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dif]--> 에 따라서 그것이 創造的인 行動으로서 모든 말과 生覺과 行動이라는 그 行爲는 現實을 創造하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는 거죠. 그러기 때문에 모든 행동은 사실은 창조적인 행동입니다. 즉, 몸으로 하는 행동, 말로 한 언설, 그리고 생각으로 한 뜻, 이 모든 것이 사실은 창조적인 생각이고, 창조적인 말이고, 창조적인 행동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말과 생각과 행동을 어떻게 쓰는지를 늘 觀察하면서 비추어보면서 살지 않는다면, 나도 모르게 툭 튀어나온 말과 생각과 행동에 내 人生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휩쓸려 가버리는 그런 現實을 經驗하고 말죠. 그래서 創造的인 行爲을 해야 되는데 내가 願하는 대로 創造하려면 願하는 대로 創造할 수 있는 行爲을 해야 되겠죠.
<!--[if !supportEmptyParas]--> <!--[endif]--> 創造的인 行爲를 하려면 創造의 法則을 알아야 됩니다. 삶을 만들어내는, 삶을 창조하는데 법칙이 있다는 거죠. 그 법칙을 알아야지만, 내 삶을 말들어낼 수 있습니다. 우선, 그 법칙을 알아보기 前에 여러분이 영화 아바타를 아마 다들 보셨을 건데요. 아마 이게 우리나라에서도 전체 1, 2등 한거 같고. 전 세계에서 역대 흥행 1위를 했다 그래요. 여기에 보면 요런 場面이 있습니다. (...)
<!--[if !supportEmptyParas]--> <!--[endif]--> 戰爭에서 侵略에서 이길 수 있게 도와 달라하고 남자가 기도를 하죠. 이길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오하고 기도를 하는데. 女子 主人公이 나와서 그런 얘기를 합니다. 에이와는, 卽 다시 말해 神. 또는 어떤 法則. 眞理. 뭐 이런 분, 이런 어떤 眞理의 存在는 누구의 편을 드는 분이 아니다. 다만 삶의 均衡을 맞출 뿐이다. 그러니까 기도한다고 해서 그것을 들어주는 분이 神이 아니라는 거죠. 만약에 기도만 한다고 그것을 神이 다 들어준다면 똑같은 종교를 믿거나 다른 종교를 믿거나 어떤 쉽게 말해서 戰爭이라는 것이 어찌 보면 神의 파워게임일 수가 있게 되는 거죠. 그런데 神을 믿는다고 해서 그것이 이루어진다면, 아마 인구가 많은 나라가 같은 종교를 믿는다면 아마 유리할겁니다. 많은 사람이 똑같은 신에게 기도를 하면, 적은 나라에서 기도하는 거 보다 더 힘이 세야 되겠죠.
<!--[if !supportEmptyParas]--> <!--[endif]--> 그런데 그럴 수가 없겠죠. 이렇게 침략을 받았을 때 도와달라고 했을 때 어머니 대지. 이것이 에이와라고 했는데 神이나 佛性, 뭐 이런 것을 이야기한다고도 할 수 있어요. 다만 삶의 均衡을 맞출 뿐이라고 했는데. 이것이 바로 이제 요즘에 그 많이 유행하고 있는 어떤 均衡의 法則, 이런 것들과도 連結되어 있는데요, 많은 사람들이 均衡의 法則을 얘기를 했습니다. 바림 젤란드라는 사람은 모든 곳에는 不均兄을 除去하는 均衡力이 나타난다. 均衡의 法則이야말로 最初의 法則이라고 이야기를 했고. 만일 한 사람이 均衡의 法則을 어기고 그 사람이 지니기에는 너무 큰 것을 가지게 된다면 그는 災難을 당하게 된다고 아놀드 토인비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均衡에 좀 맞아야 되는데 均衡에 맞지 않는, 내 삶의 均衡에 맞지 않는 過度한 것을 所有하거나 가지게 됐을 때 오히려 災難을 당함으로서 삶의 均衡이 맞아지는 그런 일이 벌어진다는 거죠. 또 우리가 살아가는 宇宙는 均衡의 法則에 依해 세워졌고 유지되고 있다고 챨스 가필드도 이야기를 했었고요. 예를 들면 이와 같은 겁니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괴롭혔다. 예를 들어 저와 거사님이 처음에 만났다라고 했을 때, 우리 둘 사이는 처음 만났기 때문에 균형이 맞아져있겠죠. 서로에 대한 원한이라든가 미운 마음이라든가 이런 감정이 없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균형이 맞아져 있는 상태인데. 제가 직장에 상사고 우리 거사님이 직장에 이제 제 밑에 직원으로 들어왔다고 쳤을 때, 제가 보고는 그냥 괜히 마음에 안 드는 거에요.
