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나는 없다 (16)

장백산-1 2014. 7. 29. 23:50

 

 

 

나는 없다(16)-생각과 느낌 뒤에는 欲望이 도사리고 있기 십상입니다 나는 없다 / 바로보기

2013/08/26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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欲望에 사로잡히면 우리의 認識은 우리가 願하는 것에만 좁게 焦点 맞추어져 우리는 긴장과 갈등, 불안과 초조, 불만족 등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 마음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어떻게 얻을 수 있을지 알아내려고 분주해져서 이리저리 날뛰고, 우리 느낌은 과연 그것을 얻을 수 있을지 안절부절못합니다. 욕망에 휘둘리면 우리의 내면은 갈수록 시끄러워지고, 원하는 것에만 좁게 초점을 맞춤으로써 전체 진실을 보지 못하게 됩니다.... 

 

眞實이 가진 最大 强点은 유지비가 거의 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거짓은 고투와 애씀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眞實은 너무나 自然스럽고 豫測 不可能하며 모든 것을 動員하기 일쑤입니다. 眞實에 따라 살기 시작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게 됩니다. 어떤 경우에는 經歷 自體를 깨끗이 지워서 삶을 根本的으로 變化시켜버릴 것입니다. 하지만 삶의 構造를 전혀 變化시킬 필요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眞實한 것만이 남아서 무엇이 남고 무엇이 사라질지 전혀 말할

거리가 없게 될 것입니다....

 

生覺과 느낌 뒤에는 欲望이 도사리고 있기 십상입니다. 欲望은 우리의 生覺을 몰아가고 느낌을 불러일으킵니다....

欲望을 채우는 것은 더 많은 欲望으로 우리를 이끌 뿐입니다. 우리는 대개 뭔가가 不便하여 약간의 안도감을

얻으려고 欲望을 채우기 위해 애쓰지만, 그런 程度의 滿足은 欲望의 불꽃을 더욱 자극할 따름이지요.....

欲望은 지금 現在 瞬間을 向하는 것이 아니므로, 眞實이 가진 確固함과 實在性이라는 特性이 없습니다.

欲望의 對相은 늘 現在에 있지 않은 무엇입니다.(이미 여기에 있는 무엇을 欲望한다는 건 말이 안되지요.)

                                                                                                                                                    -69~71쪽-

 

 

 

욕망(欲望)!

바라는 마음 원하는 마음입니다. 무언가가 不足하거나 없다고 여겨 그것이 채워지고 獲得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지요. 이 構造를 잘 들여다 봅시다.

 

지금 이 瞬間 이대로인데서 뭔가 不足하고 없다는 것입니다. 實相에 어둡기 때문에 이런 마음의 패턴이

發動하는 것입니다. 諸法實相은 곧 諸法無相입니다. 들여다보고 들여다보아도 이것이랄 게 定해져 있지

않다는 말입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서로 依持해서 생겨나기 때문에 스스로의 獨立的인 性稟이 없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依持한 것들 중에 하나만이라도 무너지거나 變하거나 位置를 바꾸거나 제 機能을 못해도,

나타나는 現象은 판이하게 달라집니다. 이 沙上樓閣같고 살얼름판같은 現實을 固定不變한 무엇으로 믿어버리고, 그것을 取하고 버리려고 하니 어리석을 뿐이지요.

 

옛기억을 더듬어 보지요. 지금 함께 사는 사람과의 因緣을 살펴봅시다. 제가 바깥 양반을 만난 것은 대학시절 어느 자취방에서 였습니다. 그 집은 집주인이 있는 空間, 없는 空間 다 추려내 늘리고 늘려서 대여섯 개의 房을 만들고 학생들에게 방을 빌려주었습니다. 다행히 함께 사는 선후배들끼리 사이가 좋아 일주일에 한번씩 방마다 돌아가면서 식사를 대접하였습니다. 저는 기숙사 생활을 했었는데, 마침 여름방학이라 방학동안 그곳에서

자취하는 친구와 함께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마침 제 친구가 저녁식사를 대접하게 되었고, 하필 거기에 선배방에 놀러왔던 지금의 바깥 양반이 오게 되었습니다.  그게 우리들의 눈에 보이는 最初의 因緣이었지요.

