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도올 김용옥의 MBC특강 '우리는 누구인가? - 제19강 기와 과학' 전문

장백산-1 2014. 10. 25. 22:40

 

 

 

 

   도올 김용옥의 MBC특강 중에서            

 

    지혜사랑                                           

    2007/01/06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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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 김용옥의 MBC특강 '우리는 누구인가? - 제19강 기와 과학' 전문

(2004/05/10 )

 

열렬히 환영해 주어서 고맙다. 여러분 ‘활동운화지기(活動運化之氣)’ 덕분에 날마다 좋은 강의가 되고 있다. 오늘은

과학 이야기라 골치 아픈이야기는 아니다. 친구의 이야기에 의하면, “지난주의 밤 12시경 서울의 한 병동에서 싸움이 나고, 난리가 났더라고.... 도올의 강의를 듣고 환자들 끼리 반으로 나눠가지고 열렬한 토론과 논쟁이 일어났다.

 

” 이런 것은 좋은 것이다. 내 강의로 인해서 논란이 되고 찬반이 오가고, 그런 것이 좋은 현상이다. 

우리 사회가 상당히 민주화되었고, 우리 사회는 밝아지고 있다는 증거라고 본다.


찬반을 이야기하기 전에, 내가 말하는 것은 아주 단순한 것이다. 1세기 전만 해도 예수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국민의 99%가 예수가 누구인지, 기독교가 무엇인지, 예수의 이름도 들어 본 적이 없어서, 여호와의 하나님이 무언지 몰랐다. 그런 상태에서 반만년을 살아왔다, 우리가 살아 온 역사가 예수를 몰랐다고 해서 야만의 역사로 규정하고 하나님을 몰랐던 역사로 규정할 수 없다,  예수를 모르고서도 우리는 잘 살아왔다. 하나님을 모르고 잘 살아온 歷史도 배워야 한다.

 

  
하나님을 모르고 살아온 우리 民族의 歷史를 보여주는 것이 역사가의 임무요, 우리 哲學思想家의 임
무다.

나는 절대로 내면적인 종교 신앙에 대한비판은 하지 않는다. 우리 어머니는 평생 기독교 신자였다. 돌아가실 때까지 새벽기도를 다니셨다. 기독교의 철저한 신앙 속에 살았다. 어머니는기독교를 생각할 적에 ”나 혼자 새벽에 교회에

가서 새벽기도를 할 때, 하나님께 기도할 때가 가장 좋았다. 기독교를 말할 때 새벽기도 밖에 말할것이 없다.“

 
나는 기독교의 내면적인 신앙에 대해서 말은 안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광신
(狂信:All Kinds of Fanatic Beliefs: 모든 형태의 광신적 신앙)이다. 이것은 굉장히 위험한 한 짓이다. 나는 광신에 대해서 반대한다. 모든 현상 중 너무 제도화된 종교(InstitutionalizedReligions)만을 종교라고 할 수 없다. 교회라는 조직을 가지고, 절간이라는 조직을 가진 것만을 종교라고 말할 수 없다.


종교의 주제는 하느님만이 아니다. 신을 믿느냐 안 믿느냐에 따라서 종교인이 되고 비종교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종교의 주제는 신이 아니라, 우리 인간의 유한성이다. 인간이 왜 이렇게 유한하냐? 인간은 왜 유한하냐? 그리고 인간의 한계상황, 즉 인간의 죽음이다. 죽음이 종교에 있어 가장 중요한 주제이다. 이런 문제에 있어

인간은 항상 겸손해야 한다. 신을 믿느냐 안 믿느냐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 ‘나’라는 존재를 넘어서는 신에 대해서 경복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지닌 자는 모두 종교인(Religious Man)이다.

 

 

나는 기독교를 비판하고 유교를 편들고 불교를 비판하고 다른 어떤 종교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종교적 현상에 있어서 인간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광신이라는 것이 우리 사회의 종교적 광신으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현상에 대한 광신, 맹목적으로 남을 탄압하는 이러한 종교적 광신은 위험하다.

 

※어느 사회에 있어서든지 정치형태의 독선과 배타는 종교적 광신과 구조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모든 정치적 지도자는 종교의 마스크를 가지고 있으면 안 된다. 자기 개인으로 얼마든지 신앙 종교를 가지는 것은 괜찮으나, 자기가 공인으로서 지도자적 모습을 나타낼 때는 종교를 내세우면 안 된다.

