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생활을 극락처럼 저는 요즘 뒤늦게 세계사와 국사를 다시한번 훑어 보았는데요, 학교 다닐 때는 왜 이 재미있는 역사가 그렇게 지루하고 따분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역사 속의 장면들을 공부할 때마다 그 당시의 상황 속으로 빠져들곤 했는데요, 가만 살펴보면 세계의 역사란 전쟁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전쟁이 많데요. 역사를 공부해 보니, 우리가 그 잔혹한 전쟁시기에 태어나지 않고 이렇게 평화로운 시기에 태어나 행복한 삶을 보낸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감사하고 복된 일인지를 절실히 느끼겠데요. 그런데 어디 그런가요? 오늘날 우리들은 더 많이 벌지 못해 불행히 여기고, 더 편안한 삶을 누리지 못해 괴로워하고, 남보다 더 높은 자리 오르지 못하는 것에 억울해 할지언정, 지금 이 瞬間이라는 歷史的 오늘에 주어진 평화와 기쁨과 풍요를 누리고 만끽하고 느끼지는 못하는 듯 싶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세계 곳곳에서는 가혹한 내전과 가난과 질병 등으로 죽어가는 이들이 하루에 5만 여 명도 넘는다고 합니다. 5살 미만의 아이들만도 하루에 3만 5천명이 죽는다는 통계도 보았습니다. 밥 한 끼니를 먹지 못해 며칠이고 굶다가 죽어가고, 기생충이 득실거리는 썩은 냄새나는 물을 먹고 기생충이 몸 속에서 자라 내장기관을 뚫어 죽어가며, 끊임없는 내전으로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공포 속에서 사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한번은 군 장병 교육을 할 때 이런 이야기를 해 주었지요. 그리고는 물었습니다. 만약에 그런 공포와 결핍, 질병 속에 사는 아프리카의 다 죽어가는 아이들을 한국으로 데리고 와서 한국에서 군생활을 시킨다면 어떻게 느낄까 하고 말이지요? 아마 그들은 군생활을 천상세계나 극락세계보다 더한 행복한 곳이라고 여길 것입니다. 태어나서 난생 처음 원 없이 하루 세 끼 밥을 다 챙겨 먹을 수 있고, 깨끗한 물도 마음껏 먹을 수 있고, 그렇다고 아프리카 같은 40~ 50도를 웃도는 찌는 더위도 아닙니다. 전쟁의 공포도 가난과 질병의 공포도 없습니다. 어찌 이들이 행복해 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이 말은 아프리카에서 죽어가는 아이들 보다는 그래도 군생활이 낫다는 비교 우위 속의 행복을 찾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더 根源的인 意味는, 비교 우위와 열등을 넘어, 人間이란 바깥 外部의 條件 狀況과는 相關없이 언제나 행복해 질 수 있는 행복의 주도권을 가진 精神的 存在라는 사실입니다. 어떤 괴로운 상황이거나, 최악의 조건일지라도, 사실 그것은 결정적인 괴로운 상황이 아니라 내 스스로가 최악의 괴로움이라고 生覺하고 解釋한 상황에 불과한 것입니다. 世上에 미리 정해진 것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 事實을 알았으면, 이제부터는 스스로 행복한 마음을 선택하기로 결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행복은 어떤 완벽한 상황이 갖춰졌을 때 오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마음에서 행복을 누릴 때 바로 그 완벽한 상황이 만들어집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무언가가 必要하고, 어떤 特定한 조건이나 상황 속에서만 행복할 수 있으리라고 믿어왔던 생각 마음은 다 幻想일 뿐입니다. 아무리 힘든 상황에 놓여 있다고 할지라도 그 조건 속에 존재하는 작은 행복의 조각들을 크게 느끼고 누리고 만끽하기 시작할 때, 바로 내가 느끼고 있는 행복들이 더욱 활짝 피어나게 되고, 그 결과 더 많이 마음이 행복할 수밖에 없는 조건 상황들이 갖춰지게 될 것입니다. 이 힘든 일이 끝나고 나면 행복해지겠라고 생각하지 말고, 지금 이 瞬間 그 고통의 한 가운데에서 먼저 마음이 행복해 지세요. 행복한 조건이 생긴 뒤에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먼저 마음이 행복해진 사람에게 우주는 행복의 조건들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삶은 언제나 완전합니다.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세요. BBS 불교방송 라디오 '법상스님의 목탁소리'(평일 07:50~08:00) 뱡송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