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스크랩] 1. 아무 것도 행하지 않는 것이 축복이다

장백산-1 2013. 4. 17. 20:39

 

달마어록강의 초록

 

1. 아무 것도 행하지 않는 것이 축복이다

 

(달마의 二入四行論)

 

(양무제의 질문)

“나는 수많은 절을 지었고 수 천명의 학승들을 후원하고 있고,

고타마 붓다의 사상을 연구하기 위해 큰 대학을 세웠소.

또한 나는 고타마 붓다의 가르침 앞에 내 왕국과 전 재산을 내놓았소.

이 다음에 나는 어떤 보상을 받게 될 것 같소.”

 

(달마대사의 답변)

“그대가 자신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한 불교도이든 불교도가 아니든 아무도

그대를 도와 줄 수 없다.

고타마 붓다의 길에 보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보상을 바라는 그 마음이 곧 탐욕이다.

그의 가르침은 욕망을 버리는 것이니,

만일 그대가 수많은 절을 짓고 수 천명의 승려들을 먹여 살리는 것과 같은 공덕을

행하면서 마음속에 욕망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곧 지옥으로 떨어질 준비를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만일 이 모든 것을 즐거움으로 행하고 그 즐거움을 나라 전체와 함께 나누며 보상을

바라는 어떠한 마음도 갖지 않는다면 그 행위 자체가 이미 큰 보상인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대는 완전히 과녁에서 빗나간 것이다.”

“그대가 할 일은 마음을 잡아내는 일이다.

눈을 감고 내면으로 들어가 그것을 찾으라.

마음을 잡아내는 순간 나에게 ‘여기 있다’라고 말하라.

그 다음은 내 지팡이가 알아서 할 것이다.”

 

황제는 마음을 찾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그러나 생애 처음으로 그는 마음을 찾을 수 없었다.

하나의 작은 전략이 거기에 있었다. 마음이란 그대가 찾지 않을 때만 존재한다.

그대가 깨어있지 못해서 그것을 찾지 않기 때문에 마음은 존재한다.

그대가 그것을 찾으려는 순간,

그대는 깨어 있게되고 그 깨어 있음이 마음을 완전히 소멸시켜 버린다.

 

달마가 황제를 흔들어 깨워서 물었다.

“시간이 많이 지났다. 그래 마음을 찾았는가?”

양무제가 말했다.

“내 마음속으로부터 사념들은 사라졌으며,

당신이 말한 내면의 목소리를 나는 듣게 되었습니다.

이제 나는 모든 행위가 그 자체로 하나의 보상이어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그것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누가 나에게 보상을 해주겠습니까? 또 누가 나에게 벌을 내리겠습니까?

나의 행위가 그 자체로 벌이고 보상인 것입니다.

내가 나의 운명의 주인입니다.”

 

『도에 이르는 길』의 해설

그대가 바로 진리이며 그대는 아무 곳에도 갈 필요가 없다.

그대는 어디를 향해 가는 행위를 당장 그만두라. 

그리하여 그 자리에 머물러 있으라. 진리는 바로 거기에 있다.

핵심은 하나의 길을 따라 걷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떤 길도 따라가지 않는 것이다.

어느 곳으로도 향해 가지 않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곳에 머무는 것이다.

이 순간 속에, 바로 그대 안에 머무는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길을 걷든지 그대는 길을 잃고 만다.

어떤 실천도 필요 없다. 그대는 있어야 할 바로 그 자리에 있다.

 

『망상을 등지고 실제로 돌아와 벽을 마주하고 앉은 사람은 나도 없고 남도 없음을

깨닫는다. 그에게는 중생과 부처가 하나이다.

그런 사람은 경전을 대하고도 흔들림이 없으며,

무언중에 존재와 완전한 하나를 이룬다.』의 해설

 

‘벽을 마주하고 앉은 사람’이란 사념을 버리기 시작한 사람이다.

마음을 떨쳐 버리기 시작한 사람이다.

그의 마음 속 화면은 이제 하나의 벽과 같이 텅 비어 있다.

아무런 움직임도 없고 순수한 고요뿐이다.

이제 그는 자기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음을 이해한다.

그의 내면에 에고가 없는 것이다.

‘나’라고 말할 만한 존재가 없는 것이다. 존재만이 있을 뿐 나는 없다.

중생과 부처는 인격이 다르고 외모가 다를 뿐 그들의 주체를 이루는 내면 자체는

같은 것이다. 죄인과 성자가 똑같다.

