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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진화생물학으로 풀어본 우리 몸의 비밀] “뉴런의 방향성…논리적 사유의 토대”

장백산-1 2013. 3. 29. 21:04

[진화생물학으로 풀어본 우리 몸의 비밀] “뉴런의 방향성…논리적 사유의 토대”
〈33〉뇌신경의 방향성과 논리적 사유


우리 몸에는 여러가지 장기가 있지만 의외로 가장 단순한 것이 뇌다. 뉴런(Neuron)이라고 불리는 신경세포가 그물처럼 서로서로 이어져 있다. 신경세포란, 간단히 말하면 ‘단백질과 지방질로 만들어진 전선(電線)’일 뿐이다.

일반 전기줄과의 차이는 방향성이 있다는 것과 뉴런을 단위로 중간중간이 끊어져 있다는 점이다. 그림에서 보듯이 수상돌기로 들어온 전기자극은 세포핵에서 축색을 따라 흐르다가 뉴런의 말단에 도달하면 ‘신경전달물질’을 분비시켜서 인접뉴런을 점화한다.

뉴런과 뉴런의 연결부를 시냅스라고 부른다. 성인(成人)의 뇌는 약 850억 개 뉴런과 1014~1015개의 시냅스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새로운 경험을 하여 그것을 기억할 때 뇌에서는 그에 해당하는 시냅스들이 개통되고, 노화와 함께 뉴런과 시냅스가 파괴되면서 그 부위와 관계된 기억들이 사라진다. 그런데 뉴런의 이런 특성은 우리의 논리적 사고와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경험은 뇌에 ‘뉴런 회로’ 형성
식(識) 다시 흐를 때 ‘기억’ 떠올라

논리적 사고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변충(遍充 또는 周延)’이 성립해야 한다. ‘변충’은 디스트리뷰션(Distribution)의 번역어다. 산스끄리뜨어로는 ‘위야쁘띠(Vyapti)’라고 쓴다.

예를 들어 먼 산 위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보일 때, 산속 어딘가에 불이 있다고 순간적으로 추리할 수 있는데 이를 불교논리학의 삼지작법(三支作法)으로 정리하면 “주장(宗): 저 산에 불이 있다 / 이유(因): 연기가 있기 때문에 / 실례(喩): 마치 아궁이처럼”과 같이 된다. 여기서 ‘마치 아궁이처럼’이라는 ‘실례(喩)’는 “연기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불이 있다”는 점을 의미하며 이것이 변충관계다. “연기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불이 있다”는 점은 옳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불이 있는 곳에 반드시 연기가 있다”고 하면 옳지 않다.

‘붉게 달아오른 숯불’이나 ‘가스레인지의 불’과 같은 반례(反例)가 발견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연기→불’의 조건관계는 성립해도, ‘불→연기’의 조건관계는 성립하지 않는다. 이 때 “연기는 불에 변충된다”고 표현한다. 그리고 이런 변충관계는 모든 논리적 사유의 토대다.

우리의 경험은 뇌에 ‘뉴런들의 회로(回路)’를 형성한다. 소위 ‘기억’에 저장되는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그와 동일한 회로를 타고서 우리의 ‘식(識)’이 다시 흐를 때 그 특정 경험이 ‘기억’에 떠오른다. 대뇌피질의 다양한 ‘회로 군(群)’들은 다른 ‘회로 군’들과 뉴런에 의해 연결되어 있으며 이런 연결부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연합피질(Association Cortex)’들이다.

그런데 뉴런에는 방향성이 있기에 ‘연기(煙氣) 개념’과 관계된 ‘회로 군’에서 발생한 모든 전류는 연합피질의 뉴런을 통해 ‘불 개념’과 관계된 ‘회로 군’으로 흘러들어갈 수 있어도, 이와 반대로 ‘불 개념’과 관계된 ‘회로 군’ 가운데 일부에서 발생한 전류는 ‘연기 개념’과 관계된 ‘회로 군’으로 흘러들지 못한다.

예를 들어 ‘숯불’이나 ‘가스 불’과 같이 ‘연기가 없는 불’과 관계된 ‘회로 군’에서 발생한 전류다. 그래서 연기는 불에 변충되어도 불은 연기에 변충되지 않는다. 뉴런의 방향성이라는 물리적 사실이, 변충이라는 논리적 사유의 토대인 것이다.

[불교신문 2855호/ 10월13일자]


김성철 교수(동국대 경주캠퍼스 불교학과)

출처 : 옥련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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