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如來께서 제도할 중생은 없느니라.
나[我]도 오히려 얻을 수 없는데 나 아님이야 어찌 얻을 수 있겠느냐!
부처도 중생도 모두 다 얻을 수 없느니라."]
이 단락에서의 문답은 物質이나 이름이 實際하는가
아니면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냐를 밝히고 있는 대목이다.
배휴가 부처님이 중생을 제도하십니까?라고 물었다.
이것은 부처라는 것이 실지하고, 중생이라는 것이 실지해야만이, 이런 물음이 이루어 질 수 있다.
이런 물음이 나오자 마자 바로 몽둥이로 두들겨 패어야 하는데 그래도 스님의 자비가 한량이 없음이다.
부처라는 이름은 텅~빈 마음의 바탕을 비유해서 하는 말이고
중생이란 이름은 텅~빈 마음에 스스로 세운 假設的 用인 識心을 비유하여 하는 말이다.
텅~빈 마음의 본바탕은 그 어떤 것으로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세울 것도 없는, 말할 것도 없이, 텅~빈 바탕 虛空性인데
見聞覺知로 스스로 세워만든 造作的 마음 ,즉 식심(識心)을 마음이라고 칭하여
부처와 중생간에 다른 것이 있다는 差別的 關係속에서 하고 있는 말이며 이름이다.
석존도 金剛經에서 수보리가 묻기를
어찌하여야 제보살이 마음을 조복받을 수 있겠느냐고 물으니
實로 중생이라는 것이 없는데 我相.人相. 衆生相. 壽者相를 스스로 세워서
스스로 중생이 된 것이니 實로 제도할 그 어떤 보살이 實際로 存在하는 것이 없다고 하셨다.
그와 같이 스님도 '정말로 여래께서 제도할 중생은 없느니라.' 라고 하신다.
그러나 배휴는 이를 받아들이기가 힘들것이다.
그러나 부처라는 이름이나 중생이라는 이름은 差別的 마음의 所産이지
실제는 그 존재성이 없는 것이다.
마음의 텅~빈 本體를 부처(佛)라하고, 텅~빈 마음의 作用과 報身을 들어 衆生이라고 하지만,
그 모두는 한마음인 것이다.
그러니 마음이 어디에 있느냐......마음이라고 하는 말 역시 形相이며 이름일 뿐이다.
그러니 그 마음 또한 얻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닌데
어찌 중생인들 얻을 수 있으며, 부처를 어찌 얻고, 중생을 제도할 것인가
무엇이 무엇을 제도한다는 말인가!
그래서 스님은 또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我]도 오히려 얻을 수 없는데 나 아님이야 어찌 얻을 수 있겠느냐! '라고 하신다.
나[我]는 무엇일까? 金剛經에서 사상(四相)을 나라고錯覺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듯이
나란 내 마음인데 마음마져 얻을 수 없는데, 어찌 나인들 얻을 수 있으며
나도 얻을 수 없다면 나 아님이야 말할 것도 없이 얻을 수 있겠는가라고 뭍고 계신다.
그러니 나아가 分別心 差別心으로 세워 지어만든 이름인 부처니 중생이니 하는 그 모두를
다 얻을 수 없는 것이며 이 모든 것이 다 스스로 의 妄想으로 세워 만든 이름인
허명(虛名)이라고하신다.
["현재 부처님의 32상(相)과 중생 제도가 분명히 있는데
스님께서는 어찌 없다고 말슴하십니까?"
"經에서 말씀하시기를, '무릇 모양이 있는 存在는
모두가 虛妄한 것이니, 만약 모든 모양을 보되 모양이 아닌 줄을 알면
곧 여래를 보게 되느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말씀하셔도 배휴는 믿지 않고 다시 부처님의 32相과 중생 제도가 經에 있는데
어찌 스님은 자꾸 없다고 하십니까라고 물고 늘어진다
그래서 스님도 할 수 없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래도 너가 믿지 못하겠다니 나로서는 어쩔 수 없으니
너가 믿을 수 있는 석존의 金剛經을 引用하여 말씀을 하고 계신다.
