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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완전하다 안심하라

장백산-1 2015. 5. 2.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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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완전하다 안심하라
2015년 04월 27일 (월) 10:55:50법상 스님 beopbo

삶의 매 순간은 그것 자체로 숭고하고 경이롭고 아름답다. 당신 삶은 언제나 완전하다.

당신은 결코 ‘잘못’을 하거나, ‘죄’를 지을 수 없다. 스스로 그렇다고 여기기 전까지는.

죄의 과보를 결정하는 건 자신의 선택에 달렸을 뿐
지금 이 순간 충실하다면 미래의 두려움도 사라져...


宇宙法界, 淸淨法身佛은 그 누구도 審判하지도 罰하지도 않는다. 審判하고 罰하는 唯一한 存在는 ‘나 自身 스스로의 生覺’일 뿐.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잘못했음에도 불구하고, 罪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能力이 없거나 가난함에도 불구하고, 혹은 매일 술을 퍼 마심에도 불구하고, 아내와 매일 싸움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아름답고 完全하다.

 

우리의 삶에 失敗란 없다. 失敗라고 生覺하는 사람이 있을 뿐 失敗者는 없다. 이 世上에서 眞理라는 이름으로, 어떤 特定한 가르침을 制限시켜 놓고, 이것을 지키지 않으면 地獄에 가거나, 最惡의 果報를 받는다고 이야기 해왔던 그 모든 도그마와 方便을 이제는 놓아버릴 때가 되었다. 方便은 人間의 마음이 自由롭기 위해 必要한 것이지만, 歷史를 이어오며 많은 사람들은 도리어바로 그 方便에 스스로 갇힌 채 方便 뒤에 드넓고도 廣闊한 自由로운 眞理가 있음을 보지 못한다.

法華經’에서는 諸法實相의 理致를 설하고 있다. 諸法實相이란 있는 그대로의 諸法, 卽 現實의 모든 것, 現象이 있는 그대로 참된 實相, 眞實한 本來의 모습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삶의 모든 것이 眞理라는 말이다. 당신이 어떤 行爲를 하든, 당신의 삶은 하나의 崇高한 眞理이다.

붓다(法, Dharma), 眞理는 나를 通해서 그 眞理를 드러낸다. 眞理는 한 송이 꽃을 通해 眞理로 피어난다. 산과 들 꽃한 송이와 당신 나를 빼고 別度의 神이나 붓다가 있다고 生覺하지 말라. 아무리 水準이 낮거나, 돈이 없거나, 계급이 낮거나, 능력이 없거나, 성격이 나쁘거나, 죄를 지은 사람이 있을지라도 그를 업신여기지 말라. 그는 그 어떤 높은 자리에 있는 聖스러운 사람과 티끌 만큼도 다르지 않다. 그는 그 自身의 삶이라는 眞理를 꽃피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眞理는 오직 一切 모든 存在를 完全히 同等하게 사랑하며, 尊貴하게 여기며, 讚歎할 뿐이다.

내가 남들보다 잘난 部分에 대해 認定받기를 願하고 있다면 당신은 이 工夫를 통해 苦痛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런 것은 없다는 事實을 결국 깨닫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나보다 높지 않고, 낮지도 않으며, 더 많이 깨달았거나 덜 깨달은 것도 아니다. 모든 存在는 各者 저마다 온전한 自己 自身만의 眞理의 길을 自己답게 걷고 있는 중이다.

설사 나쁜 짓을 한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은 그 行爲를 통해 삶을 배워나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加害者나 被害者나 모두 아름다은 것이다. 加害者는 가해자의 몫을 통해 깨닫고, 被害者는 피해자의 몫을 통해 깨닫는다. 그 둘은 원한과 복수의 關係가 아닌 서로가 서로를 깨닫게 해주는 아름다운 스승이요, 사랑스런 道伴 關係인 것이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핍박 받음을 通해 무언가 깨달아야 할 것이 있었던 사람, 혹은 被害 받는 것을 通해 業障을 消滅해야 했던 사람이 스스로 願해서 이 世上이라는 演劇놀이 속에서 被害者의 役割을 하게 되었을 뿐이다. 加害者도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양쪽 모두는 저마다 自身의 眞理를 實行하고 있을 뿐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完全히 容恕받고 있다. 물론 스스로의 生覺의 감옥에 갇혀서 스스로를 容恕하지 못하는 경우를 빼고는....

처벌이나, 죄의 果報는 언제나 나 自身이 願했을 때만 온다. 만약 내 內面에서 온전히 그 모든 것을 容恕했고, 그 모든 것이 다 完全했음을 理解하게 된다면, 그래서 온전히 自己 自身을 사랑하고, 理解하고, 容恕하게 된다면 당신은 어떤 果報도 받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業에 대한 果報는 機械的으로 無條件的으로 받는 것이 아니다. 絶對的인 것이 아니다. 우리의 根源은 그 모든 것을 넘어서는 無限한 能力의 存在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더 以上 自己 自身을 抑壓하지 마라. 삶을 두려워하지 마라. 어떻게 잘못되지 않을까 하고 念慮하지 말라. 당신은 完全히 安心해도 좋다. 이 世上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아도 좋다. 죽음 以後를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다. 宇宙森羅萬象萬物의 根源은 波動하는 자비 사랑에너지의 波長으로, 그 波長 속에서 宇宙萬物이 넘실거리며 춤추고 있을 뿐이다. 거기 그곳에는 惡, 두려움, 근심, 걱정, 원죄라는 것 등등 그 어떤 것도 붙을 자리가 없다.

  
▲ 법상 스님

지금까지 이 世上, 歷史, 宗敎. 수도 없이 많은 各種의 學校에서 가르쳐 온 모든 것을 넘어 설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모든 것을 뛰어넘어 自己 自身에게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지금 여기 이 瞬間 이 자리라는 온전한 存在함, 그저 그냥 ‘있음’으로써 每 瞬間에 있는 것이다. 오로지 每 瞬間에 幸福하게 存在하라. 完全히 安心한 채, 그 무엇도 두려워할 것 없이, 每 瞬間 自己 自身으로 存在하기만 하라. 바로 그 때 모든 것은 제자리를 찾고, 모든 것은 언제나 完全했다는 事實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1292호 / 2015년 4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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