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화스님과 현대물리학

인간의 근원

장백산-1 2014. 5. 14.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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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2장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 
          제3절 무아(無我)의 수행(修行) 3. 인간(人間)의 근원(根源)
            형해지색(形骸之色) 사려지심(思慮之心) 종무시래(從無始來) 인연력고(因緣力故) 염념생멸(念念生滅) 상속무궁(相續無窮) 여수연연(如水涓涓) 여등염염(如燈焰焰) 신심가합(身心假合) 사일사상(似一似常) 범우불각(凡愚不覺) 집지위아(執之爲我) 보차아고(寶此我故) 즉기탐진치등삼독(卽起貪瞋痴等三毒) 삼독격의(三毒擊意) 발동신구(發動身口) 조일체업(造一切業) - 원인론(原人論) - 그 다음 또 유사한 말씀이 있습니다. '형해지색(形骸之色) 사려지심(思慮之心), 내 몸을 構成한 이런 색(色)이나, 生覺하는 내 마음이나 이런 것이 무엇인고 하면' 形相이 있고 뼈가 있는 것이니까 역시 우리 몸뚱이를 말하는 것이지요. 우리 몸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生覺하는 우리 마음을 말합니다. '종무시래(從無始來) 인연력고(因緣力故)로, 무시(無始)로 쫓아오는 因緣의 힘인 고로' 無始란 始作이 없다는 뜻입니다. 어디 限界가 있는 것이 아니라 끝도 갓도 없는, 限界없는 太初이전부터의 因緣의 힘인 고로, 因緣이란 굉장히 의미심중한 말입니다. 一切 存在의 直接 間接 原因을 다 포함시킨 것이 因緣입니다. '염념생멸(念念生滅)하여 상속무궁(相續無窮)이라, 찰나찰나에 쉬지않고 생(生)하고 멸(滅)하면서 서로 계속해서 다함이 없다' 염념(念念)은 生覺生覺 또는 瞬間瞬間 刹那刹那를 말합니다. 내 몸이나 내 마음은 무엇인고 하면, 끝도 갓도 없는 오랜 옛날부터서
            業力, 業의 氣運이 찰나도 쉬지 않고서 순간순간 죽었다 살았다 자꾸만 계속해 오면서, 끊어지면
            무엇이 안 되어버릴 것인데 서로 상속(相續)해서 서로 계속해서 끊임이 없다는 말입니다. '여수연연(如水涓涓)이요 여등염염(如燈焰焰)이라, 마치 물방울이 방울방울 떨어지는 것과 같고, 마치 등불이 타올라가는 거와 똑같다' 하나가 떨어지면 물방울이겠지만 자꾸만 안 쉬고 떨어지면 비가 되어 버립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몸도 역시 細胞 하나하나가 모였지만 이렇게 많이 모이니까 하나의 形體가 이루어진다는 말입니다. 우리 몸이나 마음이 構成되는 것이, 물방울이 안 쉬고 떨어지면 비가 되듯이 물이 방울방울 떨어지는 거와 같습니다. 또한 엄밀히 보면 불꽃이 한번 타올라가고 그 뒤에 연속해서 타오르고 하는 불꽃인데, 자꾸만 계속하니까 우리가 하나의 불로 보인다는 말입니다. 물방울도 방울방울 따로 있는 물방울인데 줄곧 계속하니까 하나의 물줄기로 보이고, 등불도 불꽃이 타오르고 또 타오르는 것인데 자꾸만 타오르니까
