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온의 흐름에 몸을 맡기면 /우룡스님
우리는 불자입니다.
부처님의 제자입니다.
부처님의 제자라면 첫 출발과 끝을 '마하반야바라밀'에 두어야 합니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늘 '마하반야바라밀'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마하반야바라밀'을 잊어버릴 때
우리들의 생활이 불자로서의 삶이 아닌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때문입니다.
마하반야바라밀.......
이 단어의 뜻은 대부분의 불자들이 잘 알고 있으므로
굳이 설명하지 않겠지만, 이 말 속에 깃든 의미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向上한다.前進한다'는 것입니다.
지금보다는 한 시간 후가 낫고 오늘보다는 내일이 나으며
올해보다는 내년이 나아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과연 우리는 향상의 시간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분명 '그렇다'고 자신있게 답할 수 있는 분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하루하루가 괴롭고 허전할 뿐이라고 답하는 분이 많을 것입니다.
나 또한 부끄럽고 불쌍한 존재입니다.
나 역시 다른 불자들처럼 '중'이 되려고,
좀더 향상하려고 노력하는 중생일 뿐입니다.
나는 법회에 참석하여 법문을 할 때마다 마음에 가책을 느낍니다.
"덕 높으신 스승님,사자좌에 오르사
사자후를 합소서 감로법을 주소서......"
나는 곳곳에서 듣는 이 청법가가 무섭습니다.
청법가가 두려워 단상 위에서 그 노래를 받지 않고,
단상 밑에서 대중들과 함께 부른 다음 단상으로 올라갑니다.
왜냐하면 나는 덕 높은 큰스님이 아니라,
'중'이 되려고 바둥거리는 중생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어떤 사람이 '중'의 자격을 갖춘 이며,
어떤 사람이 향상의 길을 걷는 사람인가?
우리가 아참저녁으로 외우는 <般若心經>의 첫 句節,
곧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이 되어야
비로소 '중' 의 자격이 갖추어집니다.
색.수.상.행.식의 오온이 모두 空함을 비추어
일체고액을 벗어날 수 있을 때
참된 '중' 이되고,
오온이 모두 공함을 비추어보면서 살 때
'向上의 길을 걷는 사람'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불자들은 오온이 공함을 비추어 보려는
노력을 놓아버려서는 안됩니다.
오온이 공함을 자꾸자꾸 비추어볼 때
오온 때문에 파생되는 모든 緣에서 벗어나
自由롭고 幸福한 삶을 이룰 수 있습니다.
참으로 불자라면 이 시간 이 空間 속에서
모든 執着을 비워버리고 번갯불처럼 살아야 합니다.
私事로운 感情 품음이 없이,
사전에 계획된 生覺없이,
마음의 부담이나 拘束없이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오온이 공함을 체험한 사람의 생활을 할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불자들은
오온의 테두리 속에서 날개짓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입으로는'조견오온개공하여야 일체고액을 벗어날 수 있다'고 하면서도,
오온공의 차원을 체험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
생각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입니까?
단순히 노력하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고 몰아붙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불자라면 누구나 체험을 하고자 한두 번의 시도는 해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다보니 抛棄를 하였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 瞬間만 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야말로 世世生生을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많은 생애 동안 채우기만 하며 살아왔고,
煩惱妄想에 푹 젖으며 살았습니다.
그야말로 多生多劫 동안을 貪慾과 噴怒와 어리석음과
교만과 의심이라는 다섯 가지 번뇌에 사로잡혀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오온공의 차원을 체험하거나,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과 교만과
의심의 테두리를 벗어나서 생활한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生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사람의 몸을 받았고 불교와 인연을 맺은
바로 이 生에서 향상의 길을 찾고 나아가야 합니다.
참선 경전공부 염불 등을 통하여
'五蘊空'의 세계를 체험하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반대로 귀한 불법을 만난 이 생에서까지
번뇌 속에 빠져 自己 中心的으로 살다보면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業身을 받게 됩니다.
더욱이 탐욕 등의 번뇌를 단순한 번뇌로 삭이지 못하고
번뇌에 깊이 집착하게 되면,
그 집념 때문에 죽어서도 갈 곳을 가지 못하고 귀신이 됩니다.
