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 완릉록 10-3 하염없는 법의 문[無爲法門]

장백산-1 2014. 12. 1. 22:39

 

 

 

 

 

◈ 완릉록 10-3 법의 문[無爲法門]|완릉록 보설편

     보현행 | 조회 62 |추천 0 |2012.04.23. 21:46

 

 

 

◈ 완릉록 10-3 하염없는 법의 문[無爲法門]

 

"만약 그러다면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시어 무슨 法을 말씀하십니까?"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세간에 나오시사 오로지 한 마음의 法만을 말씀하시니라.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마하대가섭에게 그것을 은밀히 부촉하셨느니라.

이 마음법[心法]의 本體는 虛空界를 다하여 온 法界를 두루하기 때문에 모든 부처님의 理致라고 부른다.

이러한 法을 논하건대 너는 어찌 言語, 文字로써 그것을 알 수 있겠는가. 또한 한 機틀, 한 境界 위에서

결코 심법([心法)을 볼 수 없는 것이니, 오로지 묵묵히 心法에 契合할 따름이니라. 이 하나의 門을 얻는 것을

이름하여 하염없는 法의 문[無爲法門]이라 한다. 만약 깨쳐 알고자 한다면 다만 無心을 알아야 한다.

홀연히 깨치면 곧 되는 것이요, 만약 마음을 써서 배워 깨달으려 하면 그럴수록 더욱더 멀어지느니라.

갈라진 마음과 모든 취사(取捨)하는 마음이 없어서, 나무와 돌 같은 마음이 되어야만

비로소 道를 배울 분(分)이 있느니라."


 
********원오당 한소리********

"만약 그러다면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시어 무슨 法을 말씀하십니까?" 아무리 말씀을 해도 知識과 자기 見解인 觀念을 가지고 있는 인간은 누구나

어떤 말을 들어도 자기 견해를 통해 받아 들인다. 그러므로 바른 眞理를 말해도, 그 말을 자기 견해의 틀속에 넣어서 第7識인 말라識 卽, 思量分別識을 通하여 解釋을 해서 第8識인 아뢰야識에 貯藏을 하기 때문에 바로 알아들을 수도 깨칠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배휴는 이미 다 깨달았다. 오직 후학을 위하여 이 황벽스님의 어록을 집필하다보니 各種 差別相을 만들어 뭍고 답하는 식으로 구성되였다고 보면서, 이 글들을 읽는다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들이 세상에 출현하여 무슨 法을 설하시냐고 뭍는다. 法이란 것이 무엇인가? 바로 마음의 思惟와 作用을 하여 드러내면 法이된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 두두물물이 일체시 일체처에 語默動靜 行住坐臥시에 이 모든 것이 다 法이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法은 심법(心法) 즉 마음法이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세간에 나오시사 오로지 한 마음의 法만을 말씀하시니라.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마하대가섭에게 그것을 은밀히 부촉하셨느니라." 마음이 부처다! 이 말(法)은 오직 심지(心地)에서 하는 말씀이다. 모든 경전이 다 마음을 설한 것이나, 여기서 말하는 法은 심지법(心地法)을 말하고 계신 것이다. 그래서 심인(心印)을 마하대가섭에게 은밀히 부촉하셨느니라 라고 말씀하신다 왜 여기서 은밀히 부촉하셨다고 했는가. 그것은 말씀으로 하신게 아니라. 가섭이 알아차리도록 세곳에서 마음을 전했기 때문이다. 그래고 직설로가 아니라, 마음으로 터득하여 깨닫게 하였음으로 은밀하게 부촉하셨다고 설하신다.

 

그리고 이 마음법(心法)의 본체[諦]에 대하여 설하신다. "이 마음법[心法]의 본체는 허공계를 다하여 온 법계를 두루하기 때문에 모든 부처님의 이치라고 부른다. 이러한 法을 논하건대 너는 어찌 언어, 문자로써 그것을 알 수 있겠는가. 또한 한 기틀, 한 경계 위에서는 결코 심법([心法)을 볼 수 없는 것이니, 오로지 묵묵히 계합할 따름이니라. 이 하나의 문을 얻는 것을 이름하여 하염없는 법의 문[無爲法門]이라 한다." 설하신 것과 같이 가이없는 허공계와 같은 마음은 온 법계에 두루하며 太虛空도 다 마음이 그려낸 것임을 설하시며, 心法을 터득하려면 이해(理解)와 해오(解悟)를 통하여 알아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묵묵히 스스로 채달(採達)하여 계합(契合)함을 통해 깨달음에 이른다는 것을 말씀하시면서 이 깨달음의 門을 通하여 얻는 것을 하염없는 법의 문[無爲法門]:무위법문]이라고 하신다. 여기서 無爲法門이란 함이 없이 하는 것을 말한다. 하고, 지어가되, 작용하되 드러나지 않으니, 하지만 함이 없는 무위(無爲)라 한다. 그럼으로 오직 간절함 하나만으로 한 마음이 契合이 될때까지 좌선을 한다면

좌선은 누가 봐도 함이 없는 것같지만 하고 있는 것이듯이 마음의 일어남을 觀하여(회광반조) 한 마음도 일어나지 않는 경지로 가는 것을 통하여 무심(無心)을 증득하는 것이다. 그래서 스님은 무심을 증득하려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궁금해 하니 이렇게 말씀하신다. "만약 깨쳐 알고자 한다면 다만 無心을 알아야 한다. 홀연히 깨치면 곧 되는 것이요, 만약 마음을 써서 배워 깨달으려 하면 그럴수록 더욱더 멀어지느니라. 갈라진 마음과 모든 취사(取捨)하는 마음이 없어서, 나무와 돌 같은 마음이 되어야만 비로소 道를 배울 분(分)이 있느니라." 無心을 증득할려면 배우고 공부하고 수행을 해서 아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取捨와 揀擇의 두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 無情物같은 境地를 채득되어야 하는 것이니 나무와 돌같이 分別心이 일어나지 않는 경지를 증득해야만이 心地인 本來마음으로 갈 수가 있으며,

그래야만 道를 배울 분(分)이 있고 바른 길을 가고 있다고 설해 주신다. 무심지도(無心之道)!!!! ***본불본락(本佛本樂) 하옵소서! ()()()*** ***화엄동산에서 원오스님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