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독립적인 자신의 業을 따라서 살아갈 뿐 !

장백산-1 2013. 4. 23. 18:57

 

독립적인 자신의 業을 따라 살 뿐|마음공부 생활수행
법상 | 조회 836 |추천 1 |2012.09.14. 10:49 http://cafe.daum.net/truenature/7qUb/261 

 

 

 

 

빠따짜라는 남편과  두 아들, 부모님과 세 자매를 

하루 아침에 모두 잃어버리고 

거의 미친 사람처럼 소리쳐 울면서 거리를 헤매다  

부처님의 處所에까지 이르렀다. 

부처님께서는 그녀를 불러 다음과 같이 法門하셨다. 

"남편과 아들이 끝까지 너를 보호해 줄 수는 없다. 

자식도 친척도 부모도 어느 누구도 

죽음이 닥쳐올 때 너를 保護해 줄 수는 없다. 

 

설사 그들이 살아 있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너를 위해 이 世上에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들은 그들 自身의 業에 따라 存在했었을 뿐이며, 

自身의 業을 늘리며 살았던 것에 불과했다. 

 

그러므로 賢明한 사람은 

이와같은 眞理를 바로 알아 

戒律을 잘 지켜 淸淨한 業을 行할 것이며 

마음의 障碍를 除去하여 禪定을 通해 

마침내 涅槃에 이른다."


당신 삶에서 당신과 因緣 맺고 살아가는 

家族을 비롯한 그 모든 이들에게 

過度하게 依持하거나 

그들이 나에게 무언가를 해주기를 바라지말라. 

 

그들이 아무리 당신을 사랑하고 헌신할지라도 

事實 그들은 그들 自身의 業에따라 

自身의 삶을 살고 있을 뿐이다. 

 

그들의 業의 드라마 속에 당신 또한 당신의 業의 드라마를 보태며 

重重無盡으로 無數히 많은 이들의 業이 

서로 調和롭고도 法界의 法則에 어긋나지 않게 

이 아름다운 한 편의 映畵를 펼쳐내고 있는 것이다. 

 

모든 이들이 自己 映畵 속의 온전한 主人公이지 

그 누구도 助演은 없다. 

 

그러니 내가 主人公이라고 

他人을 내 뜻대로 휘두르려 해서도 안 되고, 

나를 위한 犧生者가 되게 해서도 안 된다. 

물론 나 또한 그들에게 지나치게 依持하거나 

干涉하려고 할 理由도 없다. 

 

그렇다고 그들을 사랑하지도 말고 

매정하게 因緣도 끊고 살아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사랑하되 지나치게 干涉하지 말고, 

愛情으로 돌봐주되 過度하게 拘束하지는 말라. 

 

서로 사랑하고 依持하며 함께 삶의 길을 걷더라도 

서로가 自己 主體的인 生의 꽃을 피워나갈 수 있도록 

저마다의 獨立的인 空間을 許容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아무리 子息이라 할지라도 

그는 나의 所有도 아니고, 

내 맘대로 휘두를 수 있는 存在는 더더욱 아니다. 

 

그들이 至今은 내 뜻대로 잘 살아주는 것 같지만 

事實 그들은 父母님 뜻대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니고 

自己 自身의 業에 따라 살고 있는 것일 뿐이다. 

 

그렇기에 父母의 生覺과는 다소 다를 수 있을지라도, 

子女들 自身만이 가지는 業의 무게를 스스로 堪當할 수 있도록, 

그들만의 特別한 삶의 꽃을 피워낼 수 있도록 

그들만의 世界를 認定하고 許容하며 

그들만의 舞臺를 만들어 줄 수 있어야 한다. 

 

父母가 살아 온 人生의 舞臺만을 固執하며 

그 길대로 가야한다고 注入하며 固執하게 되면 

自息과의 갈등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그것은 그들이 父母를 거스르며 順從하지 못하는 

비뚫어진 性格으로 자라서가 아니라 

父母와 自息 間에 서로간의 다른 業과 삶의 課題를 認定하지 않고 

父母式대로 만을 固執한데서 오는 當然한 現狀이다. 

 

自息이든 사랑하는 사람이든 部下 職員이든 

그들을 내 式대로 拘束하지 말라. 

그들을 사랑할 지언정 過度하게 執着하지는 말라. 

 

남편에게도 자식에게도 

全的으로 기대거나 依持하지는 말라. 

저마다 獨立的인 自己 自身으로 自身의 빛깔을 뽐내며 

主導的으로 살아갈 수 있는 機會를 주어보라. 

 

스스로 南便 없으면 못 살것 같고, 

自息 없으면 못 살것 같은 그런 나약한 存在가 되지는 말라. 

 

그들이 없어도 삶은 계속된다. 

심지어 이 生이 끝나더라도 삶은 계속된다. 

죽음의 瞬間에는 그 누구에게도 依持할 수 없었음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물론 함께 어께동무를 하고 서로 사랑하며 

依持하고 사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며 

우린 누구나 서로 依持하며 살기 위해 이 世上에 왔다. 

 

關係 속에서 배우고 깨달아 가며 

사랑과 智慧를 되찾는 過程이 우리 삶의 理由다. 

 

그러나 참된 사랑과 智慧는 

그 모든 것이 꿈(夢)과 같은 것이며 신기루(幻影)와 같은 것임을 알아 

過度하게 執着하지 않고 欲望하지 않으면서도 

그 모든 삶을 누리고 나누고 사랑하며 사는 

中道的 實踐行에서 오는 것이다. 

 

獨者的인 自己 自身의 삶을 自己답게 살아나가되 

因緣 닿는 이들과 함께 關係 맺으며 사랑하고 살 수도 있다. 

사랑하되 執着하지 않을 수 있으며, 

依持하되 過度하게 기대지 않을 수 있고, 

돌보고 키우되 지나치게 干涉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함께 있되 때때로 홀로 存在할 수 있도록 

空間을 열어줄 수도 있고, 

홀로 存在할지라도 함께 나눌 수 있는 因緣을 열어둘 수도 있다. 

 

이 兩 極端인 것처럼 보이는 

두 가지 길 속에서 

調和로운 中道의 길을 걸을 때 

삶은 均衡 있게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