  
최한기 선생은 말하기를:儒道中(유도중), 取倫綱仁義(취윤강인의), 辨鬼神災祥(변귀신재상), 西法
中(서법중), 取歷算氣說(취역산기설), 祛怪誕禍福(거괴탄화복), 佛敎中(불교중), 以其虛無(이기허무), 換作實有(환작실유), 和三歸一(화삼귀일)

 

: 유교 가운데서 삼강오륜, 인의는 취하되, 귀신이나 재앙과 상서로움은 좇아버려야 한다.

 

 

 서양의 문화 중에서 계산하는 능력과 과학적인 이론인 기설(氣說)은 취할 만하다. 그러나 괴이하고 허탄한 화복(천당에 가네, 지옥에 가네)을 논하는 이론은 버려야 한다. 불교 가운데, 소승불교의 허무주의를 극복하고, 대승의 실유 사상을 취한다면, 유교, 기독교, 불교등 세 개의 종교가 합쳐져서 하나로 돌아갈 수 있다.

 

 

 ※허탄(虛誕):허망한其餘服食器用(기여복식기용), 出自土宜(출자토의), 言語禮節(언어예절), 乃制度文飾(내제도문식), 不可歸一(불가귀일): 그 밖의 음식과 용기들은 자기 풍토에서 알맞게 나온 것이고, 언어와 예절 및 제도와 문화 등은 절대로 하나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


최한기의 사상은 종교도 우리 풍토에 맞아야 하며 기독교도 김치기독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도 한국에 10년만 살았더라면 김치를 먹었을 것이다.


최한기는 氣化人道敎(기화인도교)를 주창했다. 師者(사자), 無位而行敎化者也(무위이행교화자야), 以經常之道敎化(이경상지도교화): 종교란‘으뜸을 가르친다’는 뜻인데. 최한기가 주창한 종교문화는 천지운화를 가르치는 것이 으뜸가는 종교라고 했다. 그가 말하는 종교에는 목사가 있을 수 없으며, 성직자도 있을 수 없다. 오로지 스승만 있을 뿐이다. 스승이란 직위나 권의도 없이 가르쳐 감화를 일으키는 사람일 뿐이다. 항상 상식적이고 떳떳한 것만으로 남을 교화하는 사람이 스승이라 했다.

 

  
以偏僞之道敎化愚民者(이편위지도교화우민자), 縱得一時之熾延(종득일시지치연), 非久消滅(비구소
멸), 凡事不知其曲折(범사부지기곡절), 但見其發現之端(단견기발현지단), 謂之神通神奇神異神妙(위지신통신기신이신묘), 若知其曲折(약지기곡절), 幷無神通神妙等稱號(병무신통신묘등칭  호)

 

: 위선적인 도를 가지고 사람들을 교화하는 자는 일시적으로 사람들로부터 호응을 받을지 모르나 머지않아 소멸해버린다. 매사에 그 연유나 곡절을 모르고 단지 겉으로 나타난 단서만 볼 적에, 그런 것을 보고 신통하다고, 신기하다고, 신묘하다고 말한다. 만약 그 곡절을 알고, 그 내면의 의혹을 알게 되면 신통, 신묘 따위의 말은 없어지게 된다.

 

  
又或不知其所以然(우혹부지기소이연), 而一次經歷(이일차경력), 知其如是(지기여시), 再次經歷(재
차경력), 知其如是(지기여시), 至於積累經驗(지어적루경험), 不過如是(불과여시), 亦無神通神奇稱號(역무신통신기칭호)

 

: 또 혹은 그렇게 되는 까닭을 모르고, 한번 경험을 하면 그렇다는 것 을 알게 된다. 재차 경험을 하여 그 것을 알게 되고, 경험이 누적되면 ‘그렇다’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역시 신통하다니, 신기하다니하는 칭호는 없어지고 만다.