<!--[if !supportEmptyParas]--> <!--[endif]--> 옛날에 나를 괴롭히던 누구와 너무 닮으신 거에요. 그래가지고 계속 괴롭혔어요. 괴롭히고 욕하고 때리고 심지어 돈도 뺏고. 나쁜 짓을 했단 말이죠. 그러면 처음엔 均衡이 맞았었다가 均衡이 딱 깨지게 됩니다. 저는 마음껏 화풀이를 해서 저는 그냥 좀 가벼워졌어요. +에너지가 올라갔다면, 이분께서는 -에너지가. 저한테 계속 괴롭힘을 당했기 때문에 가슴속에 부정적이고 답답하고 화나는 마음이 쌓인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均衡이 맞아졌다가 -가 되고 저는 +가 됐습니다. 그러고 나서 예를 들어 우리 둘이 이번 生에 또 못 만나고 죽었다. 그럼 다음 生에 어떻게 될까요? 이 宇宙法界는 이 둘 사이의 均衡을 맞추기 위해서 이 두 사람을 만나게 해준다는 겁니다. 그게 因緣의 法則이고 業의 法則입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다음번에 다음 生에 만나게 되면 이제 거꾸로 만나겠죠. 제가 이분 밑에 들어가서 이분이 나를 만나면 괜히 기분 나쁜 거예요. 그래서 예전에 나를 괴롭혔던 또 누군가와 제가 너무 닮게 태어난 겁니다. 그래 보기만 해도 기분 나쁜 거라. 그래서 괜히 괴롭히고 때리고 하는 거예요. 언제까지 그렇게 할까요? 業의 均衡이 풀어질 때까지. 내가 예를 들어 제가 이생에 10번 괴롭혔으면 다음 생에 10번을 괴롭힘을 당해야 均衡이 맞는 거예요. 일상적인 사람은 그렇다는 겁니다. 삶을 自由意志를 가지고 創造的으로 智慧롭게 올바로 쓰는 사람이라면 그 業을 빨리 끝낼 수도 있겠지만, 일반인들은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이런 것과 같아요. 어떤 보살님께서 結婚을 했는데 아주 性格 좋아서 結婚을 했는데 南便이 술만 먹으면 들어와 가지고 마누라를 패는 겁니다. 만날 술만 먹으면 때려요.
<!--[if !supportEmptyParas]--> <!--[endif]--> 그 다음날 화가 나서 일어나서 “난 당신과 도저히 못산다. 헤어지자.” 그러니까 이 南便이 술만 깨면 또 손이 발이 되게 싹싹 빌면서 “제발 헤어지자는 말만 하지마라. 내가 잘못했다.” 하고 싹싹 비니까 불쌍해서 헤어지지도 못하겠고. 그래가지고 그냥 살았단 말이에요. 그런데 어떤 스님께 가서 스님, 제 남편 때문에 속상해 죽겠습니다. 한 두 번도 아니고 술만 먹으면 때리니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그랬더니 이 스님께서 싸리 있잖아요. 싸리를 이만큼 묶어서 한 천개 가까이 되는 걸 하나로 묶어가지고 집안에 갖다 놔라. 싸리를 이만큼 갖다 놨어요. 그날도 남편이 술을 엄청 먹고 들어왔습니다. 그래가지고 이 마누라를 때려야 되는데 보니까 때리기 좋은 게 있거든요. 옆에. 싸리비가 있거든요.
<!--[if !supportEmptyParas]--> <!--[endif]--> 싸리를 들고 그냥 마누라는 그날을 딴 때 같으면 도망갔을 텐데 스님 말 듣고, 그 날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앉아있어요. 그랬더니 그 싸리를 가지고 때리는데, 한참 때리는데 싸리 묶어놓고 때리니까 그렇게 안 아프잖아요. 맞을만 하더라는 거죠. 그래서 10대째 맞고 나니까 남편도 지쳐가지고 잠이 들더라는 거예요. 그러고 나서는 안 때린다는 겁니다. 왜 그럴까요? 그렇죠. 예를 들면 그것과 같습니다. 하나의 싸리로 천대를 맞아야 되는데, 싸리를 100개를 묶어가지고 갖다 놓으니까, 묶은 집단가지고 10대만 때리면 千 번의 業이 다 떨어지는 어떤 그런 原理와 같다는 거죠. 이와 같이 내가 남편과 그런 어떤 業의 關係가 있다. 그런데 業이라는 것은 여러분 無意識일 때, 意識의 어떤 生覺이 잦아들 때 혹은 生覺이 좀 支配해서 놓여 질 때 그럴 때 이제 業이 많이 動하기도 하죠.