            하나의 불꽃으로 보인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횃불을 돌리면 불이 동그랗게 보이지요. 그것이 불바퀴가 아닌데도 連續的으로 빙빙 도니까 불바퀴로 보이는 것과 같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 몸도 각 細胞가 모이고 모여서 構成된 몸인데, 이같이 많이 모이고 계속 움직이니까 하나의 몸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事實은 人間의 구성(構成) 問題요, 아주 깊은 哲學的인 問題이니까 수십 번, 수백 번 읽으며 이것을 依持할수록 '정말로 무아(無我)구나' 이렇게 느껴집니다. 이렇게 '신심가합(身心假合)하여 사일사상(似一似常)이라, 몸과 마음이 잠시간 화합(假合)되어서, 하나 같고 항상(恒常)하는 것 같다' 事實은 하나가 아니고 恒常함이 아닌데, 몸과 마음이 잠시간 假合해있기 때문에, 하나같이 보이고 항상하는 것같이 보인다는 말입니다. 그런 事實을, '범우불각(凡憂不覺)하고 집지위아(執之爲我)라, 어리석은 凡夫는 이런 事實을 깨닫지 못해서, 그것에 執着해서 ‘나’라고 여긴다' 마음과 몸이 잠시 모여지고, 또 몸은 結局 各 空무더기가, 細胞가 모인 假合에 불과한 것이고 마음도 역시 마음의 흔적이 어디에 있습니까? 지금 어느 곳에서도 마음이 안 보입니다. 달마(達磨)大師하고 2조(二祖) 혜가(慧可 487~593)大師하고 하신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2조 혜가 스님이 "제 마음이 不安합니다. 어떻게 좀 제도(濟度)해 주십시오" 그러니까, 달마 스님이 "그러면 그대 마음을 내놓아 봐라" 말하셨습니다. 그러나 不安한 마음을 아무리 찾아 봐도 없단 말입니다. 마음이 어떤 物件이라 무슨 形體 가 있습니까? 무슨 소리가 있습니까? 무슨 냄새가 있습니까?
            혜가 스님이 달마 스님한테 "아무리 둘러봐도, 아무리 찾아봐도 不安한 마음이 없습니다" 달마 스님께서 "그러면 너를 이미 제도해 마쳤노라" 하셨습니다. 미워하는 마음이 어디에 있습니까? 사랑하는 마음이 어디에 있습니까?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 마음이 있다고 生覺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병(病)이 일어납니다. 마음의 病, 몸의 病 말입니다. 어리석은 凡夫가 이런 理致를 깨닫지 못해서, 이런 가짜로 假合으로 잠시간 모여있는 그 몸 마음을 깨닫지 못해 가지고서 이것을 '나다' 이렇게 착각해서 '나'로 고집한다는 것입니다. '보차아고(寶此我故)로 즉기탐진치등삼독(卽起貪瞋痴等三毒)이라, 이 보물같은 나라는 것이 중요하다고 生覺되기 때문에 곧, 貪心이나 瞋心이나 癡心인 三毒心이 發動한다' 보물 같은 '나'라고 한번 固執하면 나같이 중요한 것이 어디 있습니까? 살인죄나 무엇이나 탐심, 진심, 치심 모두가 結局은 내가 보배같이 좋다고
            生覺되니까 犯하게 되는 것이지요.
            나를 보배라고, 보배같은 나라고 生覺되기 때문에 말입니다. 나한테 좋게 하면 탐심(貪心), 나한테 싫게 하면 진심(瞋心), 이러한 사리(事理)를 바로 못 보는 것이 치심(痴心) 아닙니까? 내가 있다고 生覺하면 바로 卽時에 내 소유(所有)라, 내가 있으면, 내 집이 있고, 내 아내가 있고, 내 동생이 있고, 모두 다 내 것이라고 합니다. 너무 愛着하는 마음, 미워하는 마음, 이것은 독심(毒心)입니다. 凡夫는 그 愛憎心이 毒과 같은 마음인 줄 모릅니다. 毒心, 그것은 自己도 害치고 남도 害칩니다. 자기 몸도 해칩니다. '삼독격의(三毒擊意)하여, 발동신구(發動身口)하고, 조일체업(造一切業)이라, 삼독심[탐심, 진심, 치심]이 우리 마음을 더욱더 자극하여 우리 몸과 입이 발동(發動)을 일으키게 해서, 一切 業을 짓는다' 미워지면 때릴려고 하겠지요, 미워지면 죽일려고 하겠지요, 욕설도 하고 말입니다. 그래가지고서 우리 생각 말 행동이 一切 업장(業障)을 짓는다는 말입니다. 이상을 원인론(原人論)이라 이름하여, 人間의 根源을 위대한 道人인 규봉종밀(圭峰宗密 780~841) 禪師가 말씀한 것입니다. 