 

蓋神通神奇之神(개신통신기지신), 指其不可測(지기불가측). 不可知而言也(불가지이언야), 苟使人之經驗(인지경험), 至於可測可知(지어가측가지), 則推前測後(칙추전측후), 自由其方(자유기방), 承天化人(승천화인), 亦有其術(역유기술), 在於斯民(재어사민), 無所謂神通神奇也(무소위신통신기야)

 

: 대저 신통 신기하다에서 신(神)은 헤아릴 수 없음을 가리키고, 알 수 없음을 일컫는 말이다. 비록 사람을 시켜 이것을 경험케 하여, 헤아릴 수 있고, 알 수 있는 데에 이르면 앞일을 뒷일을 미루어 알 수 있게 된다. 그러한 방법이 생겨 나며는, 하늘을 잇고 인간을 교화하는 어떤 구체적인 방법이 생겨나서 이런 사람에게는 소위 신통, 신기라는 말이 없어지게 된다.

 

  
事物之可致疑惑(사물지가치의혹), 與不足疑惑者(여부족의혹자), 皆歸之于神(개귀지우신), 可除却
者(가제각자), 不能除却(불능제각) 可究明者(가구명자), 不能究明(불능구명): 사물에는 의심할 것이 있고 의혹을 가지지 않을 것이 있는데, 이것을 모두 하나님에게 돌려버리면, 우리가 除去할 수 있는 것도 제거할 수 없게 되고, 규명할 수 있는 것도 규명하지 못하게 된다.

  
바로 이것이 최한기가 말하는 종교의 폐단이다. 19세기 중반의 우리 선조 한 분의 말씀인데, 들어보면 들어볼수록 옳은 말이다. 나는 이 책 <기학:氣學>을 펴놓고 어떻게 이렇게 훌륭한 분이 그 시대에 있었는지 정말로 놀랍고 자랑스럽다.

 

活動運化氣之靈(활동운화기지령), 强名曰神(강명왈신), 天有大氣之神(천유대기지신), 人有人氣之神(인유인기지신), 物有物氣之神(물유물기지신), 神之能事(신지능사), 己諸於活動運化之氣(기제어활동운화지기), 知氣(지기), 則知神(즉지신), 見氣(견기). 則見神(즉견신), 不知氣(부지기), 則不知神氣(즉부지신기)

 

: 활동운화 하는 영험서린 기를 억지로 하느님이라 한다. 하늘, 즉 대기(大氣)에도 신이 있고, 사람에게는 인기(人氣)의 신이 있다. 만물에는 물기(物氣)의 신이 있고, 이미 신의 능함이 활동운화지기에 들어나 있으니, 기를 알게 되면 곧 신을 알게 되고, 기를 보게되면 곧 신을 보게 된다. 그러나 기를 알지 못하면 곧 하느님을 알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서양의 근대(Modernity)에서 우리 동양이 배운 것이 있다. 서양이 우월하다는 것을 보였고, 우리는 서양에 밀렸다. 우리는 서양을 부러워하고 본받고 배우려 했다. 19세기 말과 20세기에 서양을 통해 배우려 했던 것은 모든 사람의 일치된 견해이다. 그래서 나도 서양을 배우기 위해 유학을가서 어렵게 공부를 했던 것이다. ※근대성(Modernity)이라는 말은 서양의 근대를 특징지으려는 우월한 생각을 말한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서양 문명이 가지고 있는 장점은 세 가지 밖에 없다.

 

첫째는 의회민주주의(Constitutional Democracy)라는 정치제도이다.

          이것은 서양문명이 우리에게 대단히 우월했던 것이다.

 

두 번째는 서양의 자본주의(Capitalism)였다.

 

이것이 문명의 가치를 창출하는 방식으로 엄청나게 효율적이었다.

옛날 우리가 財貨를 만들어내던 것에 비하면 자본주의라는 것은 대단했다. 우리는 못 당했다.

 

또 하나 강력한 것은 서양의 科學文明(Science)이었다. 우리가 배우지 않을 수 없는 문명이었다.

 

    세 가지를 빼놓고 서양이 우리보다 나은 것은 없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우리 문명은 의회민주주의와 자본주의에 있어서는 불과 50년 만에 서양수준 이상으로 높아졌다. 이제 우리는 의회민주주의와 자본주의에 있어서는 자신감과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남은 것은 과학문명인데, 우리는이것이 뒤지고 있다. 과학문명에 있어서 뒤지는 문명이 되면 우리는 망한다.

