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상스님의 날마다 해피엔딩

"나`라는 것이 없다면서 무엇이 解脫을 하나요?

장백산-1 2015. 4. 6. 12:19

 

 

 

 

 

 

"나`라는 것이 없다면서 무엇이 解脫을 하나요?

 

 

[질문]

불교에서는 無常과 無我를 말합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항상 하는 것이 없고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고 말하는데,

그렇다면 무엇이 있어서 해탈을 하는건지요?

 

 

[답]
해탈을 하는 '나'도 없습니다.

해탈이라는 뜻은 虛妄한 觀念 生覺으로 지어진 幻想의

'나'에 얽매여 있던 삶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깨어있음이 있을 뿐이지, 깨달은 자는 없다고 말합니다.

 

깨달은 자가 '내가 깨달았다'는 생각 관념에 얽매여 있다면

그것은 아직 '나'라는 自我意識이 남아 있는 것이고,

'나'라는 생각 卽, 我相이 다 없어지지 않은 것이겠지요.

 

다시 말해서 '깨달은 자'가 없다는 뜻

깨달은 자의 肉身이나 存在 自體가 없다는 말이 아니라

스스로 '나라는 생각', 자아의식, 아상에 갇힌 固定된 觀念이 없다는 말이고,

無我와 無常이라는 槪念을 完全히 自覺하고서

固定的인 내가 있다는 實體的 觀念을 비워버렸다는 의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空이나 無我라는 槪念은

 '없다'는 뜻이라기 보다는,  '緣起한다'는 말입니다.

 

즉, 있기는 있는데  그게 固定되고 不變하는 實體로 있는 것이 아니라

因緣에 따라서 꿈처럼 신기루처럼 물거품처럼 그림자처럼 번개처럼

잠시 잠깐 나타나서 있는 것 처럼 보이다 사라질 뿐이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이 세상 모든 것이 無我라는 事實을 바르게 깨닫는 것이 열반입니다.

 

그러니 ‘누가 있어서 열반을 하느냐?’ 하는 질문 자체는 처음부터 오류를 품고 있어요.

열반을 하는 어떤 定해진 固定 不變하는 實體的 存在가 있는 것이 아니라,

열반한 자는  나라고 하는 存在가 固定 不變하는 實體가 없이 단지

因緣에 따라서 생겨난 緣起的 存在라는 事實을 똑바로 깨달은 자를 말합니다.

無我를 올바로 깨달은 자란 말이지요.

그러니 無我를 깨친 자에게 '나'라는 실체적 단어는 없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나’라는 단어를 쓰기보다는

六根(육근), 五蘊(오온)이라는 말을 즐겨 쓰셨습니다.

즉, 열반도 고정되고 불변하는 실체가 아니고, 고정된 무언가도 아닙니다.

열반을 실체시 하는 것은, 진리를 실체시 하는 것과 같습니다.

열반도 진리도 그 자체를 모두 비워버렸을 때 드러납니다.

종교도 종교 그 자체를 몽땅 놓아버렸을 때 드러나는 것입니다.

 

 

 

 

법상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