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우주 리듬을 타라>

장백산-1 2013. 8. 16. 02:12

동대성 | 2013.08.15. 21:41 http://cafe.daum.net/spiritrevolution/GxRM/527 

 
<우주 리듬을 타라> 디팩 초프라 지음/ 이현주 옮김

 
★ 베단타에 따르면 사람의 苦痛에는 다섯 가지 原因이 있다.

첫째, 자기가 누군지 모름.

둘째, 에고 또는 자아상self-image을 자기 자신과 同一視함.

셋째, 덧없이 사라지고 實在하지 않는 것들에 對한 執着.

넷째, 덧없고 實在하지 않는 것들에 對한 두려움에 휘말림.

다섯째, 죽음에 대한 두려움.

이 다섯 가지 原因들이 모두 첫째 원인―自己가 누군지 모름―에 包含된다고 베단타는 말한다.

나는 누구인가? 이 基本 質問에 答할 수 있으면 다음 質問들에 대한 答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무엇이 내 인생의 의미와 목적인가? 나는 죽어서 어디로 가나?(23~24p)

 

★ 당신 ‘몸’을 당신과 同一視해서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이것은 내 몸이다. 살과 뼈가 담겨 있는 이

가죽푸대가 바로 나이다.” 그러나 무엇이 몸인가? 무슨 根據로 그 몸을 당신이라고 말하는가? 당신이

‘당신 것’이라고 말하는 그 몸이 실은 땅, 물, 불, 공기로 끊임없이 돌고 도는 循環하는 宇宙의 質料들

이다. 창 밖의 저 나무도 마찬가지다. 어째서 당신은 당신 몸을 당신 것이라고 하면서, 저 별과 달과 창

밖의 나무들은 당신 것이라고 하지 않는가? 물론 그것들보다 당신 몸이 당신한테 더 가까이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結局 당신이 알고 있는 몸은 당신이 아니라 당신 몸이 자리 잡고 있다고 ‘生覺’하는

場所(時空間)일 뿐이다.

 

사람이 自己를 가리켜 부르는 ‘나’라는 物件이, 皮膚로 싸여 있는 그 무엇이, 自己 頭腦 어디엔가 있는

줄로 아는 사람들이 많다. 그것이 가슴이나 배꼽 부근에 있다고 生覺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어떤

과학 실험실에서도, 나를 나로 아는 意識의 中心이 어느 時空間에 자리 잡고 있는지를 밝혀내지 못했다.

(24~25p)

 

★ 우리 몸에서 基本的으로 이루어지는 에너지와 情報의 活動인 숨 쉬고, 먹고, 消化하고, 新陳代謝하고,

生覺하는 過程을 自細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얼마나 極的으로 얼마나 迅速하게, 게다가 아무 努力도 없이

瞬間瞬間  自己 몸을 새롭게 만들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우리는 수백만 原子들을 마시고 그것들은 심장 細胞, 간 細胞, 뇌 細胞 등으로 바뀐다.

숨을 내쉴 때마다 우리의 組織과 器管의 작은 조각들을 내놓아 그것들을 이 行星의 大氣와 交換한다. 방사

성 동위원소 연구 결과, 우리 몸의 98퍼센트가 1년 안에 모든 原子들을 交替한다는 事實이 밝혀졌다. 胃腸

내벽은 닷새 만에 새로워지고, 皮膚는 한 달, 肝은 여섯 주, 뼈는 석 달 만에 새로워진다. 수억만 년 세월의

進化 過程을 모두 記憶하고 있는 우리의 遺傳子 조차도 여섯 주쯤 지나면 以前의 것이 아니다. 그런즉 당신

이 말하는 肉體的 몸이라고 하는 것이 어느 몸을 말하는 것인가? 오늘 당신의 몸은 석 달 前 당신 몸이 아니

다.(39p)

 

★ 우리 몸-마음을 宇宙에서 分離시키는 것은 事物의 本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는 것이다. 우리의

몸-마음은 더 큰 몸-마음의 一部分이고 宇宙의 一部分이다. 그러므로 우리 몸의 生理 안에서 宇宙 리듬

이 循環하는 것이다. 宇宙는 진실로 별들의 심포니다. 우리 몸-마음이 이 심포니와 호흡을 맞출 때 모든

것이 애쓰지 않아도 절로 된다. 宇宙의 充滿함이 우리 안에서 황홀한 기쁨으로 흐른다.(53p)

 

★ 당신의 神經 組織은 하드웨어이고 당신 몸에서 일어나는 모든 化學的 變化들은 소프트웨어라고 생각

해 보자. 당신의 소프트웨어 또는 프로그램이 당신의 生覺, 느낌, 解釋, 欲望에 따라서 바뀐다. 그러나 프

로그래머가 있다. 누가 프로그래머인가? 沈默의 目擊者silent witness, 언제나 깨어 있으면서 모든 것을

지켜보는 者, 內面의 自我가 프로그래머이다. 침묵의 목격자와 接續할 때 당신은 그에게서 프로그램을

다시 만들 힘을 얻는다.