 

 

서양의 문명은 기독교라는 배경이 있어서 과학문명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기독교와 과학을 동시에 흡수 한다는 것과 무관하게 돌아가고 있다. 사유와 정보의 창조적 세계일뿐이다. 19세기 중엽의 최한기는 벌써 이것을 말했던 것이다. “19세기 중엽의 진짜 강점은 과학에 있는데, 종교까지 흡수해 버리면 우리는 망한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최한기 思想의 가장 核心的인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宗敎까지도 기학(氣學)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종교도 과학의 일부가 되어야만 참다운 과학이 생겨날 수 있는 것이다. 서양문명에서 과학에 대해 배울 것이 너무

많다. 科學的 思惟란 것은 우리儒敎가 갖고 있는 많은 問題들를 해결해 줄 수 있다. 최한기는 聖經을 읽지 말라 했다. 여기서 聖經은 기독교의 성경이 아니고 우리의 四書三經을 말한다.

 그 성경 대신에 천경(天經)을 읽으라고 했다.

 

천경(天經)이란 “自然에 적혀져 있는 말씀”이라 했다. 農夫善讀天經爲上農(농부선독천경위상농), 工匠能職天經爲良工(공장능직천경위양공),是儒也(시유야): 농부가 천경 읽기를 좋아하면 상농(일류 농부)이 되고, 장인(匠人)은 天經을

能히 알 때 양공(良工)이 된다. 이는 유학자도 마찬가지다. 얼마나 위대하냐? 19세기 중반에 우리나라 사상가가 사농공상(士農工商)제도를 이런 식으로 거부해 버린 것이다. 서양이 의회민주주의, 자본주의, 과학문명 등에서 앞서 있기는 하나, 최근 미군의 이라크 포로학대사건, 미국의 이라크 침공의 근본적인 원인에는‘우리문명이 인권이라는 문제에 있어서 너희들 문명보다 훌륭하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인권을 보호한다는 윤리적인 명분을 갖고 쳐들

어간 미군들이 포로들을 그렇게 학대 했다니. 그것은 서구민주주의 몰락을 의미한다.

 

 

최한기는 서양의 지동설을 듣고 있으면서, 자기가 방안에 가만히 앉아 있는 줄 알았는데, 굉장히 빠르게 돌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人乘地而運轉(인승지이운전), 則一日內(즉일일내), 坐行七萬二千里矣(좌행칠만이천리의): 사람이 지구를 타고 회전하고 있다. 하루 안에 가만히 앉아서 칠만 2천리를 간다. 이 世上에 停止하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정(靜)이란 모두 동지정(動之靜)일 뿐이다. 활동운화하는 이 우주 바깥에 停止된 天堂이 있다는 것은 난센스다 했다. 최한기의 이러한 이론은 대단한 이론이다. 그가 말하는 활동운화에는 오늘날의 인문과학의 영역인 일신운화(一身運化), 사화과학의 영역인 통민운화(統民運化), 자연과학의 영역인 천지운화(天地運化)가 있다.


최한기는 “내 일신은 없더라도 통민은 있다.” 고 했다. 아주 객관적이다. 우리 주위에 “내가 죽으면 이 세상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대한민국 사회는 없어도 천지는 있다. 主我心而穿?(주아심이천롱), 此所以難通於氣(차소이난통어기), 易入於術(이입어술): 나의 주관을 가지고 자꾸만 천지운화를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일신운화, 통민운화, 천지운화가 모두 일기지운화(一氣之運化)이다.

 

이것을 하나의법칙으로 통일하려는 것이 나의 기학이다.

 

 

최한기의 <기학>이라는 책을 잘 들여다보면 엄청난 세계관과 우주관에 대한 구상이 담겨있다. 大氣透徹人身之中(대기투철인신지중), 漬洽皮膚之間(지흡피부지간), 寒暑燥濕(한서조습), 內外交感以爲生(내외교감이위생), 雖須臾間隔絶(수수유간격절), 不得生(부득생), 以氣爲命(이기위명), 以氣爲生(이기위생):

 

내 일신에 일어나고 있는 運化라는 것이 내 멋대로, 내 生覺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 같지만, 땀구멍 등 모든 구멍을

통해서 大氣運化와 계속 交接이 되고 있다. 비록 잠시 동안이라 할지라도 대기운화를 떠나 살 수가 없다. 나는 오로지 대기운화의 활동운화와의 교접을 통해서, 나는 내 命을 얻고, 나는 내 生命을 유지하는 것이다.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인문과학적인 세계라는 것도 천지운화의 법칙과 일치되는 그 무엇이 있다고 생각했다.

