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신의 눈이 밝지 못하면 스스로 속는다.
절대로 바깥 경계에 속지 말아라.
객관적인 것은 결코 없다.
선은 테두리를 벗어나는 것이다.
따로 무애(無碍)하려 하는 것은 조작이다.
무애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자유자재한 것이 따로 있다면 견성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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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는 대대(待對)되는 것이 없다. 상대가 없다. 진짜로 밝은 것은 밝고 어두운 것이 假幻인 것을 요달하는 것이다. 그래서 도라는 것은 구경에 하나다. 갈 데가 없다. 갈 데가 있으면 않된다. 갈 데가 없게 해야한다. 갈데가 없으니 나로 돌아온다. 그러면 꿈 깬 것과 같다. 꿈을 깨보면 자기밖에 없거든? 꿈 속에서 오만가지 일이 있었던 것 같은 데 꿈을 깨보면 그런 일이 없어. 그래서 우주 전체가, 만법이 모두 꿈이야.
그래서 달마 스님도 '삼계가 공하여 한 물건도 없음을 명백히 알지어다. 료지삼계무물 (了知三界無物)'라고 하렸다. 구경에는 나 하나 뿐이야. 大夢을 깨달았다 大覺 大悟햇다 하는 것은 결국엔 자기로 돌아왔다는 소리야. 나는 본래 내가 가지고 있던 것이니까 만든 것이 아니잖아? 원래 나였는데 뭐 돌아오고 말고가 있겠나? 내가 어리석어 돌아다니다가 그것을 쉴 뿐이지. 바깥으로 눈을 찾아 돌아다니니 찾을리가 있겠어? 자기한테 있는 줄 알고 찾으니까 없잖아? 부처도 그렇다. 진리가 있는 게아니야. 부처의 경지에 도달해야 된다고 가르치는 경우가 있는데 그렇게 가르쳐서는 않돼. 하지만 중생은 어리석어서 그렇게 宗을 세우고 깃발을 세워야 우우하고 거기에 모여들거든? 진짜 자기는 내버려두고, 바깥의 것이 가환인줄 요달해야 깨치는 거야. 달마 스님이 '확연무성(廓然無聲)이라 했거든? 부처님도 없다 그소리야. 그말의 의미를 알아들어야 한다.
다른 법이 있는게 아니다. 그런데 전부 화두가 오매일여가 되어야 한다는 등 경계를 가지고 이야기를 해. 그것이 틀린 말은 아니나 구경은 아니다. 여여부동하는 것도 말(言句)이야. 여여부동하고 말고가 어디있노? 나혼자서 엎어지든 자빠지든 뭐가 달라? 그런데 어떤 것을 여여부동이라 하고 어떤 것을 여여부동한 것이 아니라고 하겠어?
그러니까 부처님은 법을 세우지 않으셨어. '여래가 간다거나 온다거나 서있다거나 앉는다거나 눕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은 내가 설한 뜻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라고 하셨다. 한 모양이니까, 자기 하나 뿐이니까 나고 죽음, 만법이 없어. 본래 법이 없단 말이야. 나와 바깥 경계가 둘이 아니다. 전체가 하나 뿐이다. 그런데 무슨 마음이 안에 있고 바깥에 있겠나? 누구나 자기 마음을 깨치면 성불한다는 견성성불이나, 일체 중생이 부처의 마음을 갖추고 있다는 이야기는 자기가 부처인 줄 모르고 밖으로 구하고 있다는 뜻이야.
경허스님의 오도송에 홀문인어 비무공(忽聞人語無鼻空)하고, 홀연히 사람이 콧구멍 없다는 소리를 듣고,부처가 없다 그소리야. 자기 뿐이다 그소리야. 돈각삼천시아가(頓覺三千是我家)로다. 몰록 삼천대천세계가 자기 집임을 깨달았다. 유월연암산하로(六月燕巖産下路)에 야인무사태평가(野人無事 太平歌)로다. 무슨일이 있어? 성문불(聲聞佛)들이 닦아서 부처의 경지에 간다고 그러는 거야. 시간과 공간, 부처와 중생, 만법과 만물이 전부 나 하나야. 전부 부처란 말이다. 그런데 다른 물건이 뭐가 있어? 있다고 하면 잘못이야. 있다고 해도 이것이고, 없다고 해도 이것이야.
사람들은 고통과 해탈이 따로 있다고 봐. 그것은 중생의 견해, 이승의 견해야. 그래서 공부에 들어가기가 어려워. 중생들은 도를, 견성을, 부처를 손에쥐고 못놓아. 그것을 놔버려야 돼. 부처라는 것은 이름이고 實이 아닌 幻이야. 사람들이 살다보면 바른 경계에 들어가고 어두운 경계에도 들어가거든? 그런데 二乘은 항상 밝은 경계만 집착한단 말이야. 공부를 잘못하면 안돼. 그래서 내가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 하는 거야. 그렇지 못하면 수행은 공은 열심히 들어가는데 잘못 들어간단 말이야.
어떤사람이 선사에게 물었어. "병이 없는 사람이 잇습니까?" 그러니까 선사가 "있다" 그러는거야. "그러면 어떤 사람이 병없는 사람입니까?" 그러니까 선사가 "아야! 아야!" 그랬다고 그래. 우리 중생은 고요한 것, 앉아있는 것이 도인 줄 알고 거기에 집착을 해. 아니면 신통묘용을 도인인줄 알아. 그게 다 밖으로 헤매는 거야. 그래서 '심외구불(心外求佛)은 시마외도(是魔外道)다. 마음 밖에서 부처를 구하는 것은 마구니와 외도다 그랬어. 대도라고 하는 것은 자기 일이야. 다른 사람 일이 아니야. 자기가 깨닫는 거야. 내가 꿈을 깰 때 일체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지, 성불하고 중생을 제도하는 것은 꿈 속에 일이야.
'13. 3/17 원명님이 올린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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