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성과 직관 불교방송 다시듣기
동시성과 직관
直觀이나 靈感은 어디에서 어떻게 오는 것일까? 생각과 판단은 무수한 논리와 지식과 정보를 통해서 조합되고 만들어지는 것이지만, 직관과 영감은 오히려 그 무수한 생각을 내려놓고, 마음을 고요히 비운 가운데, 홀연히 떠오르는 창의적 예지에 가깝다. 그래서 많이 생각하고 내린 답변 보다는 오히려 생각 없이 갑자기 묻고 갑자기 대답한 답변이 더 직관에 가까울 수 있는 것이다. 말 그대로 ‘생각 없이’ 지나가는 듯 내뱉은 말들 속에서 오히려 직감적인 영감을 찾아낼 수 있다.
이는 직관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데, 때로는 내가 내뱉은 말이 아니라 누군가가 내게 스치듯 지나가며 생각 없이 한 말이 중요한 영감의 힌트가 되기도 한다. 이처럼 영감은 나에게서 나오기도 하지만 내 주변에서 同時的으로 일어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어떤 궁금한 것에 답을 찾고 있었는데, 마침 모처럼 켠 TV에서 그와 관련된 프로그램을 한다거나, 우연히 펼친 신문기사 속에서 그 답을 찾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또 우리가 새로운 무언가를 공부하게 되었을 때, 평소에는 그것들이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가 갑자기 그런 내용들이 TV에서도, 책에서도, 혹은 주변에서도 동시적으로 그것을 듣게 되기도 한다. 이것을 칼 융은 동시성(同時性)이라고 설명한다.
칼 융이 한 여인을 치료하는데, 그 여인이 하루는 풍뎅이 꿈을 꾼 얘기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때 창문 밖에 풍뎅이가 날아온 것이다. 이러한 ‘의미 있는 우연의 일치’를 동시성이라고 하는데, 이는 사실 더 깊은 차원, 감추어진 秩序에서 보면 우연이 아니다.
물리학자 데이비드 피트는 이러한 융의 同時性이 ‘감추어진 질서’를 뒷받침하는 증거라고 본다. 겉에 드러난 눈에 보이는 세계가 전부가 아니라 그 이면에는 감추어진 질서가 있으며, 그 감추어진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서로 連結되어 있다는 것이다.
바로 그 ‘감추어진 질서’라는 차원에서 나와 남을 통해 영감과 직관이 나오는 것이다. 이처럼 나와 상대방에게서 동시성을 통해 영감과 직관을 피어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기 위해서는 그 위대성과 신비가 나올 수 있도록 마음에 텅~빈 空間을 마련해 두어야 한다. 매 순간 우리는 생각과 온갖 정보, 지식의 홍수 속에 파묻혀 지내기를 거부해야 한다. 너무 많이 생각하는 습관을 내려놓고 내면의 뜰을 ‘제로’라는 空의 상태로 깨끗이 비질 해 둘 필요가 있다. 텅~ 빈 가운데 充滿한 직관적 지혜가 閃光처럼 번뜩이는 것이다.
그렇기에 직관의 소리 없는 소리를 듣고 따르기 위해서는 마음을 비우고 열린 가슴으로 귀를 기울여야 한다. 欲望과 憎惡와 執着과 煩惱와 妄想 등 에고에서 흘러나오는 번잡스런 모든 생각의 흐름을 멈추고 가만히 內面을 지켜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꽃이 피는 소리처럼, 나뭇잎이 속삭이는 소리처럼 들리는 듯 마는 듯 연꽃 향기 같은 소식이 들려 올 것이다.
이제부터는 인생에서 그 어떤 문제가 생기더라도 끊임없이 外部에서 답을 찾으려고 애써오던 習慣的 패턴에서 벗어나 보라. 마음을 텅~비우고 질문을 던져 보라. 그 모든 해답을 宇宙에서는 항상 준비해 두고 있다. 물론 그 답은 다양한 방식으로 온다. 스님의 설법, 책이나 신문, 아이들의 말 한마디, TV 등 외부에서 동시성으로 올 수도 있고, 아니면 문득 내면의 직관을 통해서도 올 수 있다. 그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마음을 닫아걸지 않는다면, 활짝 열린 맑은 精神 안으로 眞理가 문을 두드릴 것이다.
촐싹거리며 생각을 휘둘러 이리 저리 오락가락 하지 말고, 自然스럽게 內面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직관의 소리를 들으라. 에둘러 가던 버릇을 돌이켜 內面으로, 法界로 직접 노크 해 보라. 이미 내 안에 충만하게 갖추어져 있던 답이 단박에 뛰쳐나올 것이다.
BBS 불교방송 라디오 '법상스님의 목탁소리'(평일 07:50~08:00) 방송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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