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中道
모든 것이 因緣의 和合으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無我이고 無常이며 空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모든 對相 卽
色은 多樣하게 우리에게 나타나므로 差別이요 無我와 無常, 空은 모든 것에 同一하게 나타나므로 平等이
다. 그런데 色卽是空이란 差別이 곧 平等이라는 말이 된다. 이렇게 差別과 平等이라는 서로 對立되는 槪
念이 하나로 綜合되는 것을 회통(會通)이라 한다. 이렇게 對立되는 槪念이 和解할 수 있는 것은 물론 色의
性稟이 空하기 때문이다.
色의 性稟 그 自體가 空한 것이므로 色을 떠나 空이 따로 存在하지 않아 色 그 自體가 空한 것이어서 色卽
是空이니, 差別이 卽 平等이다. 또한 一切의 事物이 緣起空에 依한 것이므로 空을 떠난 色이란 있을 수 없
어 공즉시색이니, 평등 즉 차별이다. 이렇게 어느 한 변에 얽매이지 않는 것을 중도(中道)라고 한다. 佛敎
哲學의 核心인 中道를 不生不滅을 通하여 알아보도록 하자.
不生不滅이란 물론 生하는 것도 아니고 滅하는 것도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나 生命體를 포함하여 우리 주
위의 모든 事物은 때로는 生겨나 나타나기도 하고 때로는 滅하여 사라지기도 하는데 왜 不生不滅이라 하
는가? 내가 과거 언젠가 태어났는데 그건 生이 아니고 나는 언제가 죽게 될 텐데 그건 滅이 아닌가? 이를
科學에서 어떻게 理解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도록 하자.
物理學은 物質의 窮極的인 料素를 한 때는 原子라고 생각하였고 그 다음에는 陽性子와 中性子 등이라고
생각하였으나, 이제는 양성자와 중성자도 다시 數없이 많은 微粒子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微粒子들의 전형적인 壽命은 불과 10의 마이너스 23승秒에 불과하니, 이처럼 瞬間에 生하고 瞬間
에 滅하는 이 微粒子들이 固定된 本性 卽 自性을 가지고 있다고 生覺하는 것은 不可能하다. 自性을 가지
지 않는 이러한 無數한 微粒子들의 生과 滅이 瞬間에서 瞬間으로 이어지는 것이 原子 內部 모습이다.
한 微粒子의 生은 곧 그 自身의 滅로 이어질 뿐 아니라, 다른 微粒子의 生과 滅에 關係한다.
하나의 粒子는 다른 粒子의 原因이며 다른 粒子는 하나의 粒子의 原因이 된다. 입자의 生은 입자의 滅의
原因이 되며 입자의 滅은 입자의 生의 原因이 된다. 하나의 입자와 다른 입자 그리고 그들의 모든 生과 모
든 滅은 이처럼 同時的으로 함께 存在하며 相互 聯關되어 있으니 서로가 서로에 대해 力動的인 原因
으로 作用한다. 이렇게 原子 內部에 存在하는 모든 微粒子들, 그들의 모든 生과 滅은 그 어느 하나도 빠짐
없이 關係의 틀 안에서 이루어지는 變換의 過程일 뿐이다.
그런데 이러한 이야기는 不生不滅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生滅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들릴 것이다. 그
러나 生滅을 떠나서 不生不滅이 있는 것이 아니라 生滅의 過程 그 自體가 不生不滅이라는 것이 불교
의 관점이니 우선 生滅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왜 그러한가? 하나의 입자가 우리 눈앞에서 사라졌다고
해서 무언가가 없어진 것은 아니며, 하나의 입자가 우리 눈앞에 나타났다고 해서 무언가 없던 것이 生겨
난 것은 아니다. 나타난다는 것은 因緣의 모아짐으로 形成된 것뿐이며 사라진다는 것은 因緣의 흩어짐으
로 分解된 것뿐이다.
