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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이 만드는 세상은 거짓

장백산-1 2015. 6. 4. 01:29

 

 

 

15. 06. 02 - 신념이 만드는 세상은 거짓    

 


 

신념이 만드는 세상은 거짓

 

사람은 처음 태어나 아기 때부터 삶에서 수많은 經驗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經驗은 아무런 是非 分別도

없고, 다만 經驗 그 自體로써 받아들여진다. 어린애에게 있어 모든 經驗은 좋고 싫은 것도 아니고, 옳고

그른 것도 아니다. 아무런 分別없이 경험을 있는 그대로 다만 느끼기만 할 뿐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런 어린 아이도 조금씩 經驗에 是非와 分別을 붙이게 된다. 그런 是非 分別은

곧 信念을 만들어 낸다. 經驗을 통해 信念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信念은 또 다른

經驗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 經驗은 또 다시 그 信念을 뒷받침해주고 증명해 주게 된다. 그럴수록 그

信念은 보다 確固해지고 그 信念에 점점 더 執着하게 된다. 그런 方法으로 우린 온갖 信念을 늘려나간다.

信念들이 늘어갈수록 혹자는 그것을 知識이라고도 하고, 價値觀이라고도 함으로써 그 신념이 올바른 것인

것처럼 錯覺하게 만들고 信念 거기에 固執하게 만든다.

 

요즘 마음工夫와 冥想이 사람들의 키워드가 되면서부터 온갖 種類의 冥想 프로그램 들이 登場하고 있는데

어떤 곳에서는 바로 이 점을 惡用하고 있기도 하다. 信念이 世上을 만들어낸다는 事實 바로 이 하나의 事實

만을 가지고 그 信念을 바꾸도록 온갖 方法으로 이끈다. 信念이 바뀌면 經驗이 바뀐다는 事實, 믿는대로

이루어진다는 사실, 그 하나의 사실을 가지고 眞理 운운하면서 信念 바꾸는 프로그램을 수많은 돈을 내고

참가하도록 독촉한다.

 

그러나 아로한 프로그램에서 크게 看過하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信念이 만들어내는 經驗은 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부처님께서도 마음이 世上을 만들어낸다고 말씀하셨지만, 그렇게 마음에 의해서 만들어진 世上은

거짓이라고 하셨다. 꿈이고 幻想이며 신기루이고, 물거품 그림자와 같은 空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기 때문

에 마음 以前의 자리를 깨닫도록 이끄시지, 마음을 가지고 是非 分別을 하라고 말씀하지는 않으셨다.

 

信念을 또 다른 信念으로 바꾸거나 덮어버림으로써 問題를 解決하도록 하지 않으시고, 信念 그 自體를

비워버릴 수 있도록 이끄셨다. 그 어떤 經驗이든 그 經驗에 信念을 계속 부여하게 되면 그 때부터 그

經驗은 어느 한 쪽으로 치우쳐진 거짓의 經驗이 되고 만다. 信念을 가지면 이 모든 眞理를 經驗하는 것이

그 信念으로 인해 삐뚤어지고 歪曲된다.

 

물론 부정적인 신념을 긍정적인 신념으로 바꾸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것도 本質은 아니란 말이다.

그런 수련을 통해 存在의 本質, 實相을 깨닫게 될 수는 없다. 生覺을 다른 生覺으로 덮더라도 그것은 여전히

생각의 굴레를 벗지 못하는 것이다. 다만 生覺을, 信念을 놓아버렸을 때만 信念, 生覺 以前의 깊은 本質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부정과 긍정이라는 槪念도 내 생각 스스로 만들어 낸 신념일 뿐이다. 과연 절대적

긍정과 절대적 부정이 있기나 한가. 그것도 단지 내 생각과 판단 속에서의 긍정과 부정일 뿐이다.

 

바람이 불고, 새가 하늘을 날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것, 내 앞에 펼쳐지는 一切의 모든 經驗은 分別하지

않고, 信念으로 投影하지 않으면 있는 그대로의 眞理를 經驗하게 된다. 이미 宇宙法界, 森羅萬象 그 自體는

있는 그대로 佛性 神性이고, 있는 그대로 온전한 부처님의 숨결이요 하느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온전한 眞理는 항상 우리 앞에 늘 있는 그대로 그렇게 나투고 있다. 다만 分別하지 않고, 그 어떤 치우친

信念이나 固執 없이 생각의 굴레에 갇히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만 하면 지금 여기

이 자리에서 있는 그대로의 眞理를 經驗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지금 여기 이 자리에서 있는

그대로의 眞理를 經驗하지 못하는 理由는 세상을 분별하고 나누며 자신 안에 信念이라는 틀을 만들고

그 생각의 틀에 걸러서 세상을 보기 때문인 것이다. 分別하지 말고 信念을 덮어씌우지 말고 다만 모든

分別을 멈추고(止) 순수하게 바라보기만(觀) 하면 本來의 平和가 찾아온다. 信念이나 分別  以前의 딱

끊어진 本來의 참됨과 마주할 수 있다.

 

BBS 불교방송 라디오 '법상스님의 목탁소리'(평일 07:50~08:00)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