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가 되면 해는 저절로 뜬다 / 일타스님
무착선사는 진성연기를 알아서완전히 공(空)과 더불어 상응하였기 때문에,
내 마음 이외에 나타나는 것은모두 사(邪)임을 알고 허공 속의 문수보살을
주걱으로 치면서 물리쳤던 것입니다.
진정 수행인이 온전히 공을 체득하게 되면,
그의 일거수 일투족(一擧手一投足)에는아무런 조작도 없게 될 뿐 아니라
아무런 걸림도 없게 됩니다.
산하대지(山河大地)가 나와 더불어
한 뿌리를 이루고 천지만물이
나와 더불어 한 몸이 되어서,천진난만한 세계로 그냥 돌아가게 됩니다.
또 이런 경지에 들어가면 티끌 수와 같이많은 세계가 그대로 진여(眞如)
한 모습을 나타냅니다.
참 마음자리의 공무(空無)를 체득하여
어떠한 걸림도 없게 되는 것!
이것이 기도를 비롯한 각종 수행의 끝입니다.
부처님을 돌로 만들었든 쇠로 만들었든
나무로 만들었든 기도인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오직 요행수를 바라지 않고
지극정성을 드리면
모든 업장이 소멸되고복은 저절로 생기게 됩니다.
신앙심, 곧 타력(他力)에 너무 깊이 의존하면
마침내는 자기의 속까지 빼주게 되므로,
타력신앙을 통하여 일정한 경지에 이르게 되면
오히려 이를 경계해야 합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 있듯이,
기도인은 반드시 자력(自力)을 가지고타력(他力)을 믿어야 합니다.
곧 타력에 의지할 지라도 진성연기의 도리를분명히 알고 의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도 소원을
이룰 수 있게 하는 비결이요,
기도를 통하여 해탈을이룰 수 있게 하는 요긴한 가르침입니다.
법문을 들을 때는 모름지기
모든 생각을 비우고 들어야 합니다.
속효심도 내지 말고
나태심도 내지 말라.
슬금슬금 가다 보면
해돋을 때 아니올까.
이 옛 노래는 인생살이에 대한
큰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부지런히 간다고 하여해가 빨리 뜨는가? 아닙니다.
느릿느릿 간다고 하여해가 늦게 뜨는가? 아닙니다.
해는 뜰 때가 되면 저절로 뜹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일을 함에 있어조급증도 품지 말고
게으름도 부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원리는 법문을 들음에 있어서도그대로 적용됩니다.
깨달음은 조급함이나 게으름과
함께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무엇과 함께 하는가?텅 빈 마음과 함께 합니다.
마음이 완전히 비어 있을 때법문은 온전히 나의 것이 됩니다.
번뇌의 구정물이 꽉 찬 곳에맑은 물을 부어 보십시오.
물의 탁한 기운이 묽어지기는 하겠지만역시 구정물이 될 수 밖에
없듯이, 잡된 생각으로 가득 찬 마음에법문을 담으려고 하면
제대로 담기지 않는 법입니다.그러므로 먼저 마음을,
곧 모든 번뇌망상을 비우라고 한 것입니다.
실로 법문을 들음에 있어서는
나에게 맞는다는 생각이나
맞지 않는다는 생각,못한다는 생각까지도 비워야 합니다.
법문을 잘한다 못한다,재미있다 재미없다는 생각도
모두 번뇌망상이기 때문입니다.이와 같은 번뇌망상들을
완전히 비울 때 감로수(甘露水),
곧 감로의 법문이 고스란히담기게 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법문은 말로 설명하고
귀로 듣는 것이 아닙니다.
빈 마음으로 설하고빈 마음으로 듣는 것입니다.
법문을 들을 때는 아무리
좋은 생각이라 하더라도
번뇌망상에 불과합니다.
이를 분명히 자각하여 마음을 비우고법문을 듣게 되면 깨달음의 기연은
반드시 찾아들게 마련입니다.이것이 법(法)의 문(門)을 열고
법의 집 안으로 들어가는
요긴한 비결입니다.
똑같은 법문을 듣고어떤 사람은 도를 깨치는데
어떤 사람은 도를 깨치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태양과 같은 광명을 뿜어내고어떤 사람은 더욱 암담해지기도 합니다.
독을 만들 것인가,젖을 만들 것인가?
보리(菩提, 깨달음)를 이룰 것인가,생사를 이룰 것인가?
그 열쇠는 각자가 쥐고 있습니다.
마음 가득 번뇌망상을 담고
말만 배우고자 하거나
지식 충족의 수단으로
법문을 듣는다면 생사 이외에는이루어낼 수 있는 것이 없지만,
스스로가 온전히 마음을 비우고법문을 들으면 틀림없이
깨달음을 이룰 수 있습니다.
부처님과 모든 선지식이한결같이 말씀하셨듯이,
모름지기 마음을 비우고법문을 듣도록 합시다.
머지 않은 날,틀림없이 깨달음이 찾아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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