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법정스님 ' 자연주의 상징' 월든에 가다

장백산-1 2013. 6. 26. 23:57

 

 

 

법정스님 '自然主義 象徵' 월든에 가다 

 

 

 

 

 

 

소로우는 월든 호수가에서 2년 동안 홀로 지냈다.

 


월든(Walden)은 미국 매사추세츠주 콩코드시에서 남쪽으로 2km 남짓 떨어져 있는 호수다.

숲이 우거진 낮은 언덕으로 둘러싸여 있다. 150여年前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이 호숫가 숲속에 오두막을 짓고

2년 2개월 동안 勞動과 學文의 삶을 살면서 그의 思想이 무르익게 되고 道德的 신조가 분명한 형태를 갖추게

된 그 영향으로 세계적인 호수가 된 것이다.

 

# 소로우 文學-哲學의 産室

 

월든으로 갔을 때 그의 나이 스물여덟이었고 책은 한권도 저술한 적이 없었다.

마을 사람들 말고는 그를 알아볼 사람도 없었다.

월든 호숫가에서 지난 이 期間이 소로우의 人生에서 가장 아름답고 意味있는 時期였다.

그 以後 삶의 方向을 決定짓는 轉期가 되었기 때문이다.

 

 

 

소로우가 지냈던 오두막의 모형과 그의 동상./사진제공 법정스님

그 당시 하바드 출신의 대학동료들이 좋은 직업을 찾아

돈버는 일을 시도했을 때, 그는 남들이 가는 길을 거부하고

 自身의 個人的 自由를 지키겠다고 決心을 한다.

 

돈이 필요할 때는 보트를 만들거나 담장을 쌓거나 측량을 하는 등

그때마다 自己에게 알맞는 勞動을 해서 벌었으므로

그는 결코 게으른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직업교육도 받지 않았고, 결혼도 하지 않고 혼자 살았으며,

교회에 나간 적도 없었다. 육식을 하지 않았으며

술 담배도 가까이 하지 않았다.

스스로 思想과 自然의 學生이 되는 길을 選擇했다.

 

그는 美國 文學과 思想을 대표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지만,

現代의 生態學的 自然思想도 그의 영향이 크다.

소로우는 餘暇가 事業만큼이나 重要한 것이고,

富者가 되는 가장 確實한 方法은 거의 아무것도 願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卽 사람이 富者냐 아니냐는 그의 소유물이 많고 적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없이 지내도 되는 物件이 많으냐 적으냐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그는 所有를 극도로 制限했지만 초라한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세련된 정장, 교양있는 사람들의 몸짓과 말투 등을 모두 벗어 던져버렸다.

그는 善良한 인디언들을 좋아했다.

소로우는 人間의 良心에 따른 道德法則을 强調하고 글과 강연을 통해 노예제도 폐지운동에 헌신하면서

人權과 改革思想을 줄기차게 역설했다.

 

                                                                      # 호수크기는 3km 감동은 3000km

 

 

저마다 최선의 장소는 현재 자신이 처해있는 바로 그 자리다. 월든 호숫가의 법정스님./사진제공 법정스

 

이와 같은 그의 思想은 톨스토이, 마하트마 간디, 마틴 루터 킹 등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2次大戰後 美國을 비롯한 世界의 젊은이들 사이에 그의 저서 ‘월든’이 聖書처럼 널리 읽혔다는 사실은 그의 現存을 말해주고 있다. 그의 글과 주장은 지금도 精神世界에 널리 빛을 발하고 있다.

 

월든 호수를 처음 본 사람은 글을 통해서 상상했던 것보다 호수가 그리 크지 않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우리들은 흔히 크고 작은 것을 밖에 드러난 外面的인 것만으로 判斷해왔기 때문이다. 월든은 둘레가 3km도 채 안되는 규모다.

 

그러나 眞情으로 큰 것은 밖에 드러나 있지 않고 그 內面에 있다. 월든이 수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그

吸引力을 生覺한다면 그 어떤 湖水보다도 크고 깊다. 한해에 60萬名의 精神的인 ‘巡禮者’(관광객이 아니다)들이 세계 각처에서 이 월든을 찾는 것을 보아도 그 넓이와 깊이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뉴욕에서 일을 마치고 월든을 다시 찾아갔다. 이번이 세 번째인데도 새롭게 느껴졌다. 그 날은 마침 인근

고등학교 학생들이 한 교사의 인솔하에 소로우의 오두막 터에 와서 현장학습을 하는 광경과 마주쳐 적지 않은

감명을 받았다. 듣는 학생이나 가르치는 선생님의 진지한 그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마치 映畵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존 키팅 선생을 연상케했다.

 

# 왜 自身의 삶 살려하지 않는가

 

학생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밝고 여유있는 것을 보면서, 入試地獄에서 잔뜩 주눅들고 굳어있는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만약 우리 고등학교에서 교실밖에 나가 이런 현장학습을 한다면 모르긴 해도 단박 학부모들의 항의가 거셀 것이다. 우리는 교실에만 갇혀서, ‘그곳을 알기 위해서는 그곳에 가야 하는 것’이 진정한 학습임을 모르고 있다.

 

마침 녹화를 위해 방송사 촬영팀과 동행한 길이라, 그 현장학습의 장면을 담고 싶었다. 선생님에게 한국에서 왔다고 인사를 드리고 학습장면을 좀 찍을 수 있었으면 하고 여쭈었더니 먼저 학생들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했다. 다들 찬성하여 순조롭게 찍을 수 있었다. 이런 일 또한 민주적인 교육임을 실감케했다. 교사가 임의로 결정하지 않고 먼저 학생들의 의사를 물어 결정하는 그 절차가 참으로 믿음직했다. 강의가 끝난후 학생들이 선생님한테서 받아든 종이를 갖고 뿔뿔이 호숫가에 앉아 그 날 학습의 감상문을 쓰는 모습 또한 아름다웠다.

 

하바드 대학을 졸업한 후 스무살이 된 소로우는 그의 가장 짧고도 유명한 교사일을 시작한다. 그의 고향 콩코드 제일의 대학준비학교였다. 교단에 선지 며칠 안되어 ‘3인 학교위원회’의 한 사람이 그를 불렀다. 그는 교실의 활동과 소음수준이 너무 높다고 하면서 아이들에게 처벌을 자주 가할 것을 지시했다. 그의 지시에 자극받아 소로우는 할수없이 매를 들었는데, 그날 저녁으로 그는 辭職書를 제출하고 校師職을 그만 두었다.

 

오늘날 우리들은 自身을 좁은 틀속에 가두고 서로 닮으려고만 한다. 어째서 따로따로 떨어져

自己自身다운 삶을 살려고 하지 않는가!. 各者 스스로 한 사람의 當當한 人間이 될 수는 없는가!.

저마다 最善의 場所는 現在 自身이 處해있는 바로 그 자리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법정스님· 길상사회주

가져온 곳 : 
카페 >어둠 속에 갇힌 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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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정중규| 원글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