<!--[if !supportEmptyParas]--> <!--[endif]--> 어떤 사람은 그 술 취했을 때 業이 動하기도 합니다. 술 취하고 나서 때리는 사람, 폭력적인 業이 있는 사람일 수가 있어요. 술 취했을 때 울기만 한다. 그러면 뭔가 모르게 서글픔과 슬픔과 이런 것들이 내 어떤 恨처럼 뭔가 있는 사람일 수가 있어요. 그와 같이 술에 취하니까 이게 자꾸 本性이 드러나서 이게 業이. 내가 그러고 싶은 게 아니고 그 南便은 그냥 自己도 業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런 일을 하는 거죠. 그와 같이 業의 均衡이 맞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때릴 일이 없어지는 겁니다. 옛날 어르신들보면 처음 結婚해서 남편한테 엄청 맞고 살다가 나중에 한 50 60 70 되어가면서 남편이 精神 차린 것도 있겠지만, 業도 이제 어느 程度 解決이 된 거에요.
<!--[if !supportEmptyParas]--> <!--[endif]--> 아내가 이제 “아이고, 내가 이렇게 맞고 살 수밖에 없는 팔자구나.” 하고 포기하고 그냥 그냥 맞아주는 겁니다. 그러니까 나중엔 이제 業도 다 되고, 하고 나니까 나중에 60 70넘으면 거꾸로 되어가지고 남편이제 마누라한테 이게 힘도 없고, 때릴 힘도 없고, 밥도 안 챙겨주면 다 할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래가지고 나중에는 거꾸로 돼서 마누라한테 혼나다가 당하다가 그러고 죽을 수도 있겠죠. 이와 같이 우리는 業의 關係로 맺어지면 業의 均衡을 맞추기 위한 方式으로 宇宙法界는 우리를 均衡의 法則으로서 우리 삶을 만들어냅니다. 예를 든다면 윗사람이 밑에 사람을 괴롭히면 均衡이 깨어지기 때문에 제가 이 직장에서 누군가를 괴롭혔다. 그러면 그 다음 직장에 가거나 미래의 어느 瞬間에 내 윗사람이 나를 同一한 方式으로 괴롭힐 확률이 높아집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내가 業의 均衡을 깼기 때문에 언젠가는 어떤 방식으로든 業의 均衡을 맞추어야 되니까. 그런데 어떤 분들은 저는 나쁜 짓을 많이 했는데도 惡의 果報가 안 오던데요. 좋은 일만 생기던데요. 승승장구 하던데요. 하고 뿌듯하게 얘기하시는데. 그게 좋은 일이 아니죠. 공부하는 사람일수록 오히려 지혜로운 사람일수록 業을 빨리 받는다 그러죠. 예를 들어 큰스님들은 한 生覺 딱하고 한마디 말 한마디 딱하면 그게 바로바로 現實로 이루어진다고 그랬죠. 그런데 業이 지중한 사람은 業이 너무 많으니까 받아야 될 業이 너무 많으니까 旣存에 業 받기에도 너무 버거운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 내가 아무리 해도 늦게 받을 수도 있다. 그래서 業은 自身의 어떤 因緣에 따라서 빨리 받기도 하고 늦게 받기도 하는 겁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그러니까 단지 자신은 늦게 받는 것일 뿐인데, 난 業이 안온다라고 생각해서 나쁜 일에도 상관없다. 그렇게 錯覺하는 사람이 있단 말이죠. 그거야 말로 어리석은 일이 되겠죠. 그래서 業의 均衡이 깨어지게 되면, 반드시 그 業의 均衡을 맞추기 위한 作用을 이 宇宙 法界가 하게 되어 있습니다. 돈을 빌려가서 안 갚았다. 내가 남들 돈을 땡쳐 먹어가지고 안 갚았어요. 그럼 언젠가는 내 돈이 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방식을 通할 진 모르겠지만, 그것은 宇宙法界에서 알아서 計劃을 하겠죠. 어떤 방식일지 모르지만, 이 베풀기 싫어하고 인색하고 남들 돈을 자꾸 갖기 좋아하는 사람. 그런 사람일수록 가난해지기가 쉬워집니다. 그런데 마음씀씀이가 恒常 넉넉하고, 늘 베풀고 작은 거라도 자꾸 이렇게 나눠주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풍요로워지고 부유해지고 부자 될 확률이 점점 높아지겠죠.