저는 경론(經論)을 많이 안 봤습니다마는, '내가 없다(無我)' 는 말씀을 한 경론 가운데서 이같이 절실하게 말한 대문은 별로 못 보았습니다. 한 번 더 제가 설명합니다. '사람 몸에 있어서 이것이 있다고 執着하는 것을 인아(人我)라 하고, 一切 萬法에 있어서 이것이 있다고 執着함을 법아(法我)라고 한다. 그런데 사람이라는 존재는 物質(몸)과 精神인 色, 受, 想, 行, 識의 假合인 五蘊인데, 이 五蘊이 가짜로 잠시간 화합(因緣假合)되어 있는 것이 몸과 精神이므로 恒常하는 하나인 내 몸과 마음의 固定된 실체(實體)가 있을 리가 없으며, 一切 萬法은 모두가 無數한 因緣 따라서 잠시간 假合된 것이므로 이것도 亦是 恒常하는 하나의 아(我)라는 固定된 性稟이 原來 없다' 이러한 事實을 보는 것이 아공(我空), 법공(法空)이라는 말입니다. 我空, 法空을 느껴야 비로소 工夫가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텅~비었다는 我空을 느끼고서 法空을 못 느끼면 소승(小乘)이고, 대승(大乘)은 我空, 法空을 다 느껴야 大乘인 것입니다. 그 다음 法門은, '참다운 智慧가 없기 때문에, 내가 있다고 계교하고 집요하게 固執한다. 그러나, 지혜로써 이것을 觀察하건대 정말로 내가 있을 수가 없다. 그러면 나라는 것이 대체 어느 곳에 있는가? 해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마디마디를 일일이 세밀하게 자세히 觀察해 보아도 마침내 ‘나’라는 것을 發見할 수가 없다. 그러면 어느 곳에 사람이나 또는 중생이 있는고? 이것은 衆生의 業力으로 因해서 잠시간 空의 무더기, 各 細胞를 만든다’ 저번에 말씀마따나, 天地創造 역시 衆生의 業으로 해서 만든 것입니다. 佛經에서 보면 衆生의 공업력(共業力)이라, 한 衆生의 業力이 아니라
            無數한 衆生의 生覺하는 生命의 힘 卽, 共業力이 모이고 모여서 原子를 만들어 가지고서 天地宇宙가 이루어집니다. '잠시간 空 무더기가 되어가지고서 여러 가지 因緣 따라서 생겨났다. 따라서 事實 主人이 없는 것(無我)는 마치 텅~ 빈 정자(亭子)에 머문 것이나 같다' 우리가 설사 我相에 固執을 한다 하더라도, 역시 主人이 없는 정자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事實인 것이니까 말입니다. 그러면 그때는 執着이 안 생기겠지요. 그 다음 법문입니다. '우리를 構成하는 이런 몸뚱이나, 또는 生覺하는 마음이나 이런 것은 무엇인고 하면, 끝도 갓도 없는 過去로부터서의 因緣의 힘(業力) 때문에, 찰나찰나 生하고 滅하면서
            끝없이 서로 이어 왔다. 마치 그것은 물방울이 방울방울 떨어지는 거와 같고, 또는 마치 불꽃이 焰焰이 타오르는 거와 같다. 이같이, 몸과 마음이 잠시간 和合되어서 하나처럼 보이고 또 항상 있는 것처럼 보이니까, 어리석은 凡夫가 이 事實을 깨닫지 못해가지고서 이 假合物인 몸과 마음을 나라고 固執한다. 따라서, 이와 같은 假合物인 내가 보배롭고 중요하다고 生覺하기 때문에 곧, 貪心이나 瞋心이나 癡心이나 이런 三毒心을 일으킨다. 三毒心이 다시 또 우리 意識을 격발(擊發)시켜서,
            우리 몸이나 입이 發動해서 一切 業障을 짓는다’ 이렇게, 理論的으로는 우리가 이제 내가 없다(無我)는 것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마는, 그렇더라도 역시, 우리는 좀체 나를 못 뗍니다. 역시 내가 중요하니까 말입니다.
          출처 : 본정 김영동 법사, 다음카페 : 마음의 고향 성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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