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의 요체
이제 宇宙의 實相과 生命의 秘密 그리고 眞理의 要體를 모두 밝힐 때가 된 듯하다.
여태껏 世上이 어둡고 혼동스러웠던 것은 바로 이러한 眞實이 분명히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聖者들을 通하여 眞實의 根源이 생생히 밝혀졌지만 그것은 그곁에 서있었던 少數의 사람들에게만 傳해졌을 뿐 時間이 흘러가면서 그 生命力을 잃어버리고 점차 幻想의 신기루처럼 되어버려 일반인들은 그것이 있었는지 조차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聖者들은 이때가 올 것을 미리 알고 있었고 이때를 末法의 時代, 終末의 時代라 했다.
이제 眞理가 사라져 버린 絶望의 時代에 少數의 뜻있는 者를 위해 眞實의 實體를 밝힌다.
人間은 宇宙의 生命中에서 가장 靈妙한 存在이기에 自身이 神性의 産物이며 巨大한 意味體속에서 나타난 貴한 存在임을 깨닫는다면 절대 함부로 살 수가 없다.
부디 이글이 因緣있는 者에게 傳해져 人間으로 태어난 보람을 찾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宇宙는 그 根源에 永遠하고 完全한 神性(佛性)이 자리잡고 있으며 그로부터 萬有가 神性의 몸과 마음으로 나타나 永遠不滅하게 存在하고 있다.
卽 宇宙의 中心에 創造의 根源인 神性(佛性)이 存在하고 그 다음에 創造의 根源에 合一하기 以前의 단계인 超越的인 神들이 사는 永遠의 世界가 있으며 그다음에 삶의 煩惱와 輪廻를 벗어나 平安을 유지하는 永生의 世界가 있으며
그 다음에 끝없이 循環하며 宇宙의 本體인 이 世上을 이어가고 있는 現狀界가 있으며 마지막으로 그 아래에 고통과 환상으로 消滅에 이르는 幽魂의 地獄界가 있다.
創造의 根源인 神性(佛性, 造物主)이 自身의 몸으로 創造한 이 宇宙는 그 存在方式으로 循環의 形態를 지니고 因果의 理致를 活動原理로 한다.
이러한 循環과 完全한 理致속에 神性은 自身의 씨앗을 뿌리고 完全한 理致에 따라 農事를 지어 自身의 完全性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人間은 바로 이러한 神性의 끝없는 自己農事 가운데 最終的인 結實의 단계에 이른 매우 高貴한 存在이며 宇宙의 核인 것이다.
人類存在 이래 사람들은 宇宙의 根源에 對해 많은 生覺과 論議를 해왔다.
기독교에서는 하느님이 萬物의 根源이라 生覺해왔고 불교에서는 神이라는 存在를 否定하고 佛性이란 맑고 어진 性稟을 宇宙의 根源이라 生覺해왔다.
그러나 이런 區分들은 後世의 第者나 學者들이 지은 것들이며 聖者들은 여기에 對해 分明히 언급하지 아니하니하고 다만 完全하게 存在하고 있는 絶對的인 存在를 意識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이것을 人間의 말로 表現하자면 神性, 佛性 또는 造物主, 創造主라고 하고 完全性이나 不滅性이라고 하는데 여하튼 간에 이 모든 것을 包含한
人間思惟를 超越하는 完全性이라고 生覺하면 될 것이다.
이 根源은 意志이고 生命이면서 永遠히 自存하는 創造性이기에 그속에 모든 無限可能性을 지니고
完全한 世上을 지어 스스로 自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神性의 품속에 나타나고 있는 이 世上과 生命現狀은 神性의 自己 自身의 모습이며 完全한 眞理의 表現인 것이다.
그러므로 宇宙의 모든 存在는 바로 여기에서부터 根據하여 神性한 삶을 짓고 있으며 最終的인 단계에 이르면 다시 그속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神性은 自身의 永遠不滅性과 完全性을 나타내기 위해 世上을 짓는데 氣運과 物質과 生命과 植物, 動物, 人間으로 나타나 마침내 解脫이라는 人間完成의 境地로 結實을 맺는다.
卽 世上에 나타난 모든 存在들은 神性의 싹으로서 完全한 因果의 法則 속에서 自己가 지은대로 結果를 받아 잘 지은 것은 神性의 열매를 거두며 잘못지은 것은 쭉정이가 되어 消滅하는 過程을 밟는 것이다.