  

당신은 沈默의 目擊者로서, 모든 生覺을 生覺하는 者가 바로 당신임을 認識한다. 당신이 “나는 그 일에

대하여 이렇게 生覺한다”고 말할 때 그 ‘나’는, 生覺 배후에 있는 生覺하는 者thinker behind the thought

를 暗示한다. 그 生覺하는 자, 말없는 目擊者가 당신의 生覺들 사이 沈默의 틈에 있다. 그것은 몸이나 마음

안에서 發見되지 않는다. 몸과 마음 너머에 있기 때문이다. 모든 生覺과 生覺 사이에 沈默의 작은 틈이 있다.

거기 생각과 생각 사이 틈이 당신이 참 당신을 發見할 수 있는 곳이다. 바로 그 틈 사이가, 그것을 通해서 당

신의 個人的 마음이 宇宙의 마음과 連結되는, 通路, 窓門, 變形의 소용돌이(vortex)다.

 

  沈默의 目擊者, 그가 프로그래머이다. 깨친 者, 선택하는 者이다. 침묵의 목격자는 變하지 않는 당신의 한

부분이다. 당신의 ‘變하지 않는’ 部分과 만날 때, 그때 당신의 ‘變하는’ 부분 안에서 變化가 일어날  수 있다

.(65~66p)

 

★ “내가 죽으면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답은 이렇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죽지 않

때문이다.” 純粹 意識은 破滅될 수 없다. 表現될 수 있을 뿐이다. 이를 알면 더 이상 죽음이 두렵지 않다.

宇宙 안에 있는 그 무엇도 없어지지 않는다. 다만 그 모양이 바뀔 따름이다.

 

당신과 내가 電話로 말을 나누고 있는데 中間에서 누가 電話線을 끊는다. 그러면 우리한테 무슨 일이 일어

나는가? 우리가 어디로 가는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무 데로도 가지 않는다. 肉身이 죽을 때도

그와 같다. 우리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特定 神經係를 쓰던 特定 通話線이 잠시동안 斷切되는

것뿐이다. 그래도 여전히 우리는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 있다. 靈은 어디로도 가지 않는다. 解體되어

땅으로 돌아가는 것은 肉身이다.
 
그러면 그 靈은 어디에 있는가? 靈이 肉 안에 居한다고 生覺하는 것이 人間의 가장 큰 誤解 가운데 하나다.

사람들은 흔히 “누가 죽었다고 하면. 靈이 그에게서 떠났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靈은 몸 안

있는 무엇이 아니다. 몸과 분별하는 마음을 통해서 靈이 스스로를 나타내는 것이다. 時空間에 자리를

마련하고 몸을 通하여 靈 自己를 放送 또는 放映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보는 映畵의 主人公들이 텔레비전

수상기 안에 있지 않은 것처럼, 내가 그 음악을 듣고 있는 베토벤이 라디오 안에 있지 않은 것처럼, 내 靈

또한 내 몸 안에 있는 것이 아니다. 내 靈이 내 몸을 通하여 靈 自身을 投射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 이런 말이 있다. “人生 강물이 快樂과 苦痛의 둑 사이로 흐르는데 사람이 그 속에 뛰어든다.” 그것은

문제가 아니다. 問題는 우리가 肯定이든 否定이든 어느 한  쪽 둑으로 기어오를 때 發生한다. 삶이 가져

다주는 온갖 갈등과 대치에 조용히 自身을 調律하고 쾌락과 고통의 둑 사이로 便安하게 흘러가면서 어느

한쪽에도 사로잡히지 않고 둘을 아울러 經驗할 수 있을 때, 그때 우리는 自由를 成就한 것이다.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은 反對편들의 놀이이다. 그것들은 時間에 묶여 있기 때문에 어차피 暫定的이다.

당신의 本質인 靈spirit은 반대편들의 놀이에서 벗어나 있다. 그것은 永遠의 말없는 지복至福 속에 居한다.

