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나는 없다 (20)

장백산-1 2014. 7. 31. 22:36

 

 

나는 없다(20)-"眞理를 바라는 欲望 또한 채워질 수 없는 欲望의 하나입니다." 나는 없다 / 바로보기

2013/09/03 07:32

복사 http://blog.naver.com/mongza04/130175456361

전용뷰어 보기

 

 

 

 

眞理에 比하면 당신이 願하는 무엇을 얻는 것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습니다. 重要한 것은 眞理이기 때문에

이 瞬間의 便安함이나 不便함도 더 以上 問題가 되지 않습니다. 重要한 것은 '하나인 根源'입니다. 重要한 것은

당신의 '참자아(self)'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가장 참된 渴望조차도 休息을 가져다주지는 않습니다.

眞理에 대한 渴望은 다른 모든 欲望들을 태워버리는 심오한 불길이지만, 根本的으로는 이것 또한 靈的인 옷을 걸치고 있는 거짓입니다. 왜냐하면 '하나의 根源'에 대한 渴望은 根源과 分離되어 있다는 거짓에 基般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이미 '하나의 根源 '自體 이니까 말입니다. 

 

갈망의 경험 자체보다 갈망의 대상(하나의 根源, 自由, 깨달음)에 繼續 集中하면,

당신은 그보다 더 被想的인 다른 것들을 欲望하는 사람들이 겪는 것과 똑같은 苦痛을 겪을 것입니다.....

 

아무리 고상한 欲望이라도 당신의 存在를 縮小시킨다는 事實을 기꺼이 直視할 수 있어야 합니다.

眞理를 바라는 欲望 또한 채워질 수 없는 欲望 중의 하나입니다.....

 한 瞬間 하나인 根源을 確實하게 把握했다 할지라도 다음 날 아침 깨어나면 더 많이 그렇게 하기를 원하게 됩니다.

하나인 根源이나 깨달음에 대한 欲望도 欲望이라는 점에서는 다를 것이 없습니다.....

 

眞理를 願하는 것 또한 다른 欲望들과 마찬가지로 可望없는 일임을 보게 될 때만이, 우리는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아무리 진실한 갈망이라 할지라도 갈망의 경험이 아니라 갈망의 대상에 집중한다면 우리는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渴望의 經驗 自體에 集中하면 渴望은 활짝 열려 고요해지고, 우리는 平和라는 우리 存在의 眞實을 經驗하게 됩니다.  

 

-77~79쪽-

 

 

무엇을 欲望한다는 것은 分離를 前提로 합니다. '지금 있는 이대로'가 아닌 다른 것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돈이나 명예나 사랑을 추구하는 것이나 깨달음을 추구하는 것은 生理가 똑같습니다. 지금 이대로가 아닌 다른 곳에

視線을 두고 있다는 점,  돈·명예·사랑이란 게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깨달음이라는 게 따로 있는 듯한 느낌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흔히 꿈을 꾸고 있다고 표현하지요.

 

欲望은 分別 妄想의 다른 表現입니다. 이 분별 망상이 없다면 깨달음에 대한 欲望도 있을 수 없고 結局 깨달음도 

오지 않습니다. 人間만이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은 人間만이 分別妄想에 사로잡혀 있다는 뜻으로도 풀이할 수 있습니다.

지금 있는 이대로 完全함을 깨닫는 것을 깨달음이라고 하지요. 그러나 지금 있는 이대로에 무엇이 있어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時間的인 지금, 事物로서의 있는 그대로가 아님을 알아야합니다.

먼 未來를 生覺하면서 지금 이대로 일 수 있습니다.

苦難 속에서도 지금 이대로일 수 있습니다.

過去를 회상하면서도 지금 이대로일 수 있습니다.

 

지금 이대로라는 것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것이 平等하다는 것입니다.

그런저런 區分되는 物件과 生覺과 事件이 모두 다르지 않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지금 일어나는 일에서 어느 것하나

不足한 게 없고, 더 얻을 게 없고 찾을 것이 없습니다. 내가 宇宙旅行을 하나 관타나모 수용소의 깜깜한 독방에 갇혀 있으나 똑같은 지금 이대로인 것입니다. 이게 아니고서는 지금 있는 이대로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境界를 따라가서는 도무지 解決할 수 없는 일이지요. 境界를 따라가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이 일임이 분명하지요. 이 일이 分明해지고 보면 境界가 따로 없음도 分明하지요. 分明하다는 것도 눈에 보이는 分明함이 아님을 아십시오. 疑心의 여지가 없고, 否定할 수 없고, 도저히 여기에서 벗어날 수 없음이 절감됩니다. 이게 명확해질수록 깨달음에 대한 欲望도 사그라집니다. 반대로 깨달음에 대한 欲望이 저절로 끊어지면, 이 일이 너무도 명확해지지요.

동전의 兩面입니다.

 

이전에는 깨달음을 쫓아다녔다면, 이제는 깨달음이 먼저 와 반깁니다.

아니 온 宇宙가 이 일이어서 벗어날 구멍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그림을 그려 그리되어야지 하지는 마세요. 이미 욕망 속으로 들어간 일이니까요.

이러한 표현이 共感될 날이 분명 올 것입니다. 

 

영성서적이나 경전이나 어록을 읽는 바른 태도는 지금의 工夫를 點檢하고 共感하며 刺戟을 받는 일이어야지

자신이 공감할 수 없는 구절을 목표로 추구하는 일이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공부에 장애를 만드는 일입니다.

아주 미묘한 공부입니다. 이 공부는 목표없는 목표에 도달하는 일입니다. 앉은 자리에서 꿈쩍 않고 있다가 문득

如來智임을 確認하는 일입니다. 境界를 바꾸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의 認識이 바뀌는 일입니다. 진짜로 알고 있던 게 가짜임을 알지만, 이 가짜 어느 것도 버릴 게 없이 통째로 差別없는 진짜임을 깨닫는 妙한 일입니다.    

 

깨달음을 欲望하십시오.

이것에 대한 欲望없이 깨달음의 길로 들어설 수 없습니다.

그러나 終局에는 깨달음은 欲望의 對相이 아님을 깨달으십시오.

깨달음이란 게 따로 없음을 깨달으십시오.

깨달음이 이미 現前해 있음을 깨달으십시오.

마지막 깨달음의 欲望이 재가 되어 사라지는 순간,

당신은 한없는 自由를 느낄 것입니다.

 

온 세상이 이미 그러함을 느낄 것입니다.

당신이 당신인채로 당신이 아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온 宇宙에 境界가 없어(無境界) 空中을 遊泳하는 스스로를 보게 될 것입니다.

事物事物이 스스로의 표현임을 보게 될 것입니다.

 

새벽녁 아기의 잔 기침 소리가 온 宇宙를 흔들어 깨움을 느낄 것입니다.

 

잘 보십시오.

每事에 스스로를 잘 보십시오.

 

 

'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는 없다 (22)  (0) 2014.07.31
나는 없다 (21)  (0) 2014.07.31
죽은 영가는 바빠...  (0) 2014.07.31
我心等虛空  (0) 2014.07.31
우리란???  (0) 2014.0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