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虛空과 佛性은 하나다

장백산-1 2014. 11. 3. 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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虛空과 佛性은 하나다
2014년 01월 06일 (월) 15:42:16백봉김기추거사기념사업회 bwjhs@hyunbul.com

이건 내 몸이다 해 주저앉는다면

전부 남의 것이 된다

국집을 하지 않으면 턱 하니

태평양 바다가 전부 내 거라

허공이 전부 내거다

  

 

虛空法門

 어찌 來日 虛空 봤다 하느냐,

本心, 本來의 마음. 妄靈된 마음이 아니고, 좋다 나쁘다 이 마음이 아니고, 境界에 휘둘리는

마음이 아니고. 빛깔도 소리도 냄새도 없으니 어떻게 되죠? 虛空하고 이거하고 둘이요 하나요? 여러분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대각화 보살, 둘이요? 둘이죠? 虛空 말 다르고, 마음 말 다르니 둘이죠? 虛空이란 말이 있고 마음이란 말이 있고. 둘 아니요, 둘이요?

“하납니다.”

맞소. 하납니다. 우리가 둘로 생각을 해 봅시다. 그러면 어떻게 가르죠? 모습이 있어야 이건 이렇다 이건 이렇다 할 건데 아무것도 없어. 公然히 말만 虛空이다 마음이다 할 뿐이에요. 그렇지요? 그런데 이걸 우리가 이걸 갈라놓으려 하면은 어떻게 가르죠?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그러니까 하나 아니에요?

 

보살님 아시겠죠? 하나죠? 둘로 가를 수가 없죠? 백주(괜히) 말마디. 虛空이 어디 있어요?

虛空 없습니다. 우리가 빌려 온 말이에요. 佛性, 우리의 佛性 찾아내지 못해요. 없어요. 이것도 빌려 온 말이에요. 그런데 이놈 生覺하는 놈 있거든. 佛性이니 虛空이니 말하는 놈 있거든.

그러니 불성 무시 못하겠단 말이에요.

만약 우리가 보고 듣고 생각하는 놈 없으면 내 이것 무시하겠어요. 여러분도 무시할 겁니다. 그런데 찾지 못해. 虛空하고 이놈하고 꼭 하나라. 公然히 虛空이란 말도 쓸데없고 마음이란 말도 쓸데없는 말이라. 그런데 이것 다 거부하고 싶어. 虛空도 거부해 버리겠어. 佛性이란 말도 거부해 버리겠어. 거부하다 보니 거부한다는 이 마음씨는 우리가 가지고 있네. 그러니 우리가

마음 거부하겠나요? 거부 못할 거는 사실 아니라요?

그러니 결국 虛空하고 우리의 佛性하고 마음하고 結局 하나다 이런 결론이 나는 거예요. 이걸 둘로 쪼갤라 해도 쪼개질 못해. 쪼개질 못해. 그리고 이걸 또 거부를 못해. 왜 거부를 못하느냐. 현재 여러분의 얼굴 내가 보고 있잖아요. 이건 뭣이냐 말이여. 또 여러분의 말소리 내가 듣지 않아요? 이건 뭣이냐 말이여. 이걸 어떻게 우리가 거부를 하겠냐 말이에요. 그래서 이건 하난데 絶對性 자리라 이래 하는 거예요. 다른 거 아니에요.

백련화 보살, 알겠죠? 來日 虛空 봤죠?

“예.”

 

하하하. 인제 아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혹 모르시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있거든 疑心을 하세요. 來日 虛空은 아직 오질 않았는데 어째 來日 虛空 봤다 하느냐. 이렇게 의심을 가져가는 것이 공부입니다. 왜 그러느냐. 이 불교라 하는 것이 여러분들 다 아시겠지만 말이죠 새로운 분들 위해서 이 말씀 드립니다. 다른 분들 알겠지만은 누리의 眞理, 누리의 本體. 이 宇宙. 우주라면

이 우주 속에 저 북두칠성도 있고 숱한 별도 있고 태양도 있고 달도 있고 우리가 걸어다니는

땅덩어리도 있거든요. 하니까 宇宙의 本體를 알아야 되요.

그러면 이 땅덩어리가 어디서 왔느냐. 이걸 알아야 됩니다. 극히 쉬운 겁니다. 땅덩어리가 어디서 왔다든지 태양이 어디서 왔다든지 별이 어디서 왔다든지 이거 그리 어려운 거 아닙니다. 극히 쉬운 겁니다. 불교 이치를 조금 알아. 알면은 이걸 알게 됩니다. 이걸 알게 되면은 내가 어디서 왔는지 알게 됩니다. 내가 어머니 뱃속에서 나오기 전에, 이 세상에 떨어지기 전에 나는 무엇이더라 하는 이걸 훤히 알아버립니다. 이걸 알아야 우리가 죽고 사는 문제가 해결이 되는 거라요.