마치 星間 物質이 모여 天體를 이루면서 우리 앞에 前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緣을 따라 나타난다 하더라
도 이는 오직 緣을 따라 그렇게 나타나 보이는 것 卽 星間 物質이 天體로 變換된 것뿐이지 前에 없었던 것
이 새로 生겨나는 것은 아니니 生하는 것이란 없다. 우리 앞에 나타나는 모든 것은 이렇게 여러 가지 수다
한 緣으로 이루어지는 것뿐이지 生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生하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면 다시 滅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이렇게 生하는 것도 없고 滅하는 것도 없으니 不生不滅이라 한다.
이것만이 아니라 우리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生滅은 끝없이 聯關되는 끊임없는 變煥의 過程, 卽 緣起
의 過程일 뿐이어서 그 어느 瞬間에도 生겨나는 것도 없고 없어지는 것도 없다. 다만 낮과 밤이 바뀌면서
太陽이 나타나고 사라지듯이 우리 눈에 무언가가 나타나고 사라질 뿐이다. 質量과 에너지가 保存되면서
도 物質界의 그 많은 變化가 可能한 것은, 단지 나타나고 사라질 뿐 生이나 滅은 本來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생겨나는 것도 없고 없어지는 것도 없지만 우리의 앞에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을 우리는 生滅이라
고 부른다. 그러므로 空이 色을 떠나 있지 않듯 不生不滅이 生滅을 떠나 어디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
다. 生滅하는 것이 緣起요, 生滅하는 것이 空이며, 따라서 生滅하는 것이 곧 不生不滅이다. 마치 아침, 저
녁에는 막대의 그림자가 길어지고 정오가 되면 막대기의 그림자가 짧아지며 밤이 되면 그림자가 아예 사
라지듯이, 生滅이라는 것은 緣起라는 網 속에서의 關係의 틀이 조금 變化되는 것뿐이다.
생멸은 오직 관계의 틀 안에서의 연기에 의하여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생하는 것도 없고 멸하는 것도
없다고 하였는데,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生이라고 하며 무엇을 滅이라고 하는가? 이를 살펴봄으로써 不
生不滅의 中道的 意味를 앞에서의 논의와는 다른 角度에서 다시 考察하여 보자. 다시 별의 生成을 例로
들면 별이 생성되면서 성간 물질은 없어졌다. 이는 별의 生이란 성간 물질의 滅이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이니, 滅은 生의 前提 條件이 된다. 이처럼 滅은 生과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生이 있는 그 자리
에 바로 滅이 存在하며, 滅이 있는 그 자리에 바로 生이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는 성간 물질이 滅하는 것을 보지 않고 별이 生하는 것만을 보면서 生이라고 하고, 성간 물질
이 生하는 것을 보지 않고 별이 滅하는 것만을 보면서 滅이라고 한다. 단지 우리의 觀点일 뿐이다. 그 全
切를 다 본다면 生은 滅이라야 비로소 可能하고 滅은 生이라야 비로소 可能하다. 滅과 生은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것이어서 滅이면 곧 生이고 生이면 곧 滅이다. 그러므로 生도 아니고 滅도 아니어서 生이
라고 할 수도 없고 滅이라고 할 수도 없지만 또한 生滅이 아닌 것도 아니어서 生이기도 하고 滅이기도 하
니, 이를 不生不滅의 中道라고 한다.
그러므로 生이 따로 있고 滅이 따로 있으며 이 둘을 더하여 不生不滅이 되는 것이 아니다. 生해도 不生不
滅이고 滅해도 不生不滅이니, 生의 그 자리가 바로 不生不滅의 中道이고 滅의 그 자리가 바로 不生不滅의
中道이다. 數學에서는 1+-1=0이어서 1에 -1을 더해야 0이 되지만, 生과 滅을 더하여 不生不滅이 되는
것이 아니므로 不生不滅의 中道는 이런 미적지근한 계산이 아니다. 1에다 -1을 더하여 0이 되는 것이 아
니라, 1이 곧 0이요, -1이 또한 곧 0이다. 1도 緣起空이요 -1도 또한 緣起空이어서 1도 不生不
滅이요 -1도 또한 不生不滅이기 때문이다. 1과 -1, 生과 滅의 差別이 平等한 자리가 不生不滅
의 中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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