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애써 잡으려고 하는가? ㅡ 신심명 12 |
글쓴이 김기태 |
며칠 전 밤 11시 늦은 시간에 심야자습을 마치고 나오는 딸아이를 태우러 갔을 때의 일입니다. 올해 고등학교 1학년인 딸아이는 아침 7시40분이면 벌써 학교에 도착해서 밤 11시까지 심야자습을 하고 나오는데, 세상의 대부분의 아버지들처럼 저도 늘 그 시간에 딸아이를 태워주고 태워오곤 합니다. 그 날도 여느 때처럼 학교 가까이에 차를 세워두고 교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조금 지친 모습으로 학교를 나오는 딸아이를 반갑게 맞이하며, 오늘은 어땠느냐, 힘들진 않았느냐, 저녁은 맛있게 많이 먹었느냐 하고 말을 건네며 차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딸아이는 왠지 모르게 시무룩했고, 아빠가 묻는 말에 대답도 잘 하지 않았으며, 차에 타서는 아빠를 외면하는 듯한 표정으로 말없이 그저 어두운 차창 밖을 내다볼 뿐이었습니다.
교문 앞에서 딸아이를 만나 차에 올라 시동을 걸기까지 고작 2~3분밖에 되지 않은 짧은 순간이었지만, 저는 어느새 그런 딸아이의 모습에 ‘거부당한 아이’의 마음이 되어 경직되고 긴장하며 가볍게 숨마저 막혀오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곤 곧 안절부절못하며, 무거운 표정으로 차창 밖을 내다보고 있는 딸아이에게 감히 말을 붙이는 것조차 겁이 나서 벌벌 떨 만큼 마음이 한 순간 얼어붙어 버리는 것도 보았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네 명의 부인에게서 태어난 열두 명의 자식 중 막내였습니다. 아버지는 늘 셋째 어머니 집에서 사셨기에 넷째인 저희 집에는 아주 가끔씩만 오셨고, 그런 환경 속에서 저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부재(不在)와 함께 그저 무섭고 두렵고 어색한 아버지만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그것이 제 영혼에는 커다란 상처와 결핍으로 남아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한 ‘내면 아이’로 자리 잡게 되었고, 그로 인해 오랫동안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 삶을 방황하게 되었으며, 또한 바로 그 때문에 존재의 완전한 해방과 참된 영혼의 자유도 얻게 되었지만, 그 ‘아이’는 50년이 흐른 지금도 가끔씩 거부에 대한 두려움, 비난에 대한 두려움, 야단에 대한 두려움, 내침에 대한 두려움으로 저를 사로잡으며 거침없이 제 안을 흘러 다니곤 합니다. 그랬기에, 딸아이의 그 시무룩한 표정과 눈빛 하나에도 저는 대번에 ‘거부당한 아이’의 마음이 되어 경직되고 긴장하며 어쩔 줄을 몰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제가 참 좋습니다. 예전 같으면 딸아이의 눈빛 하나에도 무너지며 한 순간 마음의 평화를 잃어버리는 저를 초라하다, 못났다, 보잘것없다, 수치스럽다, 번뇌다, 중생이다 하고 판단하고 분별하며 괴로워했을 터이지만, 지금은 그것 또한 나요 내 안에서 올라오는 모든 것이 나 아님이 없음을 알기에, 그저 그 瞬間을 있는 그대로 經驗할 뿐입니다. 또한 바로 그러하기에, 제 안에서 커다란 慈悲心과 사랑과 智慧와 부동(不動)의 마음을 經驗할 때에도 그것이 ‘나’라는 生覺도, ‘내가 했다’는 마음도 없이 그 瞬間을 또한 다만 있는 그대로 經驗할 뿐입니다. 金剛經에서 應無所住而生其心(응무소주이생기심, 마땅히 머무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이라고 말하고 있듯이, 하늘에 온갖 구름들이 이런 저런 모양으로 일었다가 사라지지만 하늘은 조금도 거기에 물들지 않듯이, 제 마음의 하늘에도 온갖 感情, 느낌, 生覺 마음 意識의 구름들이 일어났다가 사라지지만 다만 그러할 뿐 그 어느 것에도 물들지 않는 平和와 自由가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그렇게 시무룩하고 말이 없던 딸아이가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힘들었던 하루를 주섬주섬 얘기하기 시작하는데, 하루 종일 언짢은 일들만 계속 일어나서 얼마나 짜증이 났는지 모른답니다. 아침부터 알람 소리를 듣지 못해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머리도 못 감고 밥도 못 먹고 허겁지겁 집을 나선 것에서부터, 2교시가 체육시간이고 또 마침 자습이어서 책상에 엎드려 잠을 좀 자려고 나름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시간표가 바뀌어 국어 선생님이 들어오신 것하며, 점심시간에도 길게 늘어선 줄의 제법 앞자리에 서있었는데도 갑자기 수능시험이 얼마 남지 않은 고3들을 위해 차례를 양보하라는 학생부장 선생님의 말씀에 한참을 기다려서 맛없는 점심을 먹었던 일, 그리고 저녁엔 또 친구들과 무슨 일 때문에 다투기까지 해 몹시도 기분이 나빴는데, 그러고서도 심야자습까지 할 수밖에 없었던 그날 하루의 일과는 그야말로 엉망이었답니다. 그러니 시무룩할 수밖에 없었고, 아빠의 이런저런 말에 대답할 기분이 아니었던 건 당연한 일이지요. 저는 그렇게 무거운 침묵을 깨고 자신의 힘들었던 마음을 얘기해준 딸아이가 너무 고마워 약간의 방정마저 떨면서, 늦은 시간이었지만 아직 문이 열려 있는 카페에 들어가 딸아이가 좋아하는 초코라떼랑 커피 한 잔을 테이크아웃해서, 제법 기분이 좋아진 딸아이와 함께 즐겁게 마시며 얘기하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44. 一切二邊 良由斟酌 일체이변 양유짐작 모든 두 가지 경계는 오직 헤아려 보기 때문에 생긴다.