<!--[if !supportEmptyParas]--> <!--[endif]--> 이렇게 나와 남 사이에 에너지 不平等이 일어날 때 이 宇宙法界는 이것을 맞추는 方向으로 均衡의 힘을 몰아간다는 겁니다. 나와 외부 사이에 均衡이 맞춰야 된다는 거죠. 우리 파란색 글자 한번 같이 읽어 봐주세요. 시작~ <相對方에게 經驗하게 해주는 것을 내가 經驗한다.> 우리는 우리 人生에서요, 내가 상대방에게 경험하게 해주는 것을 내 인생에서 경험하게 됩니다. 내가 나로 인해서 내 밑에 있는 부하직원들이 공포감을 경험한다. 그럼 내가 그 밑에 부하 직원에게 공포감을 경험하게 만드는 거거든요. 그럼 나는 내 인생에 언젠가 공포심을 경험할 수밖에 없는 狀況에 놓이게 됩니다. 누군가로 인해서 내가 공포스러움을 당하게 되거나, 아니면 죽고 나서 지옥에 가거나, 다양한 방식으로 내가 남들에게 경험하게 해줬던 그것을 경험한다는 거죠.
<!--[if !supportEmptyParas]--> <!--[endif]--> 나로 因해서 나라는 한 사람으로 因해서 우리 가족이 두려워한다. 그런다라면 그 가족에게 두려움을 경험하게 해줬기 때문에 나또한 그것을 경험하는 방식으로 다음 生은 만들어질 수밖에 없겠죠. 다시 말해 이번 生에 嚴하게 自息들을 그냥 무시무시하게 떨게 만들었던 아버지라면 다음 生에 아주 무서운 아버지 밑에 태어나서 그 果報를 받게 될 수도 아마 있을 겁니다. 또한 거꾸로 내가 있음으로서. 우리 참 놀랍고 신기한 것이요, 한사람의 힘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놀랍고 큰 겁니다. 한사람이 바뀌는데, 그 조직에 한사람이 바뀌었는데 윗사람이라면 더욱더 말할 것도 없이 그러겠죠. 그러나 뭐 구성원 중에 한명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한사람이 바뀌었는데 그 구성원의 분위기가 완전히 뒤바뀌는 경험들을 아마 여러분들 해보셨을 건데요.
<!--[if !supportEmptyParas]--> <!--[endif]--> 정말 신기할 정도로 확확 바뀌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한사람이 아주 좀 안 좋은 사람이 들어와서 분위기를 완전히 흐려버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한사람이 들어와서 그 어떤 조직이나 그 어떤 회사나 이런 것들을 놀랍게 아름답게 바꿔놓은 경우가 있어요. 심지어 아주 안 좋았던 구성원들까지 그 사람으로 인해서 감화가 되는, 우스개로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道人들이 쉽게 말해서 5미터 道人이 있고, 10미터 道人 있고, 30미터 50미터 道人이 있다면, 100미터 道人도 있고, 큰 스님이 우리나라에 태어난다면 우리나라 地域 全切에 營響을 미쳐서 우리나라 전체가 밝아질 수도 있고, 부처님 같은 분이 한분 나신다면 이 地球뿐 아니라, 부처님은 忍天의 스승이라고 하잖아요.
<!--[if !supportEmptyParas]--> <!--[endif]--> 지구뿐 아니라 온 우주법계 전체가 동시에 밝아질 정도로 끝없이 드넓은 우주법계 전체를 밝히는 부처님 같은 분도 계시겠죠. 그런데 이 말은 뭐냐 하면, 내가 마음工夫를 하고 修行을 해서 마음이 고요해지고 平和로워지고 밝아진다면 가장 먼저 내 가까이 있는 사람부터 저절로 共鳴의 法則에 의해서 닮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집안에 예를 들어 아내나 남편이 날마다 행복하고 날마다 즐겁고 날마다 아이에게 가슴이 활짝 열려있으면, 얼마나 그 집안이 순간 아름다워 지겠어요? 얼마나 밝아지겠어요. 잠깐잠깐도 이렇게 뒤바뀌는 데요. 우리가 자녀들이 하는 일들을 볼 때 항상 짜증나는 게 아니거든요. 자식들이 공부 안하고 나쁜 짓하고 뛰고 TV만 보고 한다고 해서 그게 항상 싫은 게 아니잖아요.
