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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는 언제 어디서나 형통중이다

장백산-1 2015. 6. 9. 15:32

 

 

 

 

 

15. 06. 08 - 세상만사는 형통중이다    

 


世上萬事는 亨通중이다 

 

세상만사는 지금 여기 이 자리 이 순간 이렇게 있는 그대로 언제나처럼 그렇게 있어 왔다.

특별히 애쓰지 않더라도, 엄청난 노력을 하지 않더라도, 신경을 엄청나게 쓰지 않더라도 

나를 포함한 세상만사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저절로 스스로 완벽하게 풀려나가고 있다.

절에 가서 교회당에 가서 세상사 만사형통을 祈禱하지만, 사실 세상만사가 형통되지 않았던

적은 단 한 순간도 없었고 지금도 다음에도 없다.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 있는 그대로 이렇게 세상만사는 저절로 완벽하게 흐르고 있지 않은가.

보잘 것 없고 아무것도 아닌 바로 눈 앞에 있는 모양도 없는 텅~빈 바탕 하나의 성품,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 있는 그대로가 자연스럽게 저절로 스스로 완벽하게 흐르고 있다.

 

봄이 오면 꽃은 저절로 피고, 여름이 오면 녹음이 저절로 우거지며, 가을이면 저절로 열매를 맺고,

겨울이면 저절로 휴식의 시간을 갖는다. 우리가 전혀 애쓰지 않더라도  세상만사는 저절로 저절로 

스스로 알아서 자연스럽게 지금 여기 이 자리 있는 이대로 그렇게 흐르고 있다. 우리네 삶 또한 이와

마찬가지다. 배고프면 저절로 먹을 것을 찾고, 목이 마르면 저절로 물을 찾는다. 졸리우면 저절로

잠이들고, 오래 잠을 자다 보면 누가 깨우지 않더라도 저절로 잠에서 깬다. 오래 걷게 되면 저절로

쉬고 싶어지고, 또 오랫동안 쉬다 보면 저절로 다시 무언가 할 일을 찾게된다.

 

누군가가 공격해 오면 저절로 방어하게 되고, 비가 오면 저절로 비를 피하며, 심심하면 사람들과 저절로

관계를 맺는다. 이렇게 세상만사는 스스로 저절로 그냥그냥 이루어진다. 우리들이 전혀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저절로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처럼 세상 모든 일들, 또 나의 삶, 모든 일들도  萬事亨通하지 않는  것이 없다. 우리는 세상만사가

형통이 되기를 전혀 조금도 기도하고 바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세상 모든 일은 언제나 어디서나

만사형통 중이다. 그러니 그 어떤 무엇도 특별하게 바랄 필요나 이유가 하나도 없는 것이다.

 

다만 사람들이 마음에서 생각 분별 망상 번뇌 분별심을 일으켜, 이건 이렇게 되어야 하고 저건 저렇게

되어야 한다고  고정 짓고, 특정한 생각의 방식을 바라는 마음을 가지면서부터 그런 마음에서 어긋나는

세상 일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일 뿐이다. 이렇게 특정한 사고방식을 바라게 되면, 그런 생각의 방식과

다른 생각의 방식으로  세상 일이 일어날 때 그 일이 잘못된 것이라고 여기게 된다.  세상만사 그대로

내버려두면 스스로 알아서 자연으로 만사형통으로 잘 굴러가고 흘러가는데 인간들의 알량한 생각 망상

분별로 참견하니까 긁어 부스럼 만드는 꼴이 되고, 그 꼴을 원망하고 자책하고 후회하고  괜히 아무

잘못도 없는 남을 탓하는 것이다.

 

그래놓고는 세상만사 내 마음대로 안 된다고 여기고, 하는 일마다 실패라고 여기는 것이다.

만사형통이 안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만사가 형통이 안된다고 여기는 그 마음은 어디에서

시작되었나?  그것은 내 스스로 세상만사가 이렇게 저렇게 되어야 한다고 고정된 생각을 짓기

시작하면서부터 만사형통은 어긋나기 시작된 것일 뿐이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정작 만사형통이 아니라, 나만이 원하는 特定된 思考方式으로 세상 일이 이루어

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眞正한 萬事亨通은 ‘내 사고방식대로’의 萬事亨通이 아니라, 세상만사가 自然의

方式 그대로, 宇宙의 方式 그대로,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러운 우주자연의

흐름을 타고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우주법계의 모든 일이며, 우리에게 주어진 삶, 인생,

현실, 현상세계 또한 이미 그렇게 우주자연의 흐름을 타고 저절로 저절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일러 無爲自然이라 한다.

 

다만 사람들은 자신의 비좁은 見解, 고정된 생각의 틀 속에 갇혀서 이 일은 이렇게 이루어져야 하고,

얼마 만큼만 이루어져야 하며, 그 일이 정확히 언제쯤 이루어져야 한다는 式으로 온갖 條件을 붙인다.

이런 식으로 일이 되어지는 것이 나 자신에게 진정한 도움이 되고 이익이 된다고 확실히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願하는 나만의 사고방식이 언제나 진정으로 나 자신에게 좋은 사고방식일까?

 

과거 어느 때는 내 사고방식대로 일이 되기를 바랬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일이 그렇게 되지 않아서

안도의 숨을 쉬고 정말 다행이라고 여겼던 적은 없었는가? 그 때는 다 亡했다고 여겼는데 지나고 나서

보니 오히려 참 잘된 일들도 많다. 그 사람과 因緣 맺기가 정말 싫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참 좋은 사람

이었던 적도 많다. 이처럼 우리는 내가 좋아하는 나만의 특정한 사고방식을 고집하며, 그것만이 나에게

이익이 될거라고 굳게 믿고 있지만, 이 宇宙法界는 내가 미쳐 보지 못하는 더 넓고 깊은 전체적이고

전방위적인 모든 영역을 살펴보고  세상만사, 현실, 현상세계, 삶을 운행하면서 흘러가게 하고 있다.

 

이 우주법계는 무량하게 넓고 깊은 지혜로써 다차원적이고 전방위적으로 나를 포함한 세상만물을 

진정으로 돕기 위한 일들만을 매 순간순간 찰라찰라 한 시도 쉼없이 만사형통으로 이루어내고 있다.

사실이 이렇기 때문에 내가 할 일이란 아무 것도 없다. 그저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 있을 뿐,

그냥 현존할 뿐.  세상만사는 그냥 그저 저절로 언제나 형통하게 흐르고 있음을 깨달아서 대자연의

흐름에 우주법계의 흐름에 나를 同乘(동승)시켜서 함께 흐르는 것이 내가 할 일의 전부다.

 

세상은 언제나 만사형통으로 늘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 이렇게 있으면서 흐르고 있다. 이렇게 이 세상

모든 것들은 이미 완전하게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 주어져 있다. 그러니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

그저 그냥 그대로 있으라. 이것을 진리, 깨달음, 본래면목, 참나, 본성본래, 부처, 하느님, 도 등등으로

이름지어 부르는 것이다.

 

BBS 불교방송 라디오 '법상스님의 목탁소리'(평일 07:50~08:00)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