딸아이의 눈빛 하나에도 경직되고 긴장하며 어쩔 줄을 몰라 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입니까? 초라한 것입니까? 잘못된 것입니까? 더 많은 것으로 채워야 하는, 결핍되고 부족한 것입니까? 번뇌에 사로잡힌 보잘것없는 중생의 모습입니까? 아뇨, 그냥 ‘그것’일 뿐입니다. 또 커다란 자비심과 사랑과 지혜와 부동(不動)의 마음은 좋은 것입니까? 본받을 만한 것입니까? 추구해야 하는 무엇입니까? 완전한 것입니까? 깨달은 부처의 마음입니까? 아뇨, 그것 또한 그냥 ‘그것’일 뿐입니다. 헤아리고 분별하면 좋다-나쁘다, 크다-작다, 됐다-안 됐다, 부족하다-완전하다, 번뇌-보리, 중생-부처가 생기지만, 다만 그 한 마음만 내려놓으면 모든 것은 다만 있는 그대로일 뿐 아무것도 아닙니다. 45. 夢幻虛華 何勞把捉 몽환허화 하로파착 꿈같고 환상 같고 헛꽃 같은데, 어찌 애써 잡으려고 하는가? 金剛經 제32분에 보면 다음과 같은 게송(偈頌)이 나옵니다.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 일체 모든 것은 꿈같고 환상 같고 물거품 같으며 그림자 같고 이슬 같고 또한 번갯불 같으니, 마땅히 이렇게 보아야 한다.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감정, 느낌, 생각들은 마치 꿈같고 환상 같고 물거품 같으며 그림자 같고 이슬 같고 또한 번갯불 같아서, 그때 그때의 우주법계의 인연에 따라서 잠시 생겼다가 사라질 뿐인, 實體가 없는 공한 것입니다. 그러니 그냥 그 瞬間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며 다만 經驗할 뿐이면 제 스스로 왔다가 제 스스로 갑니다. 마치 하늘의 구름이 제 스스로 일었다가 제 스스로 사라지듯이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따로 해야 할 일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지요. 다만 每 瞬間 있는 그대로 存在하면 됩니다. 그래서 아플 땐 아프고 힘들 땐 힘들며 슬플 땐 슬프고 우울할 땐 우울하고 불안할 땐 불안하며 초라할 땐 초라하고 약할 땐 다만 약할 뿐이면 그것이 바로 완전한 깨달음이요 영원한 자유입니다. 중생의 마음 그대로가 부처의 마음이며, 번뇌 그대로가 보리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일점일획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러니 깨달음이란 얼마나 쉽습니까? 지금 이대로이니까요.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살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감정, 느낌, 생각들의 ‘전체’를 받아들여 다만 每 순間 있는 그대로 존재하기보다는, 어떤 것은 사랑하고 어떤 것은 미워하면서 끊임없이 가리고 擇하는 가운데 自身의 努力과 수고로써 마음의 平和와 自由와 完全을 이루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미워하여 버리려고 애쓰는 그것이 바로 우리가 도달해야 하는 목표인데, 어떻게 우리의 그런 노력과 수고가 우리를 자유와 영원으로 인도해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승찬 스님도 애틋하게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꿈같고 환상 같고 헛꽃 같은데, 어찌 애써 잡으려고 하는가?”라구요. (눈을 세게 비비거나 눈에 가벼운 충격이 주어졌을 때 한 순간 눈앞에서 꽃 모양의 환상이 이러 저리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이 보이는데, 그렇게 헛되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모습을 헛꽃이라고 합니다.)
46. 得失是非 一時放却 득실시비 일시방각 얻고 잃음과 옳고 그름을 일시에 놓아버려라. 얻고 잃음과 옳고 그름 등의 시비분별을 통해서는 결코 영혼의 자유를 얻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깨달음은 그렇게 헤아리고 분별하는 속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매 순간 있는 그대로 존재할 때 그것은 올올이 드러납니다.
47. 眼若不睡 諸夢自除 안약불수 제몽자제 눈이 잠들지 않으면 모든 꿈은 저절로 사라진다. 마음의 이원성(二元性) 안에서 분별하고 판단하는 것, 그것을 ‘잠들어 있다.’ 혹은 ‘꿈꾼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자신 안에서 올라오는 모든 감정, 느낌, 생각들을 부분적으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통째로 받아들여 다만 매 순간 있는 그대로 존재할 수만 있다면 마음의 이원성은 저절로 사라지고 모든 허망한 꿈 또한 남김없이 사라질 것입니다. 그렇듯 지금 이 순간이 바로 영원으로 들어가는 문인 것입니다. 48. 心若不異 萬法一如 심약불이 만법일여 마음이 만약 다르지 않으면 만 가지 법이 한결같다. 물 위에서 일렁이는 물결이 어떤 모양으로 일어나든 다만 물일 뿐이듯이, 내 마음 안에서 어떤 감정, 느낌, 생각의 물결이 일어나든 그 모든 것이 다만 내 마음일 뿐임을 알아, 모양[相]으로써 헤아리고 분별하는 가운데 어떤 것은 택하고 어떤 것은 버리려는 몸짓만 停止할 수 있다면, 우리는 지금 이대로 完全하며 이미 이대로 自由하다는 것을 문득 깨닫게 될 것입니다. 自由는 얻거나 잃거나 하는 所有의 領域이 아니라 다만 每 瞬間 있는 그대로 存在함으로 말미암아 누리게 되는 것임을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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