약이색견아(若以色見我)하거나 이음성구아(以音聲求我)하면
시인(是人)은 행사도(行邪道)라 불능견여래(佛能見如來)이니라.
즉 만약 어떤 사람이 나의 形相을 보고 부처라 하거나
내가 말하는 音聲을 듣고 이것이 부처님의 설법이라하면
이 사람은 삿됨과 아만을 행하는 것이다.
이 사람은 如來의 眞正한 뜻을 불 수없다고 하는 金剛經 四句偈를 들어 설파하신다.
[부처니 중생이니 하는 이름은 모두 네가 生覺으로 虛妄하게 지어낸 見解로서,
오로지 本來의 텅~빈 바탕 마음을 알지 못한 탓으로
그같은 허망한 잘못된 견해를 내게 된 것이니라.
부처라는 관념, 견해를 내는 순간 바로 그 부처라는 망상에 끄달리고,
중생이라는 관념, 견해를 내는 순간 바로 그 중생이라는 망상에 끄달린다.
범부 성인, 더럽느니 깨끗하다느니 하는 관념, 견해를 내는 등의 모두 그 장애를 받느니라.
그것들이 너의 마음을 가로 막기 때문에 결국 윤회하게 된다.]
그래서 다시 그 差別的 分別心을 타파해주기 위하여
부처니 중생이니 하는 말은 모두 너의 생각 마음 스스로 지어낸 너의 觀念的 見解인 것이라고
부처니 중생이니 그 말은 오로지 텅~빈 본래의 마음을 알지 못한 탓으로
그같은 잘못된 虛妄한 觀念的 見解를 내게 된 것이니라. 라고 말씀하시어
本來智인 마음의 텅~빈 본 바탕을 몰라서 하는 말이라고 하시면서.
그래서 부처라 하면 실제하는 부처가 있다고 錯覺해서 執着하고
중생이면 실제하는 중생이 있다고 錯覺해서 執着하니
그 差別的 마음의 境界를 깨부수기 위하여 부처라하였고
중생이라고 하였다는 것을 밝히고 계신다.
그러니 중생 부처, 범부 성인, 더럽다 깨끗하다,라고 하는
差別的 分別心이 바로 너의 識心이고 다 스스로의 識心으로 만든 虛妄한 境界임으로
그 根本 뜻을 알아 허망한 境界에서 벗어나라고 하시면서
그렇게 만들어진 허망된 境界가 바로 六聚로 내 달리면 生死 苦海에서 허덕이고
生死 輪廻를 스스로 불러 虛妄하게 육취중생이 된 것이라고 꾸짖고 계신다.
[이것은 마치 원숭이가 무언가를 들었다 놨다 하느라고 마음이 쉴 때가 없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진정한 배움이란 모름지기 배울 것이 없어야 한다.
범부도 성인도 없고 깨끗함도 더러움도 없으며, 큼도 없고 작음도 없으며
번뇌도 없고 인위적 작위도 없다.
이와 같은 한 마음 가운데서 바야흐로 方便으로 부지런히 莊嚴하는 것이다.
설혹 네가 3승 12분의 가르침과 모든 이론들을 배운다 하더라도,
그 모든 것을 다 버려야 한다.]
이렇게 스스로 지어 만든 것이라.
원숭이가 물건을 쥐었다 놓았다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라.
그러니 道를 구하는 사람은 오직 原來부터 무일물(無一物)이라
배울 것도 取할 것도 얻을 것도 없어야 하는 것이라고 하시면서
오직 범부니 성인이라 差別的 分別心 境界에 錯覺해서 執着하여 물들지말고
그 어떤 差別的 造作이나 斷常을 세우지 않고
그져 無心히 이 世上 모든 것이 다 텅~빈 바탕 한마음의 지음임을 알아
그렇게 가다보면 이 世上 모든 것이 다 내마음이 내스스로 지어 그려낸 그림임을 알아
오직 한 마음 속에 일이며 물위에 비친 相과 같음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 유유자적 할 수 있다고 하시면서.
