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스크랩] 5. 윤회와 환생

장백산-1 2013. 6. 18. 18:04

5. 윤회와 환생


오직 끝없이 전개되는 연기의 망이 있을 뿐, 영원한 본체나 상주하는 개체적 자아, 불멸의 영혼, 창조자 등을 상정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윤회나 환생 등의 개념도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하여야 한다.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윤회의 개념은 인도의 전통 사상이나 우리의 토속 신앙 등이 그 중심축을 이루는 것이며 상당히 많은 부분이 비불교적이고 세속적으로 윤색되어 있으므로, 그 자체를 불교의 중심사상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일반인이 불교와 관련하여 먼저 떠올리는 단어가 윤회나 환생이기 때문에, 불교의 중심사상과 관련하여 윤회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윤회란 상사라(Sam.sa?a)의 역어인데 이는 삶의 한 형태가 삶의 다른 형태로 끊임없이 변해가는 것을 의미한다. 흔히 윤회라고 하면 사후에 영혼이 한 몸에서 다른 몸으로 옮겨가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상사라에는 이런 의미가 없다. 상사라란 생명의 물결, 생명의 파동과 같은 것이다. 물리학에서의 파동이 물질 자체가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물질을 매개로 하여 에너지가 전해지는 것이듯, 윤회란 불변하는 영혼이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삶의 진동이 다른 삶의 진동에 영향을 주며 이러한 영향이 끊임없이 순환되어 가는 것을 말한다.


그러면 윤회와 인과는 어떤 관계에 있는가? 이와 관련하여 미린다 왕은 나선(那先) 스님에게 죽어 없어진 자와 다시 태어난 자가 동일한지의 여부를 물었다. 죽은 자와 태어난 자가 동일하다면 (영혼을 포함하여) 생명체의 자성을 상정하는 것이어서 무아설과 모순되며, 죽은 자와 태어난 자가 전혀 상관없는 것이라면 윤회와 인과를 부정하는 것이 된다. 결국 이는 윤회설과 무아설이 양립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물어본 것이 된다.


이에 대해 나선 스님은 “짜낸 우유가 굳은 우유가 되고 이것이 다시 버터가 될 때 그 각각은 동일한 것도 아니지만 굳은 우유나 버터는 우유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어린아이와 어른은 동일하지 않지만 어린아이가 자라 어른이 된다. 이와 같이 생겨나는 것과 없어지는 것은 별개의 것으로 보이지만 지속(순환)된다. 이리하여 존재는 동일하지도 않고 상이하지도 않으면서 최종 단계의 의식으로 포섭된다.”고 답하였다.


짜낸 우유와, 굳은 우유, 버터가 동일한 것도 아니지만 서로 연관되듯이 어린아이와 어른도 동일하지 않지만 서로 연관되듯이 그러므로 그 모두가 항상하는 것도 아니고 단절되는 것도 아니며(不常不斷) 서로 동일한 것도 아니고 서로 다른 것도 아니듯이(不一不異), 윤회 역시 불상부단하고 불일불이한 중도라는 것이다.


불교의 근본 사상은 무아이고 무상이기 때문에, 변하지 않는 실체는 그것이 어떤 것이라도 인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몸과 마음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몸은 마음에 의지하여 있고 마음은 몸에 의지하여 있으므로, 몸과 독립하여 그 스스로 혼자 존재할 수 있는 마음이란 불교에서 인정되지 않는다. 따라서 영혼이 몸을 따라 돌아다닌다는 생각은 우리의 토속 신앙이나 고대 인도 사상의 하나이기는 하겠으나 불교와는 전혀 관련 없는 소박한 믿음일 뿐이다.


일체의 존재가 인연에 의하여 생하지만, 인연은 존재자로 이루어지는 전체 세계의 내부에서 형성된다. 존재자에 의해 인연이 만들어지고 인연에 의해 모든 존재자가 나타나므로, 개개의 존재자는 전체에 의해 형성되는 결과임과 동시에 전체를 형성하는 원인이 된다. 이렇게 존재자와 인연이란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상호 역동적인 관계에 놓여 있으므로, 존재자에 의해 구성되는 세계는 스스로를 창조하고 유지해 나가는 전체이다. 이 이외의 다른 어떤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 불교의 세계관에서는 법계를 벗어나 존재하는 초월적이거나 신비적인 어떤 것에 관심을 갖지 않으며 그러한 존재를 상정하지 않는다. 이러한 불교의 기본적 관점에서 윤회를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부처님은 《전유경(箭喩經)》에서 독화살의 비유를 들어 우리가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주신다. 독화살을 맞은 사람이 의사를 청하여 치료하려고 하지 않고, 독화살을 누가 쏘았는지 혹은 화살이나 화살깃, 화살촉, 활줄, 화살통 등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를 알려고 한다면 그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목숨을 마치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세상은 영원한가 아니면 영원하지 않은가 혹은 세상은 한정이 있는가 한정이 없는가 등의 허망한 물음에 매달린다면 그것을 알지 못한 채 목숨을 마치게 된다는 것이다.


이 글에서 논의한 윤회나 환생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그러한 물음에 대해 오직 침묵으로 일관하셨다. 침묵하시는 이유는 “그것이 이치에 맞지 않고 법에 맞지 않으며, 또 범행의 근본이 아니어서 지혜로 나아가게 하지 않고, 깨달음으로 나아가게 하지 않으며, 열반으로 나아가게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그러기 때문에 부처님은 사성제를 한결같이 설하시는데, 이는 “그것이 이치에 맞고 법에 맞으며, 또 범행의 근본이어서 지혜로 나아가게 하고, 깨달음으로 나아가게 하며, 열반으로 나아가게 하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다른 곳에서도 물론이지만 윤회와 관련해서도 깊이 새겨보아야 할 부분이다.


내가 다음 생에 어디에 어떻게 태어나는지를 생각하는 것은 지혜로 나아가게 하는 것도 아니고, 깨달음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도 아니며, 열반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도 아니다. 지옥의 세계도 천상의 세계도 오직 인연의 화합에 의한 것일 뿐이어서 그저 잠시 그럴 뿐이다. 천상에 태어나는 것이 설령 좋은 일이라 하더라도 인연이 다하고 나면 그 뿐이니, 그것이 깨우침에 이르는 한 방편이 될 수는 있겠지만 결코 불교의 궁극적인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출처 : 석가모니불
글쓴이 : 영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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