現在 世上에 나타나는 혼동과 어둠은 宇宙의 根源이 本來 無意味하고 혼란스러워 그런 것이 아니라 神性의 씨앗이 자라나 열매맺는 過程에서 自身이 짓는 대로 받아가는 消滅의 過程을 보는 것이다.
이와 같이 시작도 끝도 없이 돌고 도는 循環過程 속에서
지은 바대로 結果를 얻어 自身이 뿌린 씨앗을 거두는 宇宙의 完全한 움직임은 얼마나 奧妙하고 神性한 것인가?
永遠한 循環의 法則과 完全한 因果의 法則에 依해 지은대로 結果가 보장되는 世上의 모습은 造物主가 生覺해낸 가장 完璧한 存在方式이다.
世上의 모든 存在는 하나도 남김없고 빠짐없이 循環의 過程속에 自身들을 이어가고 있으며 造物主도 自身의 完全한 存在를 이어가는 方便으로 完全한 뜻속에 世上을 짓고 完全한 理致속에 世上을 움직여 自身의 열매를 수확하는 循環過程을 밟고 있는 것이다.
宇宙의 모든 活動은, 새가 새를 낳고 인간이 인간을 낳듯이 完全性이 完全性을 낳는 完全性의 循環過程으로서 永遠하고 完全한 神性의 自己存在方式인 것이다.
神性은 이러한 完全한 存在方式을 維持하기 위한 틀로서 무거운 것은 가라앉고 가벼운 것은 上昇하는 理致로 現象界와 輪廻界와 地獄界와 永生界와 天上界와 根源界를 꾸며 놓아 世上을 完全하게 循環시키는 構造를 만들고 있다.
이와 같이 世上이 完全한 意味속에서 完璧하게 하나로 짜여져 있다는 事實을 안다면 우리들은 단 한 瞬間도 無意味하고 헛되이 살 수 없는 것이다.
이 過程속에 人間의 삶은 宇宙的 意味를 띠면서 삶을 通하여 좋은 일을 쌓으면 世上이 좋아지고 좋아진 世上은 좋은 結果를 다시 自身에게 돌려줘 그 마음이 열매 맺게 된다.
왜냐하면 世上과 人間은 神性이란 한 뿌리에서 난 同一體이기 때문에 世上을 위해 짓는 것은 나에게 돌아오며 나에게 짓는 것은 世上에게 돌아가는 相互交流의 原理가 存在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生命의 길은 世上을 좋게 만드는 功德으로 살아나가야 하며 그 길만이 나를 完成시키고 世上을 調和있게 만든다.
이러한 眞理를 알아 바른 德을 쌓아 完成에 이르게 되면 人間으로 나서 모든 것을 이루게 되어 大自由와 大智慧를 가지게 되는 宇宙의 열매가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人間에게는 宇宙의 根源과 이어지는 高貴한 神秘가 깃들어 있기에 世上은 참 神性한 것이며 人生은 살만한 價値가 있는 것이다.
世上에 나타난 모든 主體들은 이와 같이 創造主의 完全性을 賦與받아 나타난 分身으로서 스스로 創造하고 지어가며 完全한 理致에 의해 判斷받게 된다.
이 世上의 일은 創造主의 顯身인 各 生命體에게 主人의 역할이 주어져 있으므로 神에게 依持하는 것은 스스로의 主人됨을 포기하는 어리석음인 것이다.
神性은 自身의 모든 뜻(意志)과 生命을 世上에 쏟아부어 世上을 낳았고 自身의 씨앗인 生命의 主體들에게 그들의 뜻(意志)대로 世上을 짓게 한 것이다.
그러므로 世上의 主人은 人間인 것이지 神이 아닌 것이다. 歷史이래 神이 役使에 개입한 前例는 없으며 만약 神이 世上일에 介入했다면 世上이 이렇게 人間이 지은 바에 依해 結果를 받는 現狀이 나타날 理由가 없는 것이다.
이 世上의 흐름은 神도 介入할 수 없는 宇宙 스스로의 巨大한 律動인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者마다 天國에 다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行하는 者라야 들어가리라" (마태복음 7장 21절) 하신 것이다.
歷史에서 우리는 世上의 모든 일은 人間이 만든대로 이루어져 왔다는 것을 明白히 보았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世上은 永遠히 人間이 主人이 되어 꾸며나갈 것이며 스스로 그 結果를 받게되는 過程을 계속 되풀이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世上의 眞實된 모습이며 完全한 神性의 뜻인 것이다.
-어두운 세상에 길은 있는가 - -진실의 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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