도는 너무나 가까이 있어서
가깝다는 말도 해당되지 않는다. 도는 지금 이렇게 도를 묻고 찾는 움직임과
한 덩어리라고 해야 할 것이다.
도는 지금 눈 앞에서 귓 가에서 머리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과 한 덩어리라고
해야 할 것이지만, 눈 앞에 나타나 보이거나 귓 가에 울려 들리거나 손 안에 잡히는
그런 사물은 아니다. 도를 확인하는 경험은 평소 우리가 사물을 알아차리는 경험과는
성질이 사뭇 다르다. 그러므로 도에 관해서는 어떤 추측이나 예상도 알맞지 않다.
비유하자면 이와 같다. 여러 개의 방이 있는데, 각 방마다 구조며 벽지며 가구며
치장이 제각각 다양하고 독특하여서 서로 잘 구별된다. 우리는 각 방마다 들어가서
제각각 다른 모습을 보느라고 정신이 빼앗겨 있다. 그리하여 수십 개의 방을
거치면서 방마다 다른 모습에만 관심이 쏠려서, 이전 본 방과 비교하기도 하고,
이 방이 좋은가 저 방이 좋은가 하고 따지기고 하고, 어떤 방은 기억 속에 담아
두기도 하고, 어떤 방은 쉽사리 잊어버리기도 한다.
수 많은 다양하고 새로운 모습의 방을 거치면서 우리는 새로운 모습에 항상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만, 그러나 한편으로 의식의 한 구석에는 변함 없이 한결같은
무언가가 자리잡고 있음도 느끼고 있다. 그러다 문득 어느 순간 이렇게 다양한
치장물들은 방의 핵심적 요소가 아니라 다만 가변적인 것일 뿐이고, 진실로 방의
제거할 수 없는 본질은 내가 들어와서 걸어다니고 치장물들을 넣었다 뺏다 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깨달음은 지금까지 방을 돌아보고 찾아보고 알아본 경험과는 성질이 전혀
다른 새로운 경험이다. 방의 구조나 벽지나 가구나 치장이라는 모양들에 관심을
기울이고 살펴보고 알아보는 것과 공간을 깨닫는 것과는 사뭇 다른 점이 있다.
그러나 일단 공간을 깨닫게 되면, 이 공간이야말로 그 수 없이 다양한 모양의
방들에서도 한결같이 방이 방일 수 있도록 해주는 본질적 요소임이 명명백백하여
도무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된다. 또 방들의 수 없이 다양한 모습들에도 불구하고
공간이 변함 없이 그 모든 모양을 담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무언가
안심시켜주고 안정되게 해준다.
우리가 매 순간 순간 경험하는 의식이 바로 이러한 방 구경과 같다. 의식에서
경험하는 내용은 늘 다양하기가 한정이 없지만, 그 모든 의식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이 변함 없는 것은 의식의 허공이다. 수 많은 모습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허공이 늘 이 자리에 있어서 안정을 주고 있다. 이 허공을 깨달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