 

만약에 말입니다. 이 양반이 이날 다른 約束이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이날 선배방에 오다가 가벼운 사고라도

당해 오지 못하게 됐으면 어땠을까요? 만약에 그가 낯을 가리는 성격이라 이런 식사자리를 피했다면 어땠을까요? 만약에 말입니다. 만약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지금의 現實은 판이하게 달라질 것입니다. 당신의 現實/삶도 당신의 意志가 아니라

온 宇宙가 함께 參與하여 이루어진 것입니다. 過去의 일도 그랬고 現在도 그렇고 未來도 그럴 것입니다.

모든 것이 그러하니 어디에 손을 대어서 물길을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겠습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아주

微弱한 波動 程度. 그리고, 모든 것이 서로 依持하여 생겨났다는 事實은 그것들 自體가 텅~비었다는 事實입니다. 固定不變하는 獨立된 性稟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온(五溫)이 개공(皆空)입니다. 이리 저리 물길을 돌릴

理由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해도 허깨비와 相對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瞬間에서 微動할 理由가 없습니다. 獨立된 무언가 따로 있다고 여기니까 그것을 찾으려고 欲望하는 것이지요. 그런 것은 없어요. 모든 게 假建物이고, 幻影이고, 물거품이고, 허깨비이고,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지요. 그러니 바로 보면 움직이지도 않고 解脫하는 것입니다. 

 

欲望은 欲望을 낳을 수 밖에 없어요. 보다 더 나은 것, 보다 더 좋은 것, 보다 더 完全한 것..... 이런 階段式의 欲望은 끝이 없어요. 幻影 속에서 찾고 있으니 말입니다. 깨달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이 不滿足스러우니 完全한 平和를 欲望한다고 합시다. 그러나 自身의 한 生覺에 속은 것이지 다른 자리의 깨달음은 없습니다. 모든 것이 스스로의 性稟이 비춘 아지랑이임을 단박에 간파하고 스스로 如如해지는 일 外에 다른 밝음은 없지요.

 

本來 아무일이 없는 겁니다. 本來 面目, 本來 無一物, 본래 마음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서 얻어지는 게 아닙니다. 모든 일은 本來 自性이 있는 그대로 비춘 그림자일 뿐  아무일도 없음을 몰록 確認하여 因緣따라 사는 것이지요.

 

工夫에 段階를 두지 마십시오. 깨달음을 그려놓고 스스로의 生覺에 속아 깨달음을 欲望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이 瞬間 밝지 않다면 永遠히 밝을 수 없습니다. 이 工夫는 分別의 틀에서 解放되는 것이지, 다른 道理를 얻는 게 아닙니다. 分別에 떨어짐을 꺼릴 뿐, 깨달음을 구하지 않습니다. 分別은 段階的으로 무너지는 게 아닙니다. 分別은 우리가 그것의 正體를 알면 금방 사라집니다. 虛相이기 때문이지요. 스스로 허깨비의 마법에 걸려있기 때문이지요. 眞心으로 모든 것이 허깨비인줄 알면 금방 풀려납니다. 그것이 그것인 채로 그게 아닌 줄 알면서 필요에 따라 사용하게 되지요.   

 

生覺하지 마십시오.

感情에 사로잡히지 마십시오.

欲望하지 마십시오.

지금 이 瞬間에 머무십시오.

 

이런 말이 도리어 拘束입니다.

 

事實 할 것 하지 않을 것 아무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텅~비었고, 우리의 意持도 텅~비었고,

해야한다는 것도 텅~비었고, 하지 말아야 하는 것도 텅~비었습니다. 텅~비고 또 텅~ 비어서 온 世上이

텅~텅~비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온갖 草木이 푸르르고, 生覺이 돌아가고, 마음이 生動하지요. 

오늘도 어김없이 出勤해서 하루종일 먹고자는 아가들에게 선물할 무엇들을 벌어와야지요. 그러나

새가 하늘을 날아가도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마냥 이 世上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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