아직도 구할 것이 있고 제도할 께 있고 얻을 것이 있다면
부처님의 經典인 3승 12분경의 가르침이 다 내마음의 所顯을 말씀하신 것으로 알아
그 經마져 버리고 오직 한마음이 있을 뿐임을 굳게 믿고 알라고 하시면서
그 모든 諸法은 實로 方便으로 세운 假說임을 알아
그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가진 것을 모조리 없애 버리고 오직 寢床 하나만을 남겨 두고 病들어 누워 있다'고
한 말은 바로 모든 虛妄한 妄靈된 見解를 일으키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한 法도 가히 얻을 것이 없어서 法의 障碍를 받지 않고,
삼계의 凡, 聖의 境界를 훌쩍 벗어나야만 비로소 세간을 벗어난 부처님이라고 하느니라.]
가진 것이라는 것은 내 스스로 세워 만든 식심(識心)이니
이 虛妄한 見解에서 벗어나면 오직 眞實하여 虛妄함이 하나없는
마음의 텅~빈 본체만이 獨露할 것이라는 뜻으로 病들어 누워있다고 하신다.
虛妄한 모든 見解를 일으키지 않는다면 세울 것도 法이라 할 것도 事實 없는 것이 되는 것이다.
텅~빈 마음의 그 본바탕에는 가히 세울 그 어떤 法도 없고, 형상도 모양마져 없음으로
法의 障碍을 받지도 않고 물들지도 않아서 三界를 벗어나고 성인이다 범부라는
모든 差別性을 뛰어 넘어야만이 비로소 모든 法에 自由 自在하여 매이지 않음으로
이를 일러 世間을 벗어난 부처님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虛空처럼 依持할 바 없음에 머리숙여, 外道의 굴레를 벗어나는 道다'고 하였다.
虛空같은 마음이 이미 다르지 않기 때문에 法 또한 다르지 않으며,
마음이 하염 없으므로 法 또한 하염이 없다.
萬法이 모두 마음으로 말미암아 變한 것이다.]
그런 虛空性이 바로 마음의 텅~빈 본바탕인 것인 것이니
의지할 바도 걸릴 것도 없는 無心의 境地인 虛空에 머리숙여 감사하며
이 바탕을 투특하여 외도의 있음에 법에서 벗어나는 道라고 하시면서
마음이 法과 다르지 않음으로 마음이 곧 法이고
法이 곧 마음이어서 마음도 法도 세우면 세우는대로 하염이 없고
세우지 않으면 세우지 않는대로 그대로 무심(無心)인 것이다.
萬法이라는 것이 다 내 마음으로 말미암에 變하여 드러난 것이지
마음을 떠나 한 法도 세울 것이없음을 다시 한 번 밝히고 계신다.
[그러므로 나의 마음이 텅~비었기 때문에 모든 法이 텅~비어 空하며,
千萬 가지 衆生들도 모두 다 텅~비어 空한 같은 것이다.
온 시방의 虛空界가 같은 텅~빈 바탕 한마음의 本體이니,
텅~빈 바탕 마음이란 本來 서로 다르지 않고 法 또한 다르지 않건만,
다만 너의 망령된 見解가 같질 않으므로 差別이 있게 되느니라.
비유하면 모든 하늘사람들이 다 보배 그릇으로 음식을 받아 먹지만
각자의 복덕에 따라 밥의 색깔이 다른 것과 같다.
그러므로 마음의 본바탕이 虛空같이 텅~비어 있음으로
모든 法 또한 텅~빈 空이며 천만가지 중생들도 모두 다 같이
그 실체가 있는 것이 없이 텅~빈 공 그대로라는 말이다.
온 十方 虛空界가 텅~빈 바탕 마음과 똑 같은 本體임으로
마음과 마음이 서로 다르지 않다고 밝히신다.
즉 성인인 석가모니의 마음이나 달마대사의 마음이나
혜능선사의 마음이나 마조스님의 마음이나
황벽스님의 마음이나 나의 마음이나 여러분의 마음의 텅~빈 本바탕이
한결같이 텅~ 빈 佛性이며 텅~빈 虛空이며 텅~빈 無心으로
다 같은 텅~빈 본바탕 마음이라는 엄청난 眞理를 설파하신다.
