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의 주례사 [금고옥조]입니

성불은 행불로 부터---

장백산-1 2012. 6. 18. 12:39

 

 

 

                                           성불(成佛)은 행불(行佛)로 부터

성불(成佛)은 행불(行佛)로 부터 바로 지금 여기 이 瞬間에
自身의 主人이 되어 完全 燃燒하자. 아는 만큼 傳하고, 가진 만큼 베풀자. 行佛 합시다. 오늘 여러분들께 三寶에 對한 冥想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삼보에 대한 명상은 초기경전에 나오는 말씀인데
三寶에 대한 冥想을 읽고,
眞理에 盟誓를 하면 超越的인 힘이 생긴다고 합니다.
神通力이 생기는 것입니다. 어떤 超越的인 힘이 생기느냐?.
지구촌의 재앙이 줄어들어 마침내 消滅될 수 있는 힘입니다. 最近 地球村 災殃이 엄청나게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지진, 쓰나미에 이어 원전사고로 인한 방사능 유출까지. 또 우리나라는 구제역, 조류 독감이 발생하는 등 어느 한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地球村 全切에 災殃이 오고 있습니다. 이런 狀況에서 우리 佛子들이 무엇을 해야 할까요?. 바로 이 三寶에 對한 冥想을 해야 합니다. 眞理에 對한 盟誓를 하면 얼마든지 災殃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佛敎의 根本이 바로 삼보(三寶)입니다.
그래서 三寶에 對해서 正確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三寶에 대한 冥想을 하면 不可能해 보이는 일들도 엄청난 奇蹟으로 이뤄지는 것이 바로 이 三寶의 威信力입니다. 따라서 世上에 많은 보배가 있지만 그 中에서도 最高의 보배가 三寶입니다. 三寶에 對한 名相은 여래십호(如來十號)에 다 나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부처님께서는 供養을 받을 만한 분이라는 意味의 응공(應供)입니다. ‘金剛經’에서 부처님은 '실지실견(悉知悉見), 즉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보신다' 라고 했습니다. 부처님은 悉知實見의 을 갖추셨습니다. 그래서 석가모니부처님께서도 비록 肉身은 消滅하셨지만,
법신(法身), 보신(報身)은 여전히 恒常 永遠히 活動하고 계신 것입니다. 부처님 몸(體)은 크게 법신불(法身佛), 보신불(報身佛), 화신불(化身佛) 세 개가 있습니다. 法身佛은 본마음, 참나 자리 입니다, 性稟의 부처님, 眞理의 부처님 입니다. 그래서 法身佛은 눈으로 보거나, 소리로 들을 수가 없습니다. ‘金剛經’에서 ‘만약에 色으로 나(여래)를 보려고 하거나, 音聲으로 나(여래)를 듣고자 하면 이런 사람은 삿된 견해를 가진 것이기에 如來를 볼 수 없으리라.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시인행사도 불능견여래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라고 했는데 바로 이 如來가 法身佛을 말 합니다.
眞理, 性稟의 부처님, 본마음 참나 자리(法身佛)의 드러난 모습은 절대로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이 世上에 法身佛만 있다면 부처님을 알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見性道人이 아니고서는 부처님을 알 사람이 없고, 볼 사람이 없고, 믿을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佛法을 만나기가 정말로 어렵습니다.(百千萬劫難遭遇)
그렇기 때문에 중생들을 敎化하기 위해서 마음으로 나투신 부처님, 그게 바로 報身佛입니다. 마음으로 나투신 부처님은 마음의 눈이 열린 분은 다 볼 수 있습니다. 祈禱를 至極히 하다 보면 觀世音菩薩님이 나투셔서 가피를 주거나, 선몽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나툰 그것이 바로 報身佛입니다. 여러분들이 기도할 때 기도에 應答해 주는 부처님이 報身佛입니다. 阿彌陀佛, 觀世音菩薩, 地藏菩薩 이런 佛菩薩들이 報身佛에 속합니다. 報身佛은 마음의 世界에 있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마음을 잘 살펴보라는 것입니다(觀/觀察/觀照)). 報身佛도 역시 마음의 이 열리거나, 至極 精誠으로 해야 볼 수 있으니까 肉眼으로 볼 수 있는 肉身으로 나투신 부처님이 化身佛입니다.
이렇게 세 부처님이 계시기 때문에 여러분들께서 이것을 本人의 狀況에 잘 맞추어서 信行 生活을 해야 합니다. 信行生活로 잘 가려면 마음에너지가 完全 燃燒가 되어야 합니다. 바로 지금 여기 이 瞬間에
自身이 마음의 主人이 되어 마음을 完全 燃燒하자고 그랬죠. 그러면 마음에너지를 完全 燃燒함이 무엇이냐?. 바로 지금 여기 이 瞬間에
공부할 땐 공부할 , 밥 먹을 땐 밥 먹을 , 잠 잘 땐 잠 잘 , 일 할 땐 일 할 뿐, 아플 땐 아플 , 죽을 땐 죽을 . 恒常 自己가 바로 지금 여기 이 瞬間 하는 일(事)에 몰입(沒入)할 줄 아는 것,
이것이 마음을 完全 燃燒함이요 이렇게 사는 사람이 잘 사는 사람 입니다. 自身이 바로 지금 하고 있는 것이야말로 最上의 修行法이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하면 진짜 그것이 최상의 수행법이 됩니다.
本來 定해진 最上의 修行法은 없습니다. 自己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하느냐에 따라 그게 最上의 修行法이 됩니다. ‘三界를 통틀어서 가장 높은 분이다. 그 다음에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이시며, 또 신과 인간의 스승이다.’ 이 부분을 정확이 알아야 합니다. 천인사(天人師). 天神과 人神의 스승이다. 부처님의 如來十號 중의 하나입니다. 인간만의 스승이 아니고, 신들의 스승입니다. 제가 자주 묻는 질문이 있습니다. 불교는 무신론일까요 유신론일까요. 그러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신론이라고 합니다. 佛敎는 유신론도 아니고, 무신론도 아니고 非神論입니다.
