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야정진법문 ③
죽어도 내가 죽고 살아도 내가 사는 걸 알아야 됩니다 별 도리가 없습니다 이거 딱 알아버리면은 내라 하는 내는 빛깔도 소리도 냄새도 없는 이 자리라 말이여. 이 자리 알면 여러분 見性하지 않았습니까? 그러하니 이번 설법에는 이 문제를 가지고서 주로 하겠습니다. 여러분 見性해도 좋고 안 해도 좋습니다. 하기 싫으면 하지 마세요. 사실 귀찮을지도 모르죠. 그건 알아서 하세요. 이번 기회에는 어떻게 하든지 여러분의 멱살을 잡더라도 말이지 견성을 못하면 십 년이라도 이 문 밖에 못 나갑니다. 견성하고 나가도록 이렇게 할 용의가 있습니다. 왜 그러느냐. 전부 科學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눈에 性稟 없다는 거 이거 과학적 아니에요? 귀에 性稟 없다는 거, 智慧 없다는 거 과학적 아니에요? 그러하기 때문에 콩팥을 갖다가 이리 저리 옮기고 눈알 같은 것도 빼서 다른 사람 주대요. 만약 그것이 自體의 智慧가 있어 보소. 그 놈의 눈깔이 다른 사람의 얼굴에 가서 그대로 있겠는가. 난리 날 겁니다. 아무리 어머니 자식 사이라 할지라도 그 콩팥이 自體의 智慧가 있다면 난리 납니다. 나는 내 主人 찾아간다 이래 하고 난리 날 겁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뭣을 알라 합니까? 차라리 삼승도리를 믿는 것이 낫죠. 그러니까 이 빛깔도 소리도 냄새도 없는 이 자리가 바로 부첩(佛/마음)니다. 다른 거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이 자리를 떠나서 여러분들이 부처를 구한다면은 사도 중의 사돕니다. 부처도 이 자립니다. 보살도 이 자립니다. 그러하니 제가 말이 좀 지나쳤습니다만 앞으로 내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이 자리를 分明히 해서, 여러분들이 몰라도 좋습니다. 안 믿어도 좋습니다. 그러나 틀리지는 않거든요. 틀리지는 않는다는 이 생각을 가지면 됩니다. 그래도 믿어지지 않는데 實感이 안 나는데, 하하하. 여러분들이 실감이 가나 안 가나 좌우간 이런 방향으로 여러분들을 인도할까 싶습니다. 아는 분은 물론 압니다. 그래도 안 되면은 서울에 숯을 한 댓 가마니 준비해서 불 피워야 되겠습니다.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 숯 값이나 조금씩 다 내도록 그리 하도록 합시다. 시간 됐는가? 딱딱딱(죽비 치는 소리). 빛깔도 소리도 냄새도 없는 이 자리가 절을 하네. 백봉 선시집 이걸 가지고 하겠습니다. 왜 그러냐면 여기 여러 가지가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만약 이런 책을 쓰라면 못 쓸 거예요. 책이 한 권 됐는데 여러분 잘 아실 겁니다만 내 소견에 맞는 것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걸 택했습니다. 책이니 뭣이니 그만 두고 부처님도 그만 두고 나도 그만 두고 팔만장경이니 뭣이니 전부 그만 두고 우리 한 번 生覺해 봅시다. 도대체 人間이란 뭣고, 이거 한 번 生覺을 해볼 필요가 있지 않습니까? 人間이란 건 뭣인고 할 것 같으면, 벌써 이건 내 일이거든요. 좌우간 여러분들 죽어도 내가 죽고 살아도 내가 사는 것 알아야 됩니다. 별 도리가 없습니다. 