<!--[if !supportEmptyParas]--> <!--[endif]--> 어떨 땐 예뻐 보이지 않습니까? 아무리 뛰고 장난치고 해도 어떨 땐 내가 기분 좋은 날에는 내가 너무 행복한 날은 집안에 애들이 막 뛰고 난리를 쳐도 그것조차 예뻐 보이고 아름다워 보인단 말이에요. 공부 안 해도 괜찮다. 괜찮다 하고 좋아 보인단 말이죠. 그런데 내가 가슴이 옹졸해지는 날에는 닫쳐있는 날은 이 아이가 그렇게 잘못한 것도 아닌데 작은 실수 하나에도 예민해져서 화내고 성내고 짜증내고. “너 내가 옛날부터 지켜봤는데 이러면 안 돼.” 하면서 화를 낸단 말이죠. 가만히 생각해보세요. 사실은 냉정하게 생각해본다면 사실은 자식 때문에 우리가 자식에게 화를 내는 게 아닙니다. 내가 자식의 그 행동에 마음이 열려있지 않기 때문에 화를 내는 거죠.
<!--[if !supportEmptyParas]--> <!--[endif]--> 우린 마음이 항상 열려있지 못하고 항상 닫혀있으니까. 항상 닫혀있으니까 그것을 包容해 줄 수 있는 意識이 안 되어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때때로 마음이 열리는 날만 아이를 예뻐해 주는 거죠. 그런데 부모님의 가슴이 활짝 열리고 마음공부와 수행을 통해서 가슴이 드넓어진다면 언제나 아름답게 볼 수가 있고요. 또 그 아이가 잘못을 했다 할지라도 화내고 윽박지르므로서 그 자식 안에 뭔가 아프고 쓰라린 이 마음들이 자꾸 부모님으로 인해서 자꾸 연습이 되면 부모한테 마음이 탁 닫혀버립니다. 자식의 마음이. 제가 어떤 보살님께서 그러셔요. 어~ 우리 아들딸이 시집 장가갈 때가 돼서 며느리 또 사위될 사람을 데리고 오는데, 너무 마음에 안 든다는 거죠.
<!--[if !supportEmptyParas]--> <!--[endif]--> 너무 마음에 안 들어서 이건 분명히 결혼하면 잘못 살 게 뻔한데, 이거를 기를 쓰고 반대를 하고 있는데 반대하다보니까 이 자식하고 자꾸 부딪치고 더 싸우고 자꾸 틀어지는데, 어떻게 해야 됩니까? 초등학생 중학생, 자녀가 남자친구 여자 친구 있다고 데리고 온단 말이에요. 그러면 뽀뽀를 했다 그러고 이러면, 중학생인데 뽀뽀를 했다 그러면, 부모님 입장에선 이것이 중학생 밖에 안 된 것이 어디 뽀뽀를 했다는 얘기를 하지도 않죠. 우리에게는. 그렇죠? 왜 그럴까요? 부모님이 자식을 향해서 無意識中에 垂直的인 觀念, 나는 어른이니까 높고, 너는 낮다. 내 말 항상 들어야 된다는 觀念을 가지고 있게 되면요, 그 아이들이 부모님에게 마음을 탁 닫게 됩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제가 우리 많은 우리 부대 다니면서 장병들을 만나보면 장병들 가운데 너무 힘들어하고 고통받아하고 부대에 적응도 잘 못하고 너무 힘들어하는 아이들 중에요, 너무 깜짝 놀란 일들이 뭐냐 하면, 이 아이가 부대에서 너무 적응도 못하고 실제로 본인이 너무나도 힘들게 이렇게 삶을 살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산다라는 것을 놀랍게도 그 부모님들은요, 까맣게 모르고 있는 분들이 많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부모님들이 그 아이가 그렇게 산다라는 것을 모르고 계신 거예요. 어떻게 그걸 모를 수 있지? 하고 물어봤더니 그 아이가 뭐라고 하냐하면, 우리 부모님은 제가 어릴 적부터 제가 조금만 잘못하거나 조금만 뭐라고 안 좋은 일 했을 때, 너무나도 크게 화를 내고 야단치기 때문에 부모님한테 말할 수가 없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말해봐야 혼나는 거 외에는 내가 뻔하기 때문에 그냥 부모님이 물어도 항상 뭐라고 하느냐 하면 “좋아요.” “학교에서 뭔 일 없었어?” “아, 예. 별일 없었어요. 좋아요. 잘 지내요.” 항상 그렇게 얘기해 온 겁니다. 사실은 너무나도 힘든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되면 서로가 마음이 이렇게 닫혀 있잖아요. 그러니까 자식이, 부모님한테 마음을 안 여니까. 무엇도 와서 상의를 못해요. 예를 들어 중학생 아들이나 딸이 남자 친구랑 뽀뽀했다 그러면 그 얘기도 안하죠. 마음이 닫혀있으니까. 엄마에게 얘기했다가는 난리날거라는 걸 아니까. 그런데 엄마와 자식 간에 水平的으로 이렇게 열려있는 가족관계는요, 아이가 “제가, 아이가 뽀뽀를 하자고 그러는데 엄마, 내 뽀뽀해도 될까요?” 물어본다든가. “내 뽀뽀했는데 어떻게 하죠?” 물어본다든가.
