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성게 강설 16~17 [1]
14.06.12 13:38
제16구 生死涅槃常共和
생사(生死)와 열반(涅槃)은 항상 함께하고
맑고 고요한 마음,
이에 의해서 시비선악 등의 의지가 발생하게 됩니다. 생각이 일어나는 순간은 언제나 이 행의 요소가 동반되고
있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알 수 없게 됩니다.
염처수행(念處修行)이라고 합니다. 모든 션해를 방하착(放下着)하고 오로지 있는 그대로, 되는 그대로를
지켜보면서 삶의 진싱을 아는 수행입니다.
이 게송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태어남과 죽음도 마찬가집입니다. 모든 衆生과 事物 사람을 如悉히 지켜보면
生成과 消滅이 根本바탕입니다. 생성과 소멸을 如悉히 안다는 것이 별것 아닌 듯하지만 대단히 重要합니다.
差別을 決定하는 永遠한 存在가 있다고 하는 상주론(常住論)과 因果의 理致를 否定하는 잘못된 見解인
단멸론(斷滅論)의 양대 가르침이 풍미하고 있던 때입니다.
길이 없습니다. 이런 生覺을 비우고 있는 그대로의 삶을 보면 因果關係에서 삶과 죽음이기 때문에 삶과 죽음을
꿰뚫고 存在하는 差別된 永遠한 存在도 없고, 因果를 떠나 우연히 存在하는 삶과 죽음도 아닙니다.
나눌 수 없는 因果關係의 同時的 現象으로 常住論과 斷滅論의 사유로는 설명될 수 없습니다.
여기에는 생성과 소멸의 기체를 설정한다든다 인과를 부정한다는 것이 있을 수 없으니,
이런 見解는 단지 生覺이 만들어 내는 虛構로 삶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입니다.
生成과 消滅의 모습만 있는 것이 지금 여기의 우리이며 이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따라서 삶과 죽음에
대해서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등 執着할 理由가 전혀 없습니다.
執着하는 作用인 行의 마음作用에 依해서 잘못 認識된 結果입니다. 그래서 앞서 苦의 發生이 生死에 있지 않고
生死를 色칠하는 業의 活動인 衆生의 마음에 있다고 했습니다.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의 世界에서 살고 있는 것이며 이 때는 生死가 生과 死로 別個의
모습을 갖게 됩니다. 生과 死로 나누어 生을 貪하거나 싫어하며 死를 貪하거나 싫어하게 되는데, 이것은 生死의
眞實한 모습을 알지 못한 어리석은 마음의 作用입니다.
고요한 마음이 되며 이때는 生死를 歪曲하여 常住論이나 斷滅論과 같은 잘못된 見解를 갖지 않게 됩니다.
生이 死를 그대로 담게 되고 死가 生을 그대로 담게 되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生은 死를 原因으로 하고
死는 生을 原因으로 해서 生死가 함께 굴러갈 때 비로소 우리가 있게 되니, 生이 불생생(不生生)이며, 死가 불사사
(不死死)입니다. 여기에서 불생불사(不生不死)가 우리의 眞實한 모습이며 圓融한 일상(一相)임을 보게 됩니다.
이울러 맑고 고요한 마음, 텅~빈 마음으로 生死의 모습을 지켜보게 될 때 執着으로 이루어진 變치 않는
業인 行의 作用이 그침과 아울러 끊암없이 變하는 無常의 自己 本來 흐름을 알게 됩니다. 나아가
無常이 그 極에 이르러 오히려 고요한 부동(不動)의 微妙한 곳임을 보게 되면서 無常과 不動의 끊임 없는
交流, 連續과 不連續이 함께하는 것이 삶의 眞實임을 알게 됩니다. 이때 비로소 동(動)에서 부동(不動)을,
不動에서 動을 自由롭게 넘나들어 動과 不動의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는 中道實相의 面目을 알게됩니다.
因緣 條件에 따라 제 모습을 갖기 때문에, 行에 依한 習慣的 執着에 依해서 同一한 實體로 認識되고 있는
自我가 없음을 確實히 體得하게 됩니다.
그 瞬間 모든 중생과 사물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無常의 動으로서 不動을, 無我의 텅~빈 모습으로서 낱낱을
이루는 法界 인드라網의 相關關係를 體驗하게 됩니다.
生死의 모습 그대로 涅槃寂靜이 됩니다. 이것을 圓成實性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生과 死 個別로 나누어 그 自體로서 生과 死를 設定할 때 遍計所執性의 世界가 나누어 그 自體로서
生과 死를 遍計所執性의 세계가 있게 되고 그 결과 인생은 괴롭다는 말을 하게 됩니다.
그 根本은 無常無我입니다. 이제 수행에 의해서 무상무아를 보게 되는 瞬間 行의 止滅이 이루어지고 모든
執着이 사라집니다. 이 執着이 苦의 根源이므로 行이 止滅되는 瞬間, 苦가 消滅하고 涅槃의 맑고 고요하며
온갖 삶을 서로서로 있게 하는 따뜻한 慈悲의 氣運이 넘쳐나는 世界를 이루게 됩니다.
여기서 보면 生死란 遍計所執性에 議한 苦의 世界도 아니고 涅槃寂靜에 依한 낙(樂)의 世界도 아니고,
緣起關係에서의 中道實相일 뿐입니다. 따라서 열반적정도 그 自體로서 實體를 갖는 것이 아니라
行의 執着과 止滅이라는 意識狀態의 變化와 마음 비움의 轉換만 있을 뿐입니다.
生死 그 自體도 단지 緣起關係로, 生死라는 固定된 實體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遍計所執性으로 因한
生과 死의 分別과 거기에 따른 慾心과 성냄의 對相인 生死도 단지 行의 執着뿐, 實體가 없기 때문에
生死와 涅槃은 아무런 差異도 없습니다. 生死가 中道緣起實相으로 如來法身이며 華嚴의 世界입니다.
生死가 비로자나佛의 모습이니 빈 마음으로 삶을 지켜본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실 것입니다.
스스로가 법계 실상의 비로자나 부처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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