神의 存在는 認定합니다. 하지만 神이 나의 主人은 아닙니다. 다른 종교와의 差異는
불교에서도 신의 존재는 인정하지만 神은 나의 主人이 아닙니다
다른 종교에서는 神은 나의 主人입니다. 그래서 主從關係 입니다.
그러나 불교는 神의 存在는 認定하지만 主從關係는 아닙니다. 부처님과 우리는 스승과 제자 관계 입니다.
부처님과 神은 스승과 제자 관계 입니다. 그래서 神과 우리는 道伴 관계입니다. 이 점을 明確히 알아야합니다. 내 人生의 主人公은 나입니다.
당신이 主人公입니다. 당신이 바로 부처 입니다. 佛敎는 바다와 같습니다. 사람들에게 無限한 可能性을 賦與해 줍니다. 여러분들은 모두 佛性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부처입니다.
부처가 될 수 있는데 무엇인들 될 수 없겠습니까. 神도 될 수 있고, 人間도 될 수 있고, 畜生도 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은 내가 選擇합니다. 이것이 ‘法華經’의 中心思想입니다. 法華思想의 核心이 여러분들은 無限한 可能性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미 主人公이니 굳이 밖으로(마음 外部로) 求乞하러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思想이며, 無限한 可能性, 無限한 資源, 無限한 財産을 이미 다 갖추고 있다고 가르치는 것이 바로 佛性思想입니다. 베푸는 마음을 演習하는 것은 남이 내 德 보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지根性, 종살이 根性 이런 것을 다 놓아야 하는 것이
참다운 富者가 되고 主人이 되는 秘訣입니다. 베푸는 마음을 연습하면 富者가 됩니다. 마음이 먼저요 現實이 나중입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이 演習하는 대로 現實은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좀 빨리 오느냐 더디 오느냐 이 差異만 있습니다. 그렇게 스스로의 肯定마인드를 연습하면 現實에 肯定的인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肯定안테나를 세우니까 世上의 肯定的인 氣運이 다 나에게 모여드는 겁니다. 그렇지 않고 否定 안테나를 내가 세우면 世上의 否定的인 일이 다 모여듭니다. ‘스스로 保護할 수 있고, 時間이 걸리지 않고, 바로 와서 보라는 것이다.’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에서 웃을 때,
와서 보라는 것이지 無條件 믿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와서 보라는 것입니다.
向上으로 인도하고, 점점 여러분들을 向上 시켜준다는 겁니다. 無限한 可能性을 살려주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고, 또 智慧로운 者들이 스스로 알 수 있는 것이 불교입니다.
이것은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中道法,
快樂에도 빠지지 말고 苦行에도 빠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몸을 닦고, 마음을 닦고, 性稟을 닦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世上의 修行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어요.
첫째 : 몸 닦기, 둘째 : 마음 닦기, 셋째 : 性稟 보기 입니다. 몸과 마음은 닦아야 합니다. 몸은 解體해서 봐야 합니다. 처음에는 자신의 몸을 解體해서 보고 그 다음엔 다른 사람들을 보고 演習해야 합니다. 그러나 마음은 묶어서 봐야 합니다. 마음은 들락날락하기 때문에 그냥 보려 하면 절대로 볼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디에 묶느냐. 들숨날숨의 기둥에 마음 챙김의 밧줄에 묶어서 봐야 합니다. 마음은 原來 固定된 實體가 없어요. 그래서 내 生覺이 가는 곳에 마음이 갑니다. 마음이 여기 있다고 生覺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性稟은 어떻게 봐야 합니까. 여기에 參禪과 冥想의 差異가 있습니다. 몸을 보고 마음을 보는 것은 冥想입니다. 그러나 性稟을 보는 것은 參禪입니다. 性稟은 돌이켜 봅니다. 반문문성(返聞聞性) 卽, 듣는 性稟을 돌이켜 듣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 눈은 내 밖을 보아왔습니다. 性稟을 보려면 視線을 안으로 돌려야 합니다. 밖을 向한 視線, 是非와 分別 比較 判斷을 쉬고 自身의 본마음을 돌이켜 보는 것이 性稟 보는 法입니다. 이 법문은 3월19일 증심사 취백루에서 열린 무등산 증심사 명사초청 ‘무등에서 길을 묻다’ 법회의 1회 법사로 나선 월호 스님의 법문을 요약 게재한 것입니다. -------------------------------------------------------------------------------- 월호 스님은 동국대 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쌍계사 조실 고산 스님 문하로 출가했다. 쌍계사 승가대학을 졸업하고 제방선원에서 정진했으며, 고산 스님으로부터 강맥을 전수받았다. 현재 쌍계사 승가대학 교수이며, 行佛禪院 院長으로 후학양성과 포교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결가부좌 명상도량 자비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