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릉록 1. 道는 마음 깨치는 데 있다
◈ 완릉록 1. 도는 마음 깨치는 데 있다완릉록 보설편
◈ 완릉록 1. 道는 마음 깨치는 데 있다 [본문] 배상공이 황벽스님께 여쭈었다. "산중(山中)의 사오백명 대중 가운데서 몇 명이나 스님의 法을 얻었습니까?" 대사가 말씀하셨다. "法을 얻은 사람은 그 數를 헤아릴 수 없다. 왜냐하면 道는 마음을 깨치는 데 있지 어찌 言說에 있겠느냐? 言說이란 다만 어린아이를 敎化할 뿐이니라."
********원오당 한소리******** 眞理의 當體는 實로 時間과 空間은 超越하여 언제 어디서나 恒存하는 것이다. 이 완릉록은 황벽선사의 어록이다. 아쉬운 것은 상당법문이나 간변이 나타나 있지 않은 것은 전심법요와 완릉록은 승상배휴가 在家 佛子로써 전심법요는 배휴가 842년 종릉 관찰사로 부임하여 황벽스님을 만나고 부터
개인적으로 질문하고 들었던 것을 몇가지만 추려 쓰여진 것이며 이 완릉록 역시 848년 완릉 관찰사로 부임하여 다시 황벽스님을 개원사로 모셔와 조석으로 문안드리면서 뭍고 답한 것만 적은 것이다. 재가불자여서 항상 스님을 보필하고 모신 제자가 아니였음으로 자기가 들은 것만을 추려 역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마음工夫가 아직 익지 않는 재가불자들에게 들려주는 法門임으로 더욱 價値가 있고 마음工夫에는 더없이 重要한 지납이 될 것이다. 이 완릉록 속에는 불교의 대의와 진리의 당체가 그대로 다 들어나 있으니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지금도 납승들의 지침서가 되고 구도자의 안내서가 되는 것이니
진리는 누가 어디서 언제 설하여도 똑 같은 말이 되는 것이며 그 方便기틀은 조금씩 달라도 그 根源은 다 같은 것이다. 왜 그런가 마음의 深處는 모든 사람이 다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 들어도 一乘法을 들어야 하고 參門은 역시 선지식을 찾아 참문하는 것이 삿된 길로 빠지지 않는 유일한 길일 것이다. [배상공이 황벽스님께 여쭈었다. "산중(山中)의 사오백명 대중 가운데서 몇 명이나 스님의 법을 얻었습니까?"] 배상공이 실로 6년만에 다시 만나 황벽스님을 개원사로 모셔와 조석으로 예를 올리며 불교의 大義를 뭍고 있다. 그러니 그동안 개원사에서 많은 설법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교화하여 이끌었음을 잘알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의 사부대중이 4-5백명이나 되고 하니 궁금하여 물었을 것이다. 몇 명이나 스님의 法을 얻었습니까?라고 여기 法은 얻는 다는 것이 무슨 말일까? 法을 얻는다거나 마음을 얻는다거나 같은 말일 것이다. 法이나 마음은 얻어지는 것이 아닐 것이다. 法은 마음의 作用이며 形像인 것이며, 마음은 그 어떤 모양도 형상도 없다. 그러니 當然히 法은 法 없음을 얻어야 하고, 마음은 마음 없음을 얻어야 제대로 아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고 있는 배휴의 法은 道라고 이야기 했으며 조금은 가까운 곳에서 물을 수 있지만
法은 얻었는가라고 물으니 아직은 法의 心了를 깨치지도 마음의 心了를 얻지 못한 사람의 의문이고 궁금증일 것이다. [대사가 말씀하셨다. "法을 얻은 사람은 그 數를 헤아릴 수 없다.
왜냐하면 道는 마음을 깨치는 데 있는 것이지 어찌 언설에 있겠느냐? 언설이란 다만 어린아이를 교화할 뿐이니라."] 그래서 스님께서 '법을 얻은 사람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라고 하시는 말씀을 깊이 참구해 보아야 할 것이다. 法이란 마음의 씀의 形相을 法이라 한다. 그 어떤 마음이라도 使用하면 다 法이된다. 卽, 說法을 하든 參門을 하든 平常行을 하던 많은 사람이 듣고 보고 알고 지녔을 것이다. 그것을 이해(理解)를 하든 해오(解悟)을 하든 보고 들으면 다 황벽스님에 법이라 할 것이다. 그러니 안들은 사람이 없고 다 듣고 각자 나름대로 가지고 지닌 것이니 法으로 말한 다면 다 받아 지녔다. 그래서 스님도 法을 얻은 사람은 그 數를 혜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이 받아 지녔다고 한다.
그러나 眞實한 法은 그런 法이 아닌 것이다. 卽, 앎에도 있지않고 모름에도 있지않다. 오직 法의 심요를 깨치는데 있으며 이 法의 심요를 깨친다는 것이 바로 마음을 깨치는 것이 된다. 그러니 어찌 法을 받아 지니는 수지(受持)에 있겠으며 말이나 언설이나 문자에 있지 않다고 하신다. 이것이 바로 마음의 本性에 契合하여야 眞正 마음을 얻은 것이 되는 것이지
여기서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本來智의 본불(本佛)인 眞如當體를 말하고 있다.
그러니 모든 法은 마음의 作用이며 마음의 이 作用은 虛妄하여 因緣에 따라 잠깐 일어나는 꿈 속에서 일어나는 일 같으며, 신기루 같은 것이며, 바다에서 일어나는 물거품과 같은 것이며. 거울에 비친 그림자에 불과한 것이며, 화로불 위의 눈꽃이며, 한바탕 몰아치는 천둥번개와 다름이 없다.
그럼으로 法이란 八萬四千 方便門이니 우는 아이를 달래고 헛된 길에 억매여 고통받고 힘들어 하는
중생들을 교화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方便이며 조사님의 方便說도 또한 彼岸으로 이끌려는 나루배이지
그 眞理의 當體는 아닌 것이다, 그래서 그 형상도 모양도 그 어떤 감각도 다달을 수 없는텅~빈 佛性을
스스로 體得하여 묵묵히 契合할 따름임을 밝히시어 祖師禪의 根本 大義를 다 들어 내 보였다. 조사선(祖師禪) 根本大義인
언어도단(言語道斷) 이며 불립문자(不立文字)이며 심행멸처(心行滅處)를 다 밝히신 것이다. 卽, 眞理의 當體는 말길이 끊어지고, 글로도 그 곳을 쓸 수 없으며,
마음이 다하여 마음이라는 그 어떤 식심(識心)의 境界를 훤출하게 벗어나
法도 없고 禪도없고 心도없고 佛도 없는 그 말길 以前이며 生覺 以前의 길이며 텅~빈 저 虛空처름 시작도 끝도 없으며 그 主宰者마져 없어서 있다 없다를 벗어나는 길 오직 그 길 만이 道이며 法이며 禪이며 佛이며 마음(心)이라고 말씀하신다. ***본불본락(本佛本樂) 하옵소서! ()()()*** ***화엄동산에서 원오스님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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