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보고 듣고 맛보는 이놈은 뭣꼬”

장백산-1 2014. 11. 3. 12:55

 

 

 

연재백봉 김기추 거사의 미발표 법문
“보고 듣고 맛보는 이놈은 뭣꼬”철야정진법문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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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1.20  18: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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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고 듣고 맛본다’하나

몸뚱이에는 自體智慧가 없어

빛깔·소리·냄새 없는 자리가

마음· 性稟이며 絶對性 智慧

 

 

요새는 눈이 보는 거 아니라는 걸 압니다. 아마 이 방 중에도 한 여남은 명 있을 거여. 아는 사람. 한 이십 명 있을 겁니다. 눈이 보는 것 아니다. 그러나 눈을 빌어서 보긴 봐. 보지 않는 것은 아니라. 그러나 눈에는 自體智가 없습니다. 自體智. 自體의 智慧가 없어요. 거울 역할은 합니다. 이거 여러분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이전엔 見性도 이만 저만한 견성 안 하고는

이거 몰랐습니다. 그러나 요새는 여러분 알거든요. 눈에 자체 지혜가 없어. 눈도 이거 하나 적혈구 백혈구 그거로서 자꾸 變하는 거예요. 變하면서 거울 역할만 해 주는 거예요.

귀에 자체 지혜가 없습니다. 그러나 들어. 혓바닥, 자체 지혜가 없습니다. 자체 지혜가 없지만은 맛을 봐. 야, 이거 이상타. 맛보는 건 뭣꼬? 요새는 압니다. 그렇다면은 자체 지혜가 없는 눈, 보는 것. 자체 지혜가 없는 귀, 듣는 것. 자체 지혜가 없는 맛보는 거, 다른 것 다 그렇습니다. 대체 이 놈이 뭣이냐 말이여. 있긴 있거든. 있긴 있어.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보지 않나? 내가 본다 내가 맛본다 이러지만 그 내라는 놈은 아무 것도 모르고 하는 말이여. 뭣을 내라 하느냐 말이여.

 

그러나 요새는 이걸 압니다. 아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걸 알면 方便이 달라져야 됩니다. 이 세 가지만 말했지만 이 세 가지 요소를 아는 사람의 方便 이 세 가지의 요소를 모르는 사람의 方便, 같아야 되겠습니까?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하니 만약 이 세 가지의 요소, 참말로 견성을 완전히 했다면 환히 아는 겁니다. 아, 그렇구나. 이때까지 내가 속았구나. 아,

눈이라는 건 자체 지혜가 없구나. 말 맞거든. 의사한테 가서 물어보세요. 아, 귀도 이거 자체 지혜가 없구나. 의사가 환히 압니다. 뭐뭐 하더라도 사람의 몸뚱이에 대해서 환히 아는 것은 의삽니다. 혓바닥에 자체 지혜가 없다.

그러면 맛보고 보고 듣는 이 놈은 뭣꼬. 의심이 날 수밖에는. 그거 빛깔도 소리도 냄새도 없는 자리거든. 그 빛깔도 소리도 냄새도 없는 이 자리, 이걸 마음이라고도 하고 性稟이라도 하고 절대성 자리라고도 하고 별별 말로 말해봅니다만 이걸 곧이 안 들어. 빛깔도 소리도 냄새도 없는 자리다 이러면 대개 중생들이 섭섭한 모양이라. 뭣이 있어야 된다 이렇게 생각하는 모양이여. 그러나 빛깔도 소리도 냄새도 없는 이 자리라 하면 신(信)이 안 가. 그러하기 때문에 이걸 어렵다는 겁니다. 이 몸뚱이는 時時로 變하는 것. 여러분 지금 내가 이 자리에 앉아서 이 말 할 때, 시작할 때와 지금과, 지금도 자꾸 變하고 있습니다.이 變하는 걸 걷어잡고 이걸 내다 이렇게만 하고 있으니 그 빛깔도 소리도 냄새도 없는 자리, 그거 어떻게 될 겁니까?

그러하니 오늘 이 자리에서 어떻든지 여러분에게 내가 아는 정도 전부 말했어요. 여러분이 믿고 안 믿는 건 문제 밖입니다. 눈에 자체성이 있다 이래도 좋습니다. 귀에 자체성이 있다 이래도 좋습니다. 혓바닥에 자체지가 있다 이래도 좋습니다. 나는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몸뚱어리 全切로 봐서 自體 智慧가 없습니다. 有情物이라고 하긴 하는데 그건 좋아요. 그렇게 밖에 말할 도리가 없거든요. 다만 이걸 보고 좋다 나쁘다 分別하는 거 그거는 딴 자립니다. 빛깔도 소리도 냄새도 없는 그 자립니다. 자, 이걸 이렇게 분명하게 말을 하는데 믿지를 않습니다. 믿지 않으면 어떻게 합니까? 아까 이 선생 말과 마찬가지로 대승으로 가든 소승으로 가든, 지가 가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나중에는 어떻게 되느냐. 이거 다 알아. 알면은 또 딴짓 하고 돌아다니네. 어떻게 하면 되겠어요?

 

그러하니 이전 어른들이 공부할 때와 우리가 공부할 때는 다르다 이겁니다. 다르기 때문에 手段과 方便을 달리 해서 우리도 공부하자 이겁니다. 아, 그렇구나. 눈이라는 건 자체 지혜가 없구나. 이거 빤한 거 아니에요? 석가세존이 오시더라 해도 이 이상 더 설법 안 됩니다. 빤한 것이거든. 귀라는 건 자체의 지혜가 없구나 이거 빤히 아는 것 아니에요? 혓바닥이라는 건 자체의 지혜가 없구나. 그러니까 몸뚱이 자체가 지혜가 없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거는 變하는 거라. 法에 따라서 因緣에 따라서 變하는 거라. 그럼 이거 내 것 아니거든. 이걸 내 것 아니라고 이렇게 말하는 자리가 어떤 자리냐 말이여. 빛깔도 소리도 냄새도 없는 이 자리지. 이걸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어. 여러분들이 내 것이 아닌 이 몸뚱이를 끌고 여기까지 왔다 말이지. 끌고 여기까지 오신 것은 絶對性자리, 그 자리거든요. 智慧 자리에요. 이것만 여러분들이 알아버리면 여기에 대해서 이 이상 더 설명이 필요 없어. 이거 알아버리면, 앞으로 내가 얘기할 것이 좀 있는데 얘기하기 전에 여러분 벌써 見性했어요.

見性, 뭣이 見性입니까? 性稟을 본다 이거 아니에요? 아, 그렇구나 내가 이 오뉴월에 이 몸뚱이를, 이 無情物을, 다시 말하자면 무정물이라 합시다. 무정물을 끌고 여기 왔다 말이여. 철야정진 하러 왔다 말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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