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모든 죄는 뚫린 구멍에서 시작된다.
뚫린 눈으로 먼저 죄를 짓는다.
뚫린 귀가 죄를 짓는다.
뚫린 입이 죄를 짓는다.
뚫린 콧구멍으로 죄를 짓는다.
향기를 맡으니 먹고 싶고 갖고 싶은 탐욕이 생긴다.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은 인간구원을 부르짖는
함성을 외면하는 세태의 심각성은 이목구비의 책임이란다.
선과 악의 문지방을 넘나드는 인간의 범죄에 대하여 무감각 한 세태 역시
뚫린 구멍 탓이다.
약자를 지배하는 강자의 논리가 세상을 파멸하는데 대한 경고를
눈과 코와 입과 귀에 호소를 한다.
TV를 켜면 나오는 게 범죄 이야기다. 죄가 독판치는 죄판 세상이다.
살인, 강도, 사기, 강간 등 온갖 범죄소식이 종횡무진으로 들려온다.
이 흉악한 범죄의 소굴에서 겨우 운신을 하며 살고 있다.
범죄란, 죄를 저지른다는 말인데, 죄를 국어사전에 보면 ‘도덕적 위배나
법을 위반한 언행’으로 정의를 했다.
우선 죄(罪)라는 글자를 보자.
넉 사 자(四)자 밑에 아닐비 자(非)로 되어 있다.
네 가지의 안 할짓, 못 할짓을 죄로 단정했다.
그렇다면 네 가지의 못 할 짓은 무엇인가.
공자는 죄의 종류를 삼천가(三千之罪中以罪莫大於不孝)라 하면서도
죄의 구성형태를 넷으로 보았다. 그게 사물론四勿論이다.
예가 아닌 것은 보지 말고(非禮勿示), 예가 아니면 듣지 말고非禮勿聽,
예가 아니거든 말하지 말며, 예가 아닌 곳엔 가지를 말라
(非禮勿言 非禮勿動)는 것이다.
죄는 눈과 귀와 입으로 시작된다는 뜻이다.
‘말 잘해서 귀양 가나,’는 말의 자숙을 일러주는 교훈이다.
말 때문에 남에게 상처를 주고 말 때문에
생사의 경계를 오르내리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입은 사람을 상하게 하는 도끼요, 혀는 사람을 헤치는 칼
(口是傷人斧 言是割舌刀)이라 했다.
말이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자신의 논술이다.
이목구비는 서로 도우면서 죄를 짓는다.
입이 죄를 지을때 가코나 귀나 눈도 더불어 공범을 한다.
엄히 따진다면 오장육부와 사지백체가 같은 교감범죄를 하는 것이다.
인간이 욕심 때문에 죄를 짓는다. 무욕무욕(無慾無辱)이라는 말은
욕심만 버리면 죄 될게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다.
혀는 화근의 문이요 몸을 망치는 도끼(口舌者禍患之門,滅身之斧)란다.
잘못 보아서, 못할 말을 해서, 냄새로 탐욕이 생겨서,
못 들을 것을 듣는 바람에 죄를 짓고 인생을 망치는 게 범죄다.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한 장면이다.
자신이 기른 청년이 애인을 죽이고 감옥으로 가자,
‘한 인간을 잘못 가르치고 길렀다는 죄책감 때문에 고뇌하던 노스님이
창호지에 닫을 폐자閉를 써서 몸의 모든 구멍, 즉, 눈과 귀와 코와 입
등에 붙이고, “인간의 모든 죄는 뚫린 구멍에서 시작 된다”고 하는
경고성 탄식과 함께 활활 타는 불에 뛰어들었다.
아무리 영화라지만 이토록 보는 이의 가슴을 아리게 하고
오장육부를 뒤 흔들기는 좀처럼 드문 일이다.
아담과 이브의 범죄도 뚫린 구멍에서 비롯했고,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장발장도 빵을 탐한 눈으로 부터 범죄가 시작된다.
“죄와 벌”의 이야기도 사람의 이목구비가 시작이다.
나다나엘 호손의 ‘주홍 글씨’, 범죄의 시발은 역시 뚫린 구멍 탓이다.
동서고금의 공사대소(公私大小)의 범죄가 다 시작은 뚫린 구멍에서 비롯된다.
그러고 보면 모든 낭패와 패망의 근본원인도 이 뚫린 구멍의
부주의라고 해도 맞는 말이다.
남의 이야기를 듣거나 TV를 보다가도 노스님의 말이 생각난다.
사건, 사고의 극적인 장면이 나올 때마다,
또는 불화하는 이웃을 볼 때도 같은 생각이다.
‘입, 귀,눈 같은 뚫린 구멍만 조심했으면 저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보고, 듣고, 말하는 뚫린 구멍이
모든 범죄의 시발점이 된다는 노스님의 말은 깊은 의미를 담아
오늘도 가슴을 두들긴다.
“정확하게 잘 보고, 신중하게 말하라.
향내가 탐심을 불러일으킨다, 코를 조심해라,
의롭고 옳은 소리만 들어라.
살얼음 같은 세상, 조심하며 살아라.”
“인간의 모든 죄는 뚫린 구멍에서 시작된다.”라고 했다.
- 武溪 김영진 수필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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