 

인문과학, 사회과학, 자연과학의 공통분모는 과학이다. 오늘날 이러한 모든 이야기가 사실, 최한기가 19세기 중엽,

기학이라는 체계로 구상을 해놓은 것이다. 우리 인간의 살아있는 세계의 법칙을 세운 것이다.   사회 법칙도 통치자가 사회를 다스릴 때 이 사회는 내 꺼니, 내 마음대로 한다는 식의 것이라면 웃기는 이야기다. 이 사회의 통민운화도 천지운화 의 법칙과 잘 적응해서 과학적으로 다스려야 한다. 과학적인 마인드(Mind)를 가진 자만을 사회의 통치자와 지배자로 써야 한다. 최한기는 “기학지사(氣學之士)가 아니면 政治를 할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최한기는 <기학>을 쓴 다음 <인정:人政>이라는 책을 썼다. <기학>을 저술한 지 3년 후 사회 정치 철학의 대작인 <인정>을 저술했다. 미국대통령 링컨이 말한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에 버금가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사람을 다스릴 때: ①측인(測人): 사람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②교인(敎人): 사람을 가르칠 줄 알아야 한다.

 

③선인(選人): 사람을 가려 뽑을 줄 알아야 한다

.

④용인(用人): 사람을 제대로 쓸 줄 알아야 한다. 위의 네 가지에 대해서 글을 쓴 것이 <인정>이다.


최한기는 19세기 중엽에 선글라스(茶色鏡)를 써보았다. 以茶色鏡籠眼(이다색경롱안), 所見無非茶色(소견무비다색), 以藍色鏡照眼(이람색경조안), 所見無非籃色(소견무비람색), 祛此鏡(거차경), 則卽氣鏡也(칙즉기경야): 다색의 안경을 끼면, 다색밖에 안 보이고, 남색의 안경을 끼고 보면, 남색 밖에 안 보인다. 이 안경을 벗으면 우리는 기경(氣鏡: 氣라고 하는 안경)을 통해서 세상을 본다.


使人而順氣之事(사인이순기지사), 則人易從(즉인이종), 使之以逆氣之事(사지이역기지사), 則人不肯從(즉인불긍종), 敎人以順氣之事(교인이순기지사), 則言易入(즉언이입), 敎之以違氣之事(교지이위기지사), 人不聽信(인불청신):

 

기(氣)에 順하는 일로 사람을 부리면 사람이 쉽게 따른다.

그러나 기(氣)에 거슬리는 일로 사람을 부리면 사람이 따르지를 않는다. 氣에 順하는 일로 사람을 가르치면, 말을 쉽게 듣지만, 氣에 어긋나는 일로사람을 가르치면, 듣지도 믿지도 않는다.

  
최한기의 氣學은 宇宙的 構想일 뿐만 아니라 아주 科學的이고 치밀한 生覺 이어서 우리 民族의 未來
를 염려하고, 우리나라는 앞으로 科學的인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그는 또 宗敎的 狂信으로 썩어가는 나라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최한기의 思想을 대표하는 氣學에서 감동을 받은 것은, 과거 정다산(丁茶山) 선생보다 위대한 학자
라는 점이다. 정다산만 해도 글을 쓴다는 것은 중국의 고전을 놓고 주석을 달면서, 그 주석에다가 自己의 意見을 펼치는 것이었다. 反面에 최한기 선생은 정다산 선생보다 더 많은 도서를 소장하고 있었지만 어느 책에도 주석을 달지 않고 완전히 자기 생각을 스스로 적어나갔던 것이다.