 

불교는 무엇이냐. 우리가 福만을 구한다는 것이 아니라, 복은 솔직한 말로 우리가 딱 깨놓고 공부하는 자리니까 말합니다. 우리가 복을 구할 것 같으면 절에 안 가도 예배당에 안 가도 복 됩니다. 왜 그러냐. 사람으로서 남자는 남자의 구실을 다 해. 여자는 여자의 구실을 다 해. 어머니는 어머니의 구실을 다 해. 자식은 자식의 구실을 다 해. 친구는 친구의 구실을 다 해. 이래버리면 복 받습니다.

왜 복을 받게 되느냐. 이것도 科學的으로 딱 증명이 되어 있어요. 이건 차차차차 얘기하기로 하고. 왜 복을 받게 되느냐 할 것 같으면 우리는 복덩어리 속에 지금 앉아 있어요. 복덩어리 속에. 그런데 우리가 복덩어리 속에 앉아 있는데, 앉아 있을 뿐 아니라 복덩어리 속에서 걸어다니고 누워 잠을 자고 앉기도 하고 돌아다니기도 하고 이래 하고 있어요. 복덩어리 속에 우리가 있는데, 공연히 내 마음가짐새를 잘못 가져서 눈앞에 딱 닥친 복을 우리는 거부하고 있습니다.

이건 차차 알게 됩니다.

 

그러니까 그리 해도 복덩어리 속에 있어. 太陽의 光線을 우리는 돈 한 푼 안 주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또 이 空氣, 돈 한 푼 안 주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모든 게 다 그렇습니다. 돈 한 푼 안 주고 높은 山을 구경해. 넓은 바다를 구경해. 흐르는 물을 구경해.

돈 한 푼 안 주고 꽃을 보고 흐르는 구름을 봐. 또 선들선들한 바람을 맞이하고 있어요.

또 돈 한 푼 안 주면서 낮에는 태양을 받아들이고 밤에는 검은 걸 받아들여. 태양을 받아들여도 검은 걸 받아들여도 돈 한 푼 안 줘. 솔직한 말로 버스를 탄다든지... 돈 한 푼 안 주고. 어떤

사람들은 이런 꼭두각시 만들어서 들여다보고 있지만 말이죠. 여러분 용두산에 가 보세요.

돈 한 푼 안 주고 부산 시내가 눈앞에 훤히 보여.

 

그러니 여러분들이 이건 내 몸이다 해서 주저앉는다든지 이건 내 집이다 해서 내 집에만 딱 주저앉으면 전부 남의 거라. 허나 여기 주저앉지 말고 가죽주머니 여기에만 주저앉지 말고 또 내 집에만 국집을 하지 말아요. 그렇다고 버리라는 거 아니에요. 局執을 하지 않으면 턱 하니 太平洋 바다가 전부 내 거라. 거기 배가 갔다 왔다 해. 참 재미가 있어. 虛空이 전부 내 거라. 구름이 갔다 왔다 해. 밤이 되면 달이 환하게 떠. 그거 돈 주고 달구경 하겠어요? 그거 전부 내 거라.

그런데 만약 우리 몸에 딱 들어앉으면 다 남의 것이거든요. 그래서 여기 들어앉아서 고민을

한다든지 어떤 슬픈 생각을 한다든지 이래 하면 달이 그렇게 좋아도 달 보고 눈물이 나 버려.

저놈의 달이 왜 떴는가 이래 싶어. 사람 속상한지 모르고. 달이 환해. 또 어떤 사람은 달이

리 좋아. 달을 보고 시를 읊어. 이와 마찬가지로 이런 걸 全部 놓는 方向으로 이래 턱 나가면

虛空이 내 거란 걸 알게 됩니다.

 

 

백봉 김기추(白峰 金基秋) 거사

(1908~ 1985)는

1963년 56세 여름에 인천 거사림(居士林)과 같이 충북 청주의 심우사를 찾아가 하계수련대회에 참가 그해 가을부터 무자화두(無字話頭)로 간화선(看話禪)수행을 시작 1964년 1월 같 견성(見性) 오도(悟道)한다. 1964년 3월 <금강반야바라밀경강송> 탈고·인천 거사림에서 <금강경>강의를 시작하고 1965년 3월 <금강반야바라밀경강송>을 발행하고 재가 수행단체인 보림회(寶林會)를 만들어 수행지도를 이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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