幸福은 肯定하는 마음에서 열린다
우리는 언제나 現在를 산다.
來日이니 味來니 하는 單語들이 횡행하지만 來日이 온다 해도
그 때도 역시 現在다.
불교는 恒常 ‘지금 여기(Now and here)’의 종교다.
초기 경전에 독화살의 비유라는 게 있다.
독화살을 쏜 자가 누구인지 검둥이인지
백인인지 왜 쏘았는지를 알지 못하고서는 이 화살을 뽑지 않겠다하면
그는 이내 죽어버릴 것이다.
우선 화살부터 뽑고 봐야한다.
불교는 이처럼 철두철미한 現實 肯定의 종교다.
부처를 믿는다는 것은 現在를 믿는다는 것이요,
現在의 實踐 修行을 믿는 것이다.
現在를 無視한 來日은 없다고 부처님은 말씀하신다.
世上 사람들은 대부분 現在에 滿足하고 있지 않다.
그 같은 群像들에게 來日이 있을 리 없다.
'最高의 抗癌劑가 現實 肯定的인 마음'이라는 얘기를 들어 본 적 있는가.
現在를 否定하는 사람은 不評, 不滿의 도가니 속을 산다.
人生에 가장 重要한 것은 무엇인가?
모두에 대한 사랑이다. 慈悲다.
사랑과 자비는 '하나'의 마음이고, 현실 긍정의 마음, 행복의 지름길이다.
인생의 행복은 긍정적인 마음에서 열리고 불행은 부정적인 마음에서 온다.
不確定性의 原理(Law of Uncertainty)라는 게 있다.
素粒子 物理學의 原理인데 素粒子의 世界는 그들의 位置나 速度, 質量의
確定이 平常時에는 不可能하다는 얘기다.
觀察이 行해지지 않을 경우 素粒子들은 허깨비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觀察者가 觀察을 行할 때에만 實體를 갖는다는 것이다.
‘眼耳鼻舌身意’가 ‘色聲香味觸法’을 因緣할 때만 식(識)이 生起는 原理와
비슷하다. 식(識)이란 6근(根)이 6진(塵)을 因緣할 때 生긴다.
우리가 알 수 없는 一種의 素粒子들의 凝集이다.
흔히들 지금 이 瞬間도 우리의 마음은 虛空 가운데
무언가의 物質을 凝集시켜 映像을 만든다.
그 만드는 材料를 素粒子라 한다면
우리의 마음은 物質에 直接的인 營響力을 行使하는 것이 된다.
‘色卽是空 空卽是色’이고 生覺이 物質이기에 얼마든지 理解가 可能하다.
지금 이 瞬間 내가 ‘하면 된다’고 生覺하면 되는 物質이 생겨나는 것이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하듯 지금 이 瞬間을 일으키는 生覺을 따라
그 길을 可能케 하는 物質이 만들어지고 그 길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사람들은 “祈禱하면 무엇이든지 다 성취하냐”고 묻는다.
분명히 그렇다.
기도하면 무엇이든 다된다.
다만 條件이 있다.
마음을 일으키고 그 일으킨 마음을 끝끝내 멈추지 않고
계속 가야만 하는 것이다.
기도를 해서 무엇이든지 다 이루어지는 것이기는 하나 다만 끝없이 끝끝내
계속 기도해 나가야만 한다는 것이다.
끝없이 기도해 나가는 가운데 結局 성취가 되는 것이다.
가다가 中止하면 성취 될 수 없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몸과 마음을 다해 熱心히 기도해야만 한다.
성취되는 그날까지 지금 이 瞬間을 게을리 하면 來日은 없는 것이다.
성취는 없는 것이다.
祈禱하면 다 되는 것이 아니라 祈禱를 끝끝내 하면 다 되는 것이다.
끊으면 될 리가 없다.
하면 되는 것이고 계속 기도하면 되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성취 될 수가 없다.
믿음의 힘, 기도의 힘이 最高인 理由는
繼續 나아가면 分明히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가다가 멈추면 될 理가 없다.
恒常 지금 이 瞬間瞬間을 永遠처럼 生覺하고 正進하는 사람에게
成取의 길, 가피의 길이 열리는 것이지
이 瞬間 現在를 놓치면 來日도 未來도 所用없는 신기루인 것이다.
부처님은 모두를 成長시키고 그들의 꿈을 이루어주는 存在임이 分明하지만
이처럼 스스로가 스스로를 돕는 마음이 아니면 소용이 없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者를 돕는다 했지 스스로 돕지 않는 者를 도울 수는 없다.
지금 이 瞬間, 現在의 몸과 마음을 다해 最善을 다하는 사람은 現實을 否定할
수가 없다. 恒常 깨달은 者는 至極히 조용하여 沈默이며 每事에 肯定的이다.
부처님과 불살님들은 沈默 속에 가장 낮은 곳, 눈에 뜨이지 않는 곳에 계시면서
지금도 自己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無限 가피를 내리시지 않는가
지광 스님
-결가부좌 생활(명상) 참선센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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