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화실의 향기](23) 정각사 광우스님
“내자신을 성찰하고 마음이 깨끗해지면…”
경향신문 입력2007.11.30 15:59 수정2007.11.30 16:04 "스님들은 하루종일 벽만 바라보고 앉아 무엇을 하는 겁니까? "
이제 막 보통학교(초등학교)를 마친 14살 소녀가 상주 남장사 관음선원 조실스님인 아버지 혜봉스님에게 물었다.
스님이 소녀를 불렀다. "광우야!" "예." "대답하는 그놈이 무엇인지 아느냐?" 소녀가 말문이 막혀 우물쭈물했다.
"스님들은 '예하고 대답하는 그놈이 무엇인가' 찾고 있는 거란다."
'대답하는 그놈이 무엇일까.' 그 말씀이 소녀의 가슴에 말뚝처럼 박혔다. 소녀는 입승 스님의 허락을 받아 선방
끝자리에 앉아서 골똘히 그 생각만 했다. 소녀는 마음의 그릇(근기)이 남달랐던 것 같다. 상급 학교 진학을 위한
공부가 시시하게 여겨졌다. 오다가다 사미승의 염불소리만 듣고도 그것을 다 외워냈다. 소녀는 결국 출가를
결심하고 俗家 이름 그대로 法名을 받아 광우스님이 됐다.
↑ ‘비구니들의 어머니’로 불리는 광우스님은“初發心 그대로 행하고 있는지 항상 마음에 물어보며 산다”면서 “누구나 자기 자신을 성찰해서 마음이 깨끗해지면 고통은 즐거움으로 바뀐다”고 말했다. /이상훈 기자
70년이 된다. 서울 삼선동 낙산자락 주택가에 있는 정각사로 스님을 찾아가는 길. 도심의 길은 꽉꽉 막혔고, 동네에서도 길을 잃고 길 찾아 헤매느라 약속시간에 대지 못했다. 노스님은 독감에 걸려 있었다. 상좌인 정도 스님이 병원 예약을 했다며 재촉했다. 스님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병원행을 미루는 친절을 베풀었다.
"이제는 '대답하는 그놈'을 찾았습니까."
"그런 것은 알음알이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차나 한 잔 들어요." 스님이 선가의 언어인 '끽다거(喫茶去)'
를 말하며 슬몃 미소를 지었다. 스님은 자신을 낮추는 하심과 여유있는 선의 향기로 기자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다.
"활연하게 깨우친 경지는 못되지요. 지금도 날마다 초발심(첫마음)의 그 마음에 물어보면서 삽니다.
'나는 지금 그렇게 하고 있는가' 하고 말이지요."
혜봉스님이 삭발을 앞두고 있는 딸에게 물었다. "성불하는 그날까지 지금 이 마음 그대로 불퇴전할 수 있겠느냐."
"예, 절대 물러서지 않겠습니다." 그때 눈물을 흘리면서 맹세했던 마음을 평생의 거울로 삼고 있다.
스님은 감기에도 불구하고 팔순을 넘긴 나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얼굴이 맑았다. 좌복에 꼿꼿이 가부좌
틀고 앉은 모습은 당당하면서도 편안해 보인다. 똑 부러지는 말투 속에 부드러움이 배어나온다.
스님은 비구니 가운데 첫번째 대학생이기도 했다. 출가 후 남장사 관음선원에 '한국 최초의 비구니 강원'이
세워지면서 근대 비구니계 3대 강백 중 한사람인 수옥스님에게 '화엄경' 등을 배웠다.
강원을 마친 스님은 현대 학문에 갈증을 느껴 대학 입시를 준비했다. "대학 진학은 환속의 지름길"이라며
주변 어른들이 말렸다. 그러나 은사스님이 "앞으로 세상이 바뀔 것이니 대학에 가라"고 허락하고 적극
지원했다. 스물여덟 늦은 나이에 동국대 불교학과에 입학했다. 동국대는 한국전쟁 중 부산 대각사로
옮겨와 있었다. 삭발 염의 차림으로는 학교 생활이 어색했던 때라 남자 옷을 입고 학교에 다녔다.
스님이 평생동안 가장 크게 의지해온 경전은 법화경이다. 출가 직후 혜봉스님이 '법화경해제'를 하루 만에
다 외우라고 했다. '신기하게도' 하루 만에 술술 외울 수 있었다고 한다. 혜봉스님이 시킨 대로 10년 동안
법화경 산림법회(절에서 일정한 기간을 정해 놓고 행하는 법회)를 했다.
"法華經은 부처님 45년 설법 중에 마지막으로 행한 大乘經典의 꽃입니다.
부처님께서 지금까지 가르친 것은 모두 方便이었다 하시면서 法華經을 설했어요."