 

 

나, 도올도 1982년도 이 땅에 와서 글을 썼다가 辱을 먹었다. 硏究하고 論文은 쓰지 않고 ‘이야기’를 쓰느냐고. “여자란 무엇인가”라는 주제 로 논문을 썼다. 학문이 아니라고 난리가 났다. 사실, 그 책은 쉬운 책이 아니었다. 어떤 사람은 최한기를 정다산에 비교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하지만, 혜강은 완전히 글 쓰는 방법과 패러다임이 달랐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자기 글쓰기를 시도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지난 시간에, 전두환 시대 때 우리나라 헌법은 “大韓民國은 獨宰共和國이.”라고 써야 한다고 했다. 그때 그것이 맞는 헌법이다. 그렇게 했더라 면 모든 사람이 그 헌법을 고쳐야겠다고 투쟁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학문에 있어서 아무리 좋은 외국 논문도 베껴서 아무리 많이 써보아도 아무 소용이 없다. 틀려도 좋고 엉성해도 좋으니까 오늘 이 時間의 우리 現實을 學門的 言語로 적어내야 한다.

 

내가 최한기로부터 勇氣를 얻은 것은 “아! 내가 맞았다.”는 것이다. 내가 80년대 귀국해서 썼던 책의 이름은 <여자란 무엇인가?>이었다. 감히그때 <여자란 무엇인가> 하는 제목의 글을 쓸 사람이 없었다. 내가 그런 글을 썼더니 난리가 난 것이다. <여자가 무엇인가>라는 책은 쉬운 책 이 아니다. 굉장히 어려운 책이다. 내 식으로 글쓰기를 해야 한다.

최한기가 최초로 자기 식으로 글쓰기를 한 사람이다.

 

지난 주, 중앙대학 대강당에서 전인권씨 하고 ‘Rock Concert’를 가졌다. 학생들이 매우 좋아했다. 전인권의 행진곡에 감동을 받았다. 나는 그 때 그 노래에 대해서 몰랐다. 1985년 암울한 시기에 위대한 노래를 언더그라운드(Under Ground:지하)가수들이 부르고 있었다는 것에 대해서 정말로 감동했다. 락(Rock‘n’ Roll)이라는 것은 청춘의 항거요, 저항이었다. 마음대로 내키는 대로 고함지르며 노래했다. 나는 그때 이런 말을 했다. “전인권씨가 락음악을 하듯 나도 죽을 때까지 학문을 하겠다.”


최한기는 그의 氣學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和物我(화물아), 通天人(통천인), 合內外(합내외), 一精粗(일정조); 事物과 내가 調和되고, 하늘과 사람이 소통되고, 안과 바깥이 합쳐지고, 정교한 세계와 거친 세계가 하나가 되는 것이 내 氣學이다.

  
혜강 55세 때, 지금의 한국은행 본점 자리에 있었던 그의 저택의 기화당에서 저술한 <기학>의 마지
막 부분에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必以定根 基之義(필이정근기지의), 讀氣學(독기학), 至於立標準(지어립표준), 而后驗氣學(이후험기학): 그 어떤 本質的인 根本을 세워야 한다는 精神을 반드시 가지고서 내 책, <기학>을 읽어다오! 그리고서 이 책에서 삶의 標準을 세우게 되거든, 거기에서 그치지 말고, 반드시 <기학>에서 말한 것을 징험하라.당시의 사회는 무질서하고, 혼탁했으며 탐관오리가 들끓고, 도처에 민란이 일어나고 있었다. 한마디로 根本이 서있지 아니한 사회였다. 科學的 마인드는 하나도 없는 썩어가는 王政時代였다. 그가 마지막에 한 말이 험기학(驗氣學)이다. 氣學은 空想이 아니고 科學이므로 여러분의 삶에서 證明해내라.

 

 50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民主主義와 資本主義를 배워서 企業들이 이렇게 活躍하기까지놀라운 속도로 진보를 이룩했다. 이것은 프랑스혁명의 덕분이 아니라, 19세기 중엽부터 東學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19세기 중엽에, 최한기 같은   思想家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人類 全切의 思想家들을 통 털어도 최한기 만큼 科學的인 마인드를 포괄적으로 가진 사람은 없다.

 

 

이제는 이런 분들이 밑거름이 되어 오늘 이후의 자랑서린 우리들의 모습이 있게 된다는 것을 생각하고 우리가 더 분발하고, 비과학적인 생각을 버리고, 그야말로 기학적인 삶의 자세를 취해서Rock'n'roll처럼 행진, 행진 또 행진하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