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06. 04 - 부처님께 내맡기라
부처님께 내맡기라
때때로 그냥 가만히 앉아있거나 숲길을 걸으면서 마음의 變化를 가만히 살펴보곤 한다. 그러다 보면
이놈의 마음이란 것이 참으로 虛妄한 것이라는 사실을 금방 알아챌 수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을
가지고 기뻐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면서 찰라찰라 변화하는 온갖 상황에 따라 울고 웃는 것이 보인다.
원숭이처럼 변덕스런 그런 마음을 붙잡고 世上을 살다보니 世上을 사는 일이 만만치 않음은 어쩌면
당연한 일.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이렇듯 팥죽 끊는 마음을 붙잡고 세상을 산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온갖
變化들, 이를테면 답답함, 슬픔, 외로움, 괴로움, 화, 원망, 욕망, 즐거움, 기쁨, 행복감 등 이러한 모든
感情의 變化들을 固定不變하는 '내 마음'인 줄 알고 그 마음에 휘둘려서 웃고 울면서 살고 있다.
그런데 가만히 마음을 살펴보면 그런 변덕스러운 마음에 속박당해서 울고 웃는 삶 그게 얼마나 어리석은
삶인가 하는 점이 금방 드러난다. 하루에도 수십 번 수백 번씩 아니 매순간 변화하는 주변 상황에 따라서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고, 좋았다가도 금방 싫어지고, 괴로웠다가도 금방 즐거워지는 변덕스런 그 마음이
얼마나 虛妄되고 空虛한 것인가. 그렇다고 세상 사는 일에 마음을 쓰지 않고 살기란 또 어려운 일이니, 이
마음이란 녀석을 붙잡기도 그렇다고 뿌리치지도 못할 일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이 마음을 잘 다스릴 수
있겠는가.
華嚴經 普賢行願品에 보면 보현보살의 열가지 행원 중 세 번째로 '광수공양廣修供養'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그 解答을 찾을 수 있다. 對相境界에 휘둘려서 웃고 우는 마음을 자꾸만 '내 마음'이라고
믿고 여겨서 '내 것'으로 붙잡아서는 안 된다. 그렇게 대상경계 따라서 휘둘리고 變化하는 마음이
어찌 내 마음일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내 마음'이 아니라고 뿌리칠 수도 없으니 가장 밝은 答은
그 마음을 供養 올리는 일이다.
부처님께 마음을 供養 올리고 나서는 마음을 부처님께 완전히 내맡겨야 한다. 마음을 공양드렸으면
그 마음은 부처님 것이지 어찌 내 것일 수 있겠는가. 내 마음이 아닌데 자꾸 이렇다 저렇다 是非 걸
일도 없고, 問題 삼을 일도 아닌 것이다. 다만 완전히 부처님께 마음을 供養올리고 내맡기고 살면 된다.
마음을 供養올리고, 내 마음으로 붙잡지 않고 一切를 내 안의 自性부처님께 내맡기고 바치는 것, 그 삶
이야말로 얼마나 쉽고 직접적인 생활속에서의 참된 修行인가.
내게는 濁한 마음이고 利己的인 마음일지라도 法身부처님, 그 淸淨하고 밝은 자리에 가면 모든 마음이
부처님 마음으로 바뀐다. 法身佛의 자리는 어떤 分別하는 마음도 是非하는 마음도 없기 때문에 좋고 나쁜
마음이 없다. 그러니 부처님, 宇宙法界에 마음을 供養 올리기만 하면 좋고 나쁜 마음도 다 녹아내린다.
마치 온갖 잡동사니 古鐵들이 거대한 용광로에 들어가면 '하나'의 쇳물로 녹아내리듯.
모든 마음을 부처님께 내맡기고 供養 올리는 마음은 우리의 삶을 걸림 없고 자유롭게 해 준다. 부처님 卽,
이 宇宙法界, 法身佛은 오직 宇宙萬物을 사랑과 자비로 보살필 뿐이다. 우주법계의 사랑과 자비 안에 모든
것을 내던지고 맡기라. 한 치도 '나'라는 生覺을 일으켜 세우지 말라.
이 말은 宇宙法界라는 부처님을 그 어떤 實體化, 絶對化함으로써 그 부처님들을 어떤 人格으로 規定지으라는
말이 아니다. 부처님, 우주법계는 말로 表現할 수 없지만, 이를테면 나라는 存在와 이 宇宙의 本質的인 그 무엇
을 말한다. 물론 그 무엇을 佛性, 自性, 참나, 本來面目, 如來, 法性, 眞心등등의 명칭으로도 表現하지만 그런
表現도 그 무엇이 무엇인지를 알려줄 수는 없다. 나와 우주의 本質 根源인 그 무엇은 어떤 存在, 形相으로 規定
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卽, 부처, 여래, 본래면목, 자성, 불성, 참나, 법성, 진심, 우주법계 등등의 그
어떤 이름에도 어떠한 執着을 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말이다.
그렇게 宇宙法界, 本來자리에 모든 것을 내맡겼을 때 사사로운 나는 사라지고 온 宇宙森羅萬象萬物의 本質로
써의 그 무엇만이 眞理의 運行에 合當한 자비와 사랑의 일을 행하신다. 그러니 사적인 나라는 마음을 내세우고
아웅다웅 살아갈 것이 아니라, 우주만물의 根源인 本來面目 그 本來자리에 모든 것을 다 내맡기고 자유롭게
휘적휘적 대장부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BBS 불교방송 라디오 '법상스님의 목탁소리'(평일 07:50~08:00)중에서
'법상스님의 날마다 해피엔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상만사는 언제 어디서나 형통중이다 (0) | 2015.06.09 |
---|---|
삶의 문제를 푸는 방식 (0) | 2015.06.08 |
그냥 있으라,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 있는 이대로... (0) | 2015.06.04 |
신념이 만드는 세상은 거짓 (0) | 2015.06.04 |
참된 행복과 가난 (0) | 2015.06.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