정각사는 스님이 1958년 세운 도심 사찰이다. 스님은 불교계에서 도심 포교의 선구자로 꼽힌다. 스님은
이곳에서 50년째 '바르게 믿고(正信) 바르게 실천하자(正行)'는 신행불교운동을 펼치고 있다. 신도들을 위한
법회가 따로 없던 시절에 일요법회, 어린이법회, 중·고등학생법회, 청년법회, 일반법회 등을 만들었다. '통신
포교'를 위해 '신행회보'를 월간으로 발행해 배포했다. 신도들과 함께 독송할 수 있도록 법화경을 한글로
번역해 책을 펴내기도 했다.
"불교는 실천의 종교입니다. 법당 불사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인재를 키우는 불사'입니다. 바르게 믿고
바르게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는 71년 뜻이 맞는 비구니들을 모아 '우담바라회'를 만들면서 '비구니 인재 불사'에 뛰어들었다.
우담바라회는 80년 비구니들을 대표하는 전국비구니회로 확대됐다. 5, 6대 전국비구니회장을 맡아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 전국비구니회관 법용사를 세우는 등 조계종단 내 비구니들의 위상을 높이는 데
중심 역할을 했다.
"여성·환경·평화 등의 문제 해결에 여성의 감수성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얼마전까지도 비구와 비구니를
차별하는 팔경법의 관습이 남아 있었지요. 그러나 이제는 비구와 비구니에 대한 차별이 없어요. 모든 걸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비구니 팔경법(八敬法)이란 100세 비구니라도 새로 계를 받은 비구를 보면 일어나 맞고 절해야 한다는
등의 불평등 계율이다. 그러나 지금은 봉건적인 가치인 팔경법의 관습은 거의 사라졌다. 최근들어 종단
행정과 사회활동 등에도 비구니 스님들의 참여가 늘어나고 있다. 지난 10월 광우스님을 포함해 8명의
원로 비구니가 비구의 대종사에 해당하는 '명사' 서품을 받은 것도 비구니 스님들의 위상이 높아졌기에
가능했다.
"부처님도 마지막 법문에서 비구니에게 중생을 교화하는 '대법사'를 맡겼어요. 불교 포교에는 여성의 부드러운
심성이 더 알맞다는 것을 꿰뚫어본 것이지요. 앞으로 더 많은 비구니 인재들이 사회와 종단의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낼 겁니다."
스님은 맑고 담백하면서 소탈한 성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생활이 곧 법일 정도로 올곧은 수행을 해 따르는
이들이 많다. 워낙 부지런하고 검소해서 제자들의 어리광섞인 투정을 사기도 한다. 스님은 자주 '거울'을 말했다.
"항상 깨어 있는 마음으로 늘 자기를 성찰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참된 마음은 거울과 같은 겁니다. 행동할 때마다
그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면서 합당한 것인지 생각해보세요. 그렇게 마음을 쓰는 것도 크나큰 수행입니다."
스님은 '회광반조(廻光返照)를 말하고 있었다. 회광반조는 자기 마음속의 영성(靈性)을 직시하는 선가의
가르침이다. 스님은 이어 법화경 사구게 한 구절을 들려준다.
諸法從本來 常自寂滅相(제법종본래 상자적멸상:모든 법의 실상은 항상 적멸의 상을 따르니)/
佛子行道已 內世得作佛(불자행도이 내세득작불:불자가 이같이 도를 행한다면 오는 세상 부처를 이루리라.)
더 쉽게 풀이하면 '모든 있는 것들이 相 그대로가 부처님 相이니, 佛子가 이 道理를 깨닫기만 하면,
깨달은 그 卽時 부처을 이룬다'는 뜻이다.
"자신에게 엄격하고, 타인에게 자비로울 수 있으면 누구나 참된 부처님 제자입니다. 먼저 자기의 허물을 보고,
상대방을 평가한다면 세상 갈등이 확 줄어들 것입니다. 상대라는 것도 따로 없어요. 너와 나를 떠난 곳에 眞理가
있으니, 그가 곧 나입니다."
스님은 "사바고해에서 살다보면 누구에게나 고락이 따르는 법"이라며 "자기 자신을 성찰해서 마음이 깨끗해지면
어떤 고통도 즐거움으로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스님은 고열로 땀을 흘리면서도 이마를 몇번 짚었을 뿐 기침을
하거나 신음소리도 내지 않았다. 70년 옹골찬 수행의 정진력 때문이었을까. 짧은 시간에도 여운이 긴 노비구니
스님의 '마음의 법문'이 중생의 미망을 깨뜨리고 있었다.
〈김석종 선임기자 sjkim@kyunghyang.com〉
▲광우스님은
1926년 경북 선산에서 났다. 대한제국 정4품 관리로 고종을 보필하다가 을사늑약(1905년) 직후 출가해
치열한 수행을 했던 혜봉선사(1874~1956)가 부친이다. 38년 직지사에서 성문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직지사 선전비구니선원, 동화사 부도암, 남장사 관음선원, 대전 세등선원 등에서 참선 정진했다. 56년
동국대 불교학과 졸업. 운문사승가대학 학장, 목동청소년수련관 관장, 전국비구니회 회장 등을 지냈다.
현재 정각사 주지와 생명나눔실천본부 이사를 맡고 있다. 지난 10월23일 조계종 명사(明師)에 서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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