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 완릉록 2. 자기의 마음을 알자

장백산-1 2014. 11. 25. 22:25

 

 

 

 

 

◈ 완릉록 2. 자기의 마음을 알자 |완릉록 보설편

   

    보현행 ||2012.04.12. 20:16   http://cafe.daum.net/wono1/LBKh/4 

 


 

 

◈ 완릉록 2. 자기의 마음을 알자 "어떤 것이 부처(佛)입니까?" "마음(心)이 곧 부처(佛)이고, 무심(無心)이 道이니라. 다만 마음을 내어서 生覺을 움직인다든지, 혹은 있고[有] 없고[無], 길고 짧음, 너와 나, 나아가 主體니 客體니 하는

分別하는 마음이 없기만 하면, 마음이 本來 부처요 부처가 本來 마음이니라. 마음은 虛空과 같기 때문에 말씀하시기를 '부처의 참된 法身은 虛空과 같다'고 말씀하였다. 그러니 부처를 따로 구하려 하지 말 것이니, 구함이 있으면 모두가 고통이니라. 설사 오랜 세월 동안 6도[六途] 卍行을 실천하여 부처님의 깨달음을 얻는다 하더라도 그러한 깨달음은 결코 完全한 구경(究竟)이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런 깨달음은 因緣의 造作에 속하기 때문이다. 因緣이 다하면 덧없음으로 돌아가고 말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報身佛과 化身佛은 참된 부처(佛)가 아니요 또한 法을 說하는 者가 아니다.'고 말씀하였다. 다만 自己의 마음을 알기만 하면 나[我]라고 할 것도 없고 또한 남[人]도 없어서 부처(佛) 本來 그대로 마음(心)이고, 마음(心) 本來 그대로 부처(佛)이니라."

 

 
********원오당 한소리********
 
 

 

[" 如何是佛, 어떤 것이 부처(佛)입니까?"
 
"마음(心)이 곧 부처(佛)이고, 무심(無心)이 道이니라.
 
다만 마음을 내어서 生覺을 움직인다든지, 혹은 있고[有] 없고(無), 길고 짧음, 너와 나,
 
나아가 主體니 客體니 하는 分別하는 마음이 없기만 하면,
 
마음이 本來 부처요 부처가 本來 마음이니라.
 
마음은 虛空과 같기 때문에 말씀하시기를 '부처의 참된 法身은 虛空과 같다'고 말씀하였다.]
 
 
여하시불(如何是佛), 무엇이 부처(佛)입니까?
 
이 한마디가 禪問答의 처음이자 끝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무엇이라고 물었든 그 結果는 다 如何是佛이 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때 황벽스님은 마조스님처럼 몸둥이로 때렸어야 했다.
 
여전히 배휴는 名色으로만 질문하고 있다.
 
부처(佛), 禪, 道, 法이라는 이름은 全部 마음(心)을 指稱한 말이다.
 
그래서 如何是佛이라는 물음에
 
마조스님은 즉심즉불(卽心卽佛)이라 말씀하셨고
 
백장스님은 심즉불(心卽佛)이라 말씀하셨다.
 
말과 글로 부처(佛)을 무엇이라 이름하던간에
 
오직 모든 말과 글은 全部 마음의 지음이요 마음의 作用일 뿐인 것이다.
 
그리고 무심(無心)이 바로 도(道)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조금 分別아닌 分別을 해보고자 한다.
道라는 말은 主로 법신불(法身佛)을 稱할때 使用하는 말이다.
 
그러나 道, 法身佛 이 역시 마음을 稱하는 이름이니 마음은 둘이 아니다.
 
그러나 마음을 체상용(體相用)으로 어쩔 수 없이 나누어 說하고 있기 때문에
 
體相用 이것을 알고 가야 혼돈이 없을 것이다.
 
는 마음의 텅~빈 바탕인 심지(心地)를 일러 말하는 것이고
 
은 마음의 일어남을 말하니 마음의 作用을 말하는 것이고
 
은 마음의 作用으로 일어난 形像을 相이라 한다.
 
그래서 마음의 作用과 相은 宇宙法界의 因緣에 따라서 成住壞空 生住異滅의 循環過程이 있으나[無常],
 
法身佛은 상주불변(常住不變)임으로 禪問答에 登場하는모든 부처(佛)라는 말은 이 法身佛을 稱하고 있다.
 
그럼으로 이것을 부처(佛)라고 해도 三身佛이 있음으로 法身佛을 稱할때는 主로 도(道)라고 稱할 뿐이다.
 
그러나 道라는 호칭 역시 三身佛로 다 사용될 때도 있다.
 
 
다만 마음을 내어서 生覺을 움직인다는 말은 바로 한 生覺을 일으키면 이라고 하니 ,
 
이것은 바로 마음이 作用을 하면 이라는 말이 된다.
 
이 마음의 作用을 通하여 差別的 關係인 二分法으로
 
유무 장단(有無 長短)이나 피차 주객(彼此 主客)이 없으면 이라고 하여
 
差別함으로 相이 發生하고, 生覺이 생겨서 喜悲愛樂에 빠지기 때문에,
 
이 한 生覺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지금 있는 그대로의 마음이 本來 바로 부처라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마음이라고 부르는 法身佛은 마치 虛空과 같아서 그 어떤 形相이나 모양이 없고 흔적도 없기 때문에
 
부처의 참된 法身은 虛空과 같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虛空이 곧바로 法身佛이라든가 法身佛이 그대로 虛空이라고 말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니 부처를 따로 구하려 하지 말 것이니, 구함이 있으면 모두가 고통이니라.
설사 오랜 세월 동안 6도[六度] 卍行을 실천하여 부처님의 깨달음을 얻는다 하더라도
 
그런 깨달음은 결코 完全한 구경(究竟)이 되지 못한다.]
 