자식이 수천만 명 있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부처님이 수만 명 있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부처님 왜 없어요? 내가 있고 니가 있는데 부처님이 없을 수가 있나요? 그런데 부처님을 아는 道理가 있어요. 이 道理를 지나지 안 하면 절대 부처님 못 만납니다. 이 道理를 지나면 그대로 부처님 만날라면 마음대로 만나는 겁니다. 그러면 무슨 道理고? 내 부처를 찾을 줄 알아야 남의 부처를 찾습니다. 내 부처를 알아. 알면 남의 부처를 알아. 관세음보살도 알게 되고 문수보살도 알게 되고 석가모니불도 알게 되고 다 알아. 연등불도 알게 되고 아미타불도 만나게 되고. 바로 내 부처를 딱 발견하면 바로 그 자리에서 알게 되는 겁니다. 아는 건 누가 아느냐. 내가 아는 거예요. 부처님이 아는 것이 아니에요. 참말로 얘기가 이렇게 나올 것 같으면 문제가 다릅니다. 문제가 영 달라집니다. 아까 죽어도 내가 죽고 살아도 내가 산다 이런 말 했는데 이거 어찌 거짓말인가요? 이것이 남의 일인가요? 죽는 것, 남의 일인가요? 나는 것, 남의 일인가요? 또 우리가 부처님을 안다, 부처님을 존경한다 말이죠. 내가 존경하지 남이 존경하나요? 부처님을 믿지 않는다 말이지. 내가 믿지 않는 거지 남이 믿지 않는가요? 결국은 내가 주장이라. 그러하기 때문에 내 조계사에서도 한 말이, ..불교니 이런 말이 있는데 全部 利他的으로 쏠려버려. 부처님 있습니다. 없는 것이 아니에요. 왜 부처님이 없어요? 내가 있는데 부처님이 없을 수가 있나요? 그런데 내 부처를 내가 찾아. 내 부처를 내가 찾아서 아는 동시에 남의 부처도 안다는 거, 이거 잊어버리지 마세요. 이거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여러분들이 이번에 와서 내 부처를 찾아야 비로소 남의 부처도 알게 된다. 이 말 한마디가 가장 重要한 겁니다. 내 부처 모르고는 남의 부처 말하지 못합니다. 사실은 우리가 불보살의 도가니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 부처를 찾지 못하기 때문에 불보살이 있어도 몰라. 우선 내 부처를 찾지 못하면 나를 몰라. 어쨌든지 나를 모른대야 말 다 한 거 아니라요? 부처님을 알든 모르든 그건 별 문제로 하고 내 자신을 모른대야 그 이상 뭐라고 말할 거여? 그러나 요새는 아는 道理가 있어. 以前에는 참 연구 많이 해서 그야말로 覺性을 해야 地球 둥근 줄을 알게 되고 이것이 헛거란 걸 알았어. 그런데 요새는 아는 분들이 많습니다. 난 뭣이다, 이걸 알아야 남의 부처도 알게 되는데 그러면 우리가 알기 쉽게 말하자 할 것 같으면 내 부처를 안 찾을래야 안 찾을 도리가 없어요. 그런데 찾긴 찾아. 찾긴 찾는데 여러분들이 부처인 줄 모를 따름이에요. 이거 도대체 무슨 말인고? 아까 말하기를 내가 이런 말 안 했습니까? 눈이 보는 것 아니다. 눈이 보는 거 아니여. 눈에 비치긴 비쳐. 거울 역할을 해요. 그러나 거울에는 내 얼굴이 비치지만 거울 자체는 날 모르거든. 자체 지혜가 없기 때문에. 그런데 아는 놈이 있어. 이렇게 생각한다 할 것 같으면 참말로 문제 아닌데 자꾸 딴 데 찾아다닌다 말이지. 무슨 소리를 들어. 들었어. 그렇지만 귀 자체가 듣는 건 아니거든. 귀 자체에 지혜가 없기 때문에. 누가 날 건드려. 건드는 줄 알아. 허나 이 살덩어리는 모르요. 지혜가 없거든. 왜 내가 이런 말 하느냐 할 것 같으면 요새 의술이 굉장히 발달이 돼 있어요. 의사들에게 물으면 당장 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