죄인은 불필요한 죄의식으로 고통을 받고 있고,

성자는 ‘나는 너희들보다 거룩하다’는 불필요한 에고로 고통을 받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무아라는 점에서, 하나의 순수한 무(無)라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같다.

 

『그는 이제 더 이상 나아가지 않고 아무런 인위적인 노력도 하지 않는다.

그러한 상태를 우리는 이입(理入), 즉 존재로 도(道)에 들어갔다고 부른다.』의 해설

 

‘더 이상 나아가지 않는다’는 말은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는 뜻이다.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서 그대는 움직임 없는 침묵 속에 머물러야 한다.

거기 아무런 움직임도 없다. 또한 아무런 인위적인 노력도 없다.

노력이 움직임을 낳기 때문이다.

그대는 마치 그대가 없는 것처럼 움직이지도 말고 인위적인 노력도 하지 말아야 한다.

다만 침묵 속에 머물러야 한다. 그때 그대는 존재의 심장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다르마는 사물의 본성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뜨거운 것은 불의 다르마이다.

차가운 것은 얼음의 다르마, 얼음의 본성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본성은 무엇인가?

그것은 무아이며 침묵이며 자비심이 용솟음치는 것이다.

 

모든 구하는 행위는 그 대상이 무엇이든 그대를 본질에서 벗어나게 한다.

아무 것도 구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달마의 가르침의 핵심이다.

아무 데도 가지 말라. 그대의 에너지를 전부 내면으로 쏟아 부으라.

외부로 향한 꽃잎을 모두 닫고 그 안에 있으라. 그러면 그대는 다르마가 무엇인지,

그대의 본성이 어떤 것인지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때 그것을 실천하라 마치 그대가 아무도 아닌 것처럼 행동하라.

그때 드넓은 자비심을 갖고 행동하라.

그때 그대의 삶 전체가 하나의 현존이 되게 하라.

그러나 그대 안에 ‘나’라는 것은 남아 있지 않게 하라.

 

『인연이 다하면 그것은 또다시 무로 돌아간다. 성공과 실패가 모두 인연을 따라

오는 것임을 안다면 더 이상 마음이 들뜨거나 낙심하는 일이 없다.』의 해설

그대는 일의 성공이나 실패로 인하여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

그것들은 하나의 꿈일 뿐, 그 이상 아무 것도 아니다.

것들은 왔다가 사라지는 물거품이다.

그 속에서 그대는 자신을 지켜보는 자로 머물러 있어야 한다.

『모든 현상계는 공허하다. 그것들은 추구할 가치가 전혀 없는 것들이며,

복과 화는 영원히 함께 한다.』의 해설

 

그대 밖에서 일어나는 삶의 일들은 무엇이든 꿈처럼 공허한 것이다.

그것과 꿈은 재료가 같다.

‘지혜로운 사람은 깨어 있기 때문에’ 인생 전체를 하나의 긴 꿈의 연속으로 본다.

어떤 때는 기분 좋은 꿈이고 어떤 때는 기분 나쁜 꿈이다.

어떤 때는 달콤하고 어떤 때는 악몽도 꾼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꿈이다.

깨달은 사람은 잠을 자면서도 꿈을 꾸지 않으며 깨어 있는 동안에는 바깥 세계의

꿈으로 인하여 망상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그것들은 추구할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이다.

 

『망상을 떨쳐 버리기 위하여 여섯 가지의 덕을 행하고도 그들은 전혀 행한 것이

없는 것이다.』의 해설

만일 이 세상이 하나의 꿈의 세계라면 그대가 도둑이건 위대한 자비심을 가진

사람이건 아무런 차이가 없다.

꿈속에서 그대는 도둑도 되고 자선가도 될 수 있지만 꿈을 깨고 나면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아니면 그 꿈속에서 자신이 도둑이었다고 부끄럽게 생각하겠는가?

둘 다 한낱 꿈이고 물거품에 불과한 것들이다. 그것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꿈을 깨는 것만이 의미가 있다.

그대가 무엇을 행하든지 실제로는 아무 것도 행한 것이 없다는 이 사실을 아는 것,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 바로 다르마를 따라 사는 것이다.

이것을 이해한 사람은 모든 것으로부터 초연하다.

그는 환상을 그치며 어떤 것도 구하지 않는다.

 

경에 이르기를

“구하는 것이 곧 고통이다.

아무 것도 구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축복이다” 라고 했다.

 

그대가 아무 것도 구하지 않을 때 그대는 이미 도(道)안에 있다.

 

출처 : 무진장 - 행운의 집
글쓴이 : 유당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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