 
마음이 부처라고 하니까 또한 마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또 낼까봐 노파심에 이렇게 말씀하신다.
 
마음을 구하려 하지 말라고 하신다.
 
바로 마음이란 虛空과 같다고 하셨는데 그 虛空 같은 마음을 어떻게 구하거나 얻겠는가!!!.
 
오직 마음을 짓지만 않으면 되지만 구하려는 마음도 얻으려는 마음도 다 마음의 作用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한 마음을 일으켜서 因緣을 만들고, 相에 치우쳐 고통을 받고 슬퍼하는 것이니
 
이것은 전부 因緣造作에 속하기 때문인 것이다.
 
因緣攝生은 結局 因果法에 따라 滅하여 없어짐으로 虛妄하고 부질 없는 짓이다.
 
그러니 마음의 일으킴과 相을 虛妄한 것이라며
 
三身佛에서 작용(用)인 化身과, 상(相)인 報身은 부처(佛)가 아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럼으로 法 또한 說하는 者가 아니다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니 있는 그대로의 마음이 본래 부처인 줄 알면 되는 것이지, 求해서 얻어지는 부처(佛)이 아니라고 말씀하시고
그 마음은 텅~빈 虛空같으니 그 마음에는 너다 남이다 할 그 무엇도 없어서 텅~빈 虛空 그대로와 같다.
그러니 오직 自己의 마음을 알기만 하면 부처가 그대로 本來 마음이며 이것을 부처라고 말씀하신다.
 
 
오직 形相으로 부처를 구하고 이름으로 부처를 구하고 얻으려 하는
그 마음이 虛妄한 報身이요 化身인 것이다. 報身 化身 이 역시 부처(佛)는 맞기는 하나
 
그 부처는 虛妄한 부처임으로 虛妄하여 眞實함이 하나없는 부처기 때문에,
眞如緣起이며 法身佛인 텅~빈 마음의 本體, 심지(心地)를 밝혀서
 
모든 마음의 作用과 相을 일으키지 않아야
 
본래 그대로 마음이며 부처인 것이다.
 
 
그래서 스님은 마음의 作用과 相으로 하고 있는 그 報身과 化身으로 설사 오랜 세월동안 육도만행으로
 
실천하여 부처님의 깨달음을 얻는다 하더라도 그 깨달음은 마음 造作과 因緣所生으로 생겨난 것임으로
그것은 本來 구원겁전부터 恒存한 本來마음이 아닌 것이라고 하시면서
그렇게 얻어진 깨달음은 因緣造作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本來마음 本來佛이 아니며, 깨달음도 아니고, 完全한 究竟의 境地가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연의 조작에 속하기 때문이다. 인연이 다하면 덧없음으로 돌아가고 만다.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報身佛과 化身佛은 참된 부처(眞佛)가 아니요 또한 법을 설하는 자가 아니다.'고 하였다.
다만 自己의 마음을 알기만 하면 나[我]라고 할 것도 없고 또한 남[人]이라고 할 것도 없어서
마음이 本來 그대로 부처이니라."]
 
 
 
어떤 만들어서 얻어진 마음은 다 因緣造作이기 때문이며, 因緣이 다하면 덧없음으로 돌아가고 말것이니,
 
이런 因緣造作된 마음이 어찌 本來佛이겠으며, 本來의 마음이겠는가! 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정말 긴요하고 중요한 부문이다.
 
 
 
흔히들 알기로는 힘들게 修行을 하고 頭陀行인 苦行을 해서 모든 마음을 다 녹이고 훈숙시켜서
 
그 結果로 얻어진 깨달음이야말로 진정한 깨달음이라고 알고들 있다.
 
그러나 祖師禪에서 말하고 있는 역대 그 어느 스님도 苦行으로 그렇게 修行하라고 말씀하신 분은 없다.
오직 스스로 묵묵히 平等함에 마음이 契合할 뿐이며 一燭智에 佛智에 오르는 것이니
 
이것이 돈오돈수(頓悟頓修)인 것이며, 段階와 節次가 없는 깨달음이다.
 
 
 
 
修行이란 오직 마음의 作用을 일으켜 몸이나 마음으로 그 어떤 行動을 해서 造作하는 것이니
이러한 修行은 全部 마음의 보신(報身)이요 화신(化身)인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의 報身과 마음의 化身의 修行을 通해서 法身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元來부터 圓滿具足하여 常住不變하는 본래 마음은
 
그 어떤 修行에도 물들거나 熏習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千年을 修行한다고 해도 自己 마음 하나를 밝히지 못하는 깨달음은
全部 因緣習生으로 造作된 마음이며 만들어진 마음인 것이지 本來의 마음이 아닌 것이다.
 
 
本來 마음을 그래서 淸淨法身이라고 칭했듯이 本來부터 完全하고 淸淨한 自性佛인 것이며
淸淨法身 毘盧遮那佛이라고 칭하였다. 오직 自己 마음을 바로 알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본불본락(本佛本樂) 하옵소서! ()()()***
 
***화엄동산에서 원오스님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