<!--[if !supportEmptyParas]--> <!--[endif]--> 그러면 “야, 그래?” 갑자기 대뜸 화부터 내면서 어디 미친 것이 말이지 이렇게 할 게 아니라. “그러냐? 야~ 그때 氣分이 어땠는데? 야~ 뭐 어떻게 하다 그렇게 된 거야? 야~ 신기하네. 야~ 엄마는야, 워낙 옛날얘기라. 잘 모르겠다. 어땠어? 기분 좋았니?” 이를테면, 우선은 그렇게 그 마음을 한번 받아줘 보는 거예요. 그렇게 열린 마음으로서 받아주게 되면 자식입장에서요, 나쁜 짓을 했어도 어머니아버지에게 와서 먼저 말을 하고, 혹은 나쁜 짓을 하려는 마음이 있어도 상의를 하게 되요. 그런데 이게 垂直的인 關係에서 부모님의 마음을 닫고 있으면 결코 상의를 안 하죠. 그래서 결혼하는 사람들 며느리 데리고 오면 데리고 오기 전부터 이렇게 하는 게 좋습니다. “나는 너를 진정으로 믿는다. 난 아들 너를 정말 믿는다. 딸 너를 믿는다. 네가 데리고 오는 사람이라면, 아빠는 엄마는 그냥 좋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물론 아빠 엄마가 나의 얘기를 하겠다. 내 의사표현을 하겠다. 이러이러한 점이 안 좋을 거 같고, 넌 저 사람과 결혼하면 이러이러한 안 좋은 일도 있을 거 같고, 힘든 일도 분명히 있을 거 같다. 아빠 엄마가 살아온 삶의 어떤 經驗을 보니까 삶의 지혜를 보니까 그런 게 있을 거 같은데 하고 그렇게 助言해줄 수 있다. 그러나 내가 最終決定은 너에게 맡긴다.” 그렇게 얘기를 해주면요, 이 자식 마음이 열립니다. 그래서 그렇게 조언을 할 때 활짝 열린 마음으로 부모님 말을 傾聽하고 들어요. 진지하게 듣습니다. 그런데 무조건 “안 돼”라고 하고 윽박지르게 되면, 마음을 열고 다가가지 못하죠. 부모님에게. 자꾸 숨기기만 합니다. 숨기기만 하고 자꾸 맞게 되면 젊은 사람들 어떨까요? 그냥 가만 놔두면 오히려 깨질게 性格上 문제로 깨어질 것도 絶對 안 된다고 부모님이 막아버리면 오히려 더 사랑하는 감정이 더 생겨서 그럴 수도 있죠.