自己 自身이 이 純粹 意識의 場, 靈임을 스스로 알 때, 그때 당신은 至福 自體인 根源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持續되는 幸福의 열쇠는 더 이상 幸福을 구하지 말고 이미 自己한테 있는 幸福을 알아차리는

데 있다. 당신이 행복을 구하는 限 결코 그것을 얻지 못할 것이다. 눈앞의 모퉁이 하나 너머 거기에 행복이

있다고 生覺한다면 당신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모퉁이를 계속 돌아야 할 것이다. 眞情한 幸福의 열쇠는 肯定

과 否定을 함께 넘어선 智慧의 場/純粹 意識의 場에서 놀이를 즐기며 사는 데 있다. 그 場이 바로 당신의 本質

 根源, 매혹적이고 거룩하고 기쁘고 자유로운 당신의 根源/바탕이다.(102~103p)

 

★ 어떻게 당신이 宇宙가 하는 일을 防害하는가? 靈的인 言語로 말하면, 당신이 스스로 만든 自我相에 自身

을 동일시 할 때, 그리하여 內的 自我를 喪失할 때, 당신 存在의 根源인 靈魂과 自己가 連結되어 있음을 느끼

못할 때, 그때 당신은 宇宙 知性이 하는 일을 防害한다. 一般 言語로 말하면, 앞으로 發生할지도 모르는

문제들을 念慮하기 始作할 때, 뭐가 어떻게 잘못될 것인지를 걱정하기 시작할 때, 萬事를 統制하려고 들 때,

혼자라는 느낌으로 두려워할 때, 그때 당신은 自然의 知能이 作用하는 것을 防害한다.(114~115p)

 

★ 당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경험이 무엇이냐고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날마다 하루에 두 번씩 고요한 沈默

의 자리로 옮겨가는 것이라고 답하겠다. 冥想을 通하여 나는 내 몸-마음의 바탕/根源/本質이자 내 삶의 바탕

인 ‘存在 狀態the state of Being’를 經驗한다. 나에게는 이것이 우리를 더 높은 水準의 意識 次元으로 끌어

올려 줄 수 있는 가장 重要한 經驗이다.

 

지금 당장 1분만 시간을 내어 눈을 감아보라. 눈을 감은 瞬間 自動으로 生覺들이 떠오를 것이다. 안 그런가?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눈을 감은 채 앉아 있으라고 하면 아마도 당신의 가장 큰 不評은 이런 것이리라.

“너무 많은 生覺들로 시끄러워요.” 이건 대단한 成果이다. 왜냐하면 대다수 사람들이 이런 不評을 하지 않고

살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냥 自己네 시끄러운 生覺들을 따라서 살아간다, 거기 그런 것들이 있는 줄 까맣게

르고서. 그러기에 당신이 沈默 冥想을 通해 먼저 배우는 것은, 당신의 ‘나인 나 I am’가 自己 生覺들을 바라

보는 것이다.(162~163p)

 

★ 無限 知能의 場에 接續하는 간단한 方法을 願한다면, 아침마다 침묵 명상을 하기 전 가슴에 集中하고

質問해 보라.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나는 원하는가?”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고, 그리고 귀 기울여

들어보라. 당신이 이것을 물을 때 無限 可能性의 場인 宇宙가 對答하게 되어 있다. 당신이 답을 찾으려고

애쓸 필요 없다. 질문하는 바로 그 순간 답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위의 두 質問을 하면서 당신은 無限 可

能性의 場인 宇宙意識이 당신을 위한 選擇을 하도록 招請하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의 실마리가 당신

삶 속에서 보이기 시작한다. 그 답은 한 瞬間의 洞察로, 靈感으로, 遇然한 機會로 또는 갑작스런 衝激으로

당신을 찾아올 수 있다.(171~172p)

 

★ 당신 몸으로 하여금 宇宙의 리듬에 맞춰서 더불어 춤추게 하라. 당신 안에 있는 긴장과 束縛을 모두

풀어버려, 당신 몸이 宇宙의 리듬을 타면서 쉬게 하라. 당신 몸을 움직이고 運動시키고 그렇게 계속 움

직여라. 당신 몸이 宇宙와 더불어 춤을 추면 출수록 그만큼 당신은 기쁨, 生命力, 에너지, 創造力, 同時

發生, 그리고 調和 平和를 經驗하게 될 것이다


출처 :풍경-소리   ▶ 글쓴이 :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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