오직 이 사실이 眞實이며 道인 것이다.
황벽스님의 이 설법으로 더는 구할 것도 얻을 것도 알것도 밝힐 것도 없을 것이다.
그래도 있다면 그는 바로 마구니일 것이다.
부처님 제자도 아니요 삿된 법을 구하는 마구니다.
그래도 아니라고 하는 것은 바로 그대의 見解라고 하신다.
그 見解라는 것이 바로 衆生心이요 差別心인 것이며 造作이요 是非分別인 것이다.
그래서 그 見解로 인하여 다름이 있고 같음이 있는 것이지
텅~빈 마음의 본바탕에서 본다면 一味平等하여 그 어떤 差別도 없는 것이며
우리의 마음이나 부처의 마음이 오직 하나인 것이며 다 虛空性이며 無心인 것이다.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는 실로 작은 법도 얻은 것이 없으니,
이것을 이름하여 無上正覺이라 한다.
오로지 텅~빈 바탕 한 마음일 뿐, 實로 다른 모양이 없으며,
또한 광채가 빼어날 것도 없고 나을 것도 못할 것도 없다.
나을 것이 없기 때문에 부처라는 모양이 없고,
못할 것이 없기 때문에 중생이라는 모양이 없다."]
그래서 무심(無心) 즉 텅~빈 마음 바탕에는 실로 그 어떤 작은 法도 얻을 것이 없으니
이 경지를 일러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이라고 하신다.
그러니 이제 오직 믿고 믿어야 한다. 오직 마음뿐! 유식(唯識)이라고!!!!!!!!
그 마음은 모양이 없으니 광체도 없고 나을 것도 못할 것도 없다.
그러므로 나을 것이 없음으로 부처라는 모양이 없고.
못할 것이 없기 때문에 중생이라는 모앙이 없다
그 모든 것이 다 인연지소생(因緣之所生)이며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있다는 모든 法과 形相과 이름은 全部다 오직 내 마음에 지음임일세
["마음이야 모양이 없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어찌 부처님의 32상(相) 80종호(種號)와 衆生을 敎化하여 제도하는 일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32相은 모양에 속한 것이니,
'무릇 모양 있는 것은 모두 虛妄하다'라고 말한 것이요,
80種號는 색깔에 속한 것이니,
'만약 겉 모습으로 나를 보려 하면 이 사람은 삿된 도를 행하는 것이니
如來를 볼 수 없느니라'고 하신 것이다.]
그래도 또 물고 늘어진다. 오직 이 물음은 배휴가 몰라서 하는 말이 아니다.
지금 이글을 읽고 있는 사람을 위하여 그대의 의심을 내려 놓으라고 뭍고 답한 것이다.
사람의 知見이란 모든 것인가?
그 무엇에 의지하여야 만이 다음으로 넘어가고
그 단계를 세워서 알아가는 것을 근본으로 한다.
그러니 또 이렇게 물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마음이야 모양이 없어니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지만 석존이 설한 32상80종호가 어찌 중생을
교화하고 제도하는 것이 없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라고 뭍고 있다 .
그래서 스님은 32상이란 것은 모양에 속하는 것이니
모양이란 바로 허망한 것이라며 석존의 경의 말씀을 또 인용하여 말씀하신다.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일체 유위법 개시허망(一切有爲法皆是虛亡)'이라고
금강경에서 말씀하셨듯이 모든 상이라는 것은 다
인연의 화합으로 일어난 가합성의 허상인 것이다.
그러니 어찌 실지로 존재하는 상이 있을 것이며.
80종호는 색깔인 것이니 이 색깔역시 허망한 것이다.
그래서 석존의 사구게를 다시 위에서와 같이 설파하시어
오직 모든 상이 상이 아닌줄 알면은 바로 여래라는
것을 밝히시면서 모든 모양이나 색깔에서 벗어나
오직 유식이며 일체유심조임을 믿어
허망한 경계에서 벗어나라고 설하셨다.
***본불본락(本佛本樂) 하옵소서! ()()()***
***화엄동산에서 원오스님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