<!--[if !supportEmptyParas]--> <!--[endif]--> 그리고 말씀드린 것처럼 설사 조금 안 좋은 며느리 사위가 들어왔다 할지라도 그거는 그 아이의 삶의 몫입니다. 이생에 自身이 풀어야 할 삶의 課題에요. 삶의 어떤 業의 均衡의 문제를 가장 아름답게 풀 수 있는 條件의 배우자를 만날 수밖에 없어요. 우리는. 내가 옛날에 시집 잘못들은 거 같아요. 이런 건 없다는 거죠. 부모님이 그렇게 말릴 때 가지 말았어야지라고 하지만, 事實은 그걸 通해서 우리는 삶을 배우고 깨닫고 工夫할 수 있는 所重한 機會가 될 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 내보내는 것이 곧 들어오는 것입니다. 내가 상대방에게 어떻게 행하느냐에 따라서 그것이 곧 내가 나의 미래에게 행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내가 상대방에게 화를 내면, 미래의 누군가에게 화를 받게 되죠.
<!--[if !supportEmptyParas]--> <!--[endif]--> 상대방에게 사기를 치면 누군가에게 사기를 당하게 되겠죠. 곧 내가 상대방에게 하는 것은 나의 미래에게 하는 겁니다. 왜 그럴까요? 상대방이 곧 나와 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너와 내가 둘이 아니다. 라고 하잖아요. 實際 宇宙의 本質이 그렇죠. 나와 相對는 둘이 아닙니다. 다른 存在가 아니에요. 그러니까 내가 상대방에게 하는 것은 곧 내가 나 자신에게 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상대방을 나라고 생각 못하고 상대라고만 생각하고 남이라고만 생각하니까 남들은 좀 나를 위해서 희생되어도 괜찮겠지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러나 상대를 돌봐줬을 때 나도 돌봐짐을 당한다는 理致를 이 緣起法的인 理致, 均衡의 理致를 모른다는 거죠.
<!--[if !supportEmptyParas]--> <!--[endif]--> 어제 참모총장 하시던 분께서 잠깐 다녀가셨는데 그분이 무슨 얘기를 하시냐하면, 지금 경제경영을 살펴보니까 기업인들, 대기업인들이 경영을 하는 마인드가 옛날 20~ 30년 전과 완전히 바뀌어 있다는 겁니다. 올바른 지혜로운 대그룹일수록. 어떻게 바뀌었냐고 얘기를 하시는 가하면, 옛날엔 대그룹이면, 어떻게든 우리 그룹이 부자가 되어야 되는 거에요, 이윤을 많이 남겨야 되는 게 목적인 겁니다. 그러니까 옆에 있는 대등한 그룹들이 조금 못하더라도 우리 기업이 먼저 잘 되어야 되고, 밑에 하청업체들이 조금 못살더라도 하청업체 조금 어떻게든 더 많이 끌어당겨가지고 너희들은 좀 못살아도 우리는 부자가 되어야 되겠다. 이런 방식으로 기업을 경영했다는 거죠. 그런데 지금은 그 기업 컨설턴트 하는 어떤 기업의 경영을 조언해주고 이런 수많은 어떤 세계적인 단체도 마찬가지입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요즘에 기업가들이요, 冥想家들에게 가서 우리 기업을 전체적으로 진단해 달라고 얘기하는 그런 명상단체가 기업도 컨설턴트 해주는 곳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 世界的인 흐름이 뭐냐 하면 이거에요. 普遍化 된 겁니다. 지금은. 뭐냐 하면, 내 기업만, 우리 회사만 잘 먹고 잘살자는 것은 이제는 끝난 舊時代的인 發想이라는 겁니다. 이제는 그야말로 相生하고 함께 잘살아야 된다는 거죠. 그러니까 밑에 下請業體가 幸福해지는 經營을 하는 겁니다. 내 이웃에 있는 같이 함께 어깨 겨누면서 함께 가는 업체들도 같이 나아갈 수 있는 방식을 공존하는 방식을 꿈꾸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慈悲로운 方式. 平和롭게 相依相關的으로 共存하고 共生하고 慈悲와 緣起法的인, 智慧의 方式입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그래서 상대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상대방의 이익을 자꾸 추구해주고 직원들의 배를 불리게 해주고, 직원들도 함께 성장할 수 있게 만들어주고. 그런 삶의 방식이 그런 기업방식이 요즘에는 많은 지혜로운 기업들에서 채택하고 있는 방식이라는 거죠. 이와 같이 이제는 智慧의 時代입니다. 제가 부처님 당시에는 世界史 차軸의 時代라 해서 數없이 많은 聖人들이 同時多發的으로 일어난 時代다. 精神的인 共鳴의 時代라고 얘기를 했더니 왜 그 共鳴의 時代가 그 以後에는 없었을까요? 라고 누가 質問을 하더라고요. 그 이후에는 왜 없었을까요? 없었을까요? 모르긴 해도 BC500년경에 부처님 당시에 그 世界的으로 뛰어난 깨달은 자들이 툭툭 튀오나오던 그 시대 이후로 또 다른 어마어마한 어떤 精神世界가 깨어나는 軸의 시대.