마음속에 잘못 품은 생각을 풀지 못하고 죽으면
定常的인 삶이 아닌 鬼神의 삶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자기를 돌아보십시오.
혹시나 우리들 자신이 잘못된 고집이나 순간적인 착각으로
반쯤의 鬼神으로 살고 있지는 않은지?
결코 잊을 수 없는 깊은 한속에서 살고 있지는 않은지?
만약 반쯤 鬼神처럼 깊은 한 속에서 살고 있다면
부디 냉정하게 풀어버리십시오.
왜냐하면 이것이 모든 재앙의 근본이 되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부처님의 제자라면
부지런히 마음공부를 하면서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다 풀어버려야 합니다.
잊어버려야 합니다.
비워버려야 합니다.
'비워버려야 한다' 말은 쉽지만 잘 비워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2살,3살 때부터 지금까지의 중요한 일들은 앨범에 넣어놓은 사진처럼
언제나 생생하게 살아납니다.
실로 비우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비우지 못하고 집착하면
언제나 그것으로 인한 걱정과 근심 속에서 살아야 하고
거기에서 파생되는 사건들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정녕 마음을 다잡고 벗어나야 합니다.
오온이 모두 공함을 조견하면 일체고액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번뇌를 좇아가는 마음을 다잡아 부지런히 '집중'시키는 노력을 해나가면
현재의 망상연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집중을 통하여 끊임없이 전진하고 발전하고 향상시켜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불교에 발을 들여놓은 보람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됩니다.
불자는 참된 불자가 되고자 하는 욕심이 있어야 합니다.
참된 불자는 절에 오래 다녔다고 하여 되는 것이 아닙니다.
큰스님의 법문을 많이 들었다고 하여,
불경을 많이 보았다고 하여
참된 불자로 변하는 것도 아닙니다.
참된 불자의 기준은
'얼마만큼 내 마음속의 얽힘을 풀고 벗어나느냐'에 있습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마음공부라고 합니다.
이 마음공부는 돈을 가지고도 안되고 권력으로도 이루어낼 수 없습니다.
오직 자기 노력으로만 이루어낼 수 있습니다.
힘이 들고 마음이 아파도 놓아버리고 비워버려야 합니다.
이때는 결코 말이 필요없습니다.
불이 비록 뜨겁지만 '불' 하고 소리친다고 하여
혓바닥이 타는 것이 아니듯이,
끝없는 향상과 전진이 필요할 뿐입니다.
끝없는 향상과 전진을 통하여 윤회를 벗어나야 합니다.
흔히들'윤회'라고 하면 죽고 난 다음을 생각하지만,
윤회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사람으로 있을때 욕심을 많이 부려
남을 해쳤으므로 죽은 다음 고통의 나라에 가는 것,
이것도 윤회라고 규정할 수 있지만,
보다 정확히 윤회를 정의한다면
'원인'에서 결과까지의 도착 과정' 이 윤회입니다.
어떤 인(因),곧 하나의 씨가 심어지면
그 씨는 씨로만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인이라는 씨를 심은 거기에 따르는 일이 생기고,
여러 과정을 거치다보면 결과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곧 인(因).연(緣).업(業).과(果)의 과정이 윤회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24시간 내내 원인과 결과 속에서 허우적거린다면
每日每日 輪回의 테두리 속에 사는 것이 됩니다.
더 構體的으로 말하면, '色. 受.想.行.識'이라는 五蘊의 테두리에 갇혀 살면
결코 輪回의 테두리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나아가 오온의 테두리 속에서 생겨나는 근심.걱정과 재난 때문에
깊은 불행 속으로 빠져드는 것입니다.
'나'를 번뇌 속으로 빠뜨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고난 속으로 몰고 가는 五蘊의 結縛.
죽은 다음에도 풀지 못하여 鬼神으로까지 만들어버리는 오온의 결박.
부처님의 제자라면 반드시 이 結縛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말로서가 아니라 實際로 오온공(五蘊空)을 체험하여
大自由人이 되어야 합니다
-결가부좌 생활(명상) 참선센타 -
우룡스님(학성선원 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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