<!--[if !supportEmptyParas]--> <!--[endif]--> 그때보다 더욱더 놀랍게 깨어나는 時代. 그때가 지금입니다. 至今. 지금이라는 時期입니다. 人類歷史 속에서 누구죠? 잠깐 기억이 안 나는데. 베스트셀러도 됐었고, 그런 책이었는데. 거기서도 하는 얘기가. 지금의 시기가요, 인류역사 그 어느 시기보다 가장 어떤 精神的인 에너지 水準이 急激하게 높아지는 시기랍니다. 왜냐하면 지금이 인터넷, 정보, 언론, 이런 것들이 워낙 발달했잖아요. 시크릿이라는 책 조금 있다가 얘기하겠지만, 비밀이라고 해서 사실은 불교에서는 누구나 얘기하던 아주 單純한 業報의 方式을 시크릿에서 어마어마하게 비밀인 것처럼. 그러나 이제 공개를 한다는 듯이 공개를 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잖아요. 사실 그게 비밀일게 없이 누구에게나 다 보편적인 가르침이지만, 비밀처럼 많은 사람이 그걸 못 느끼고 살았다는 거죠.
<!--[if !supportEmptyParas]--> <!--[endif]--> 그러나 지금의 시대에는 그 모든 어떤 智慧의 가르침들이 完全히 오픈되어 있는 시기입니다. 불과 20~30년 前만해도 큰 스님 法門을 듣기가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生活法門 듣긴 또 너무 어려웠습니다. 經典 講議를 듣는다는 건 想像도 못했어요. 지금은 인터넷만 켜면 TV만 켜면 언제든 큰스님 法門을 언제든 들을 수 있고. 全 世界로요, 미국 유럽 우리나라도 마찬가지고 불교서적, 명상서적, 이런 것들이 전 세계 베스트셀러 1등 2등 3등을 다투는 이런 시대가 유례가 없었습니다. 지금요, 제가 만나봤던 상담하러 와서 만나봤던 많은 신도님들 가운데에도 뭐랄까 그냥 굳이 표현한다면 공부를 너무 많이 하셔서 그야말로 성품을 보시고 그야말로 이렇게 깨어나신 분, 그런 분들이 상당히 많이 계신다는 걸 보고 저도 깜짝 놀랐었습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지금의 時代는요, 깨어남의 시대입니다. 정말 많은 깨달은 자들이 툭툭 붉어져 나오는 시대에요. 지금 미국이나 유럽에서 베스트셀러의 1, 2등 되는 책들을 보더라도 그 사람들이 불자라고 이름은 하지 않지만, 깨어난 存在들이에요. 글을 보면 전부다 부처님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너무 놀랍게 急速度로 急進展하는 時代입니다. 지금. 지금 이시기에 우리가 마음공부 수행을 하게 되면요, 共鳴의 에너지의 得을 볼 수가 있게 되요. 그리고 혼자서 기도하는거 보다 절에서 수백수천명이 모여서 함께 기도하면 그 기도, 쉽게 말해 기도 빨이 세다 하잖아요. 그거 만찬가지입니다. 지금의 시기는 全 世界的으로 修行과 冥想. 요즘에 보세요. 요가니, 명상이니, 웰빙이니, 마음공부. 이런 것들이 세계적으로 얼마나 선풍적인 인기입니까?
<!--[if !supportEmptyParas]--> <!--[endif]--> 이게 世界的인 에너지波長이요, 그 어느 시기보다 놀랍게 깨어나는 시기입니다. 이럴 때 기도하고 수행하고 정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또 이럴 때 수행하고 기도하고 정진하면 그 宇宙的인, 全宇宙的인 에너지. 氣運을 우리가 받아서 共鳴의 에너지로서 쉽게 工夫해나갈 수 있는 그런 시기를 타고 난겁니다. 그러니까 이런 시기에 우리가 정말 더욱더 마음工夫하고 修行하고 智蕙와 福德을 닦는 그런 공부를 하셔야 될 거 같은 생각이 듭니다. 오늘 여기까지 말씀드리고 다음 주에 또 이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예. 성불하십시오. <!--[endif]--> <!--[if !supportEmptyParas]--><!--[endi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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