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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에서 벗어나는 중도적 방법 -2

장백산-1 2015. 6. 12. 13:15

 

 

 

 

 

15. 06. 10 - 중독에서 벗어나는 中道的 방법    

 

 

 

중독에서 벗어나는 중도적 방법

 

 

어제는 우리를 중독시키는 것들에 대해 싸워 이기려 해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중독된 채로 쩔어 살아도

안 된다는 것을 얘기했다. 중독적인 대상을 취하려 하거나 거부하려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면 중독적인

것을 어떻게 다루면 좋을까?

 

담배나 술이나 약물이 거기에 있다는 事實을 그저 認定하고 받아들여 보면 어떨까?

좋아해서 구하고 취하려고 애쓰지도 말고, 싫어해서 거부하고 싸워 없애려고도 하지 말고

중독의 대상 그것들이 그냥 거기에 있음을 認定하고 그것들을 바라보는 것이다.

 

이 中道的인 方法은 전혀 폭력적이지 않은 慈悲의 방식이다. 참된 慈悲란 무엇일까?

참된 자비는 둘 중에 어느 하나만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둘로 나누지 않음으로써

나뉘지 않은 全部를 平等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또한 이것은 둘로 나누지 않는 불이(不二)의 방식이고,

좋아하거나 싫어하지 않고, 취하거나 버리지 않는 방식이다. 그 구체적인 방법이 바로 있는 그대로를

認定하고 받아들이며 다만 있는 그대로를 바라봐 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받아들임’과 ‘알아차림’이라는

놀라운 鍊金術(연금술)이다.

 

담배를 피우고 싶은 마음이 올라올 때 그 마음을 없애려고 싸우거나, 그 마음에 현혹되어 끌려가는 대신,

담배 피우고 싶은 마음을 아무런 판단 없이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는 것이다. 약물 중독된 自身을

심판하려 들지 않는 것이다. 나는 다만 술 담배 약물에 중독되었고, 중독된 사람일 뿐 ‘나쁜’ 사람인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렇게 박아아들이 인정하고 바라봐주는 것은 곧 나 自身에 대한 참된 容恕이며 참회고,

나 自身을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이기도 하다.

 

중독을 따라가도 괴롭고, 중독을 거부해도 괴롭다. 이 두 가지의 대응방식 대신 중독이 거기에 있음을,

내가 중독되어 있음을 있는 그대로 認定하고 受容하고, 좋다거나 싫다거나 하는 그 어떤 判斷도 하지 않고,

심판하지도 말고, 그저 받아들이고 觀察해 보라.

 

있는 그대로의 중독된 나를 다독거려 주고, 괜찮다고 말해 주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을 사랑한다고

속삭여 주라. 담배 피우고 싶은 내가 기꺼이 되어 주는 것이다. 잠시 담배 피우고 싶은 그 마음과 함께 있어

주는 것이다. 그 욕구를  판단하지 않고 가만히 바라봐 주는 것이다.

 

이것은 重毒이라는 病을 치료하는 가벼운 약방문 같은 것이 아니다. 전에는 중독을 병이라고 생각하고

적이라고 생각하고,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중독을 치료해서 없애버릴 것으로 바라보았다면, 이 중도적

사고방식은 중독이라는 현재 상황을 전혀 ‘문제상황’으로 낙인 찍지 않음으로써 획기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는 방식이다. 중독을 보는 사고방식 자체가 근원에서부터 달라지는 것이다. 이것은 방법이 아닌

방법이며, 애쓰고 노력하는 것이 아닌 무위(無爲)의 방법이다.

 

이 중도적 방식은 전혀 애쓸 필요가 없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노력하지 말고, 중독이나 중독된 자신을 그저

있는 그대로를 認定하고 判斷하지 않은 채로 그대로 받아들여서 그것과 함께 있어주는 것이다. 취하려 해도

괴롭고, 버리려 해도 괴롭다. 양 쪽 다 힘이 든다. 그러나 그 어느 한쪽에 힘을 부여하지 않고 그저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現實 그 自體로써 存在해 주는데는 어떤 힘도 들지 않는다. 힘은 들지 않지만, 根源에서는

그렇기에 더욱 强力한 無爲의 힘이 저절로 상황을 이끌어 간다.

 

이처럼 ‘받아들임’은 무기력이나 나약한 수동적 대응방식이 아닌 진정한 本來的 힘을 끌어오는 능동적이고도

주도적인 삶의 자세다. 우리는 참된 받아들임을 통해 中道的이고 自悲로운 無爲自然의 根源的 힘에 다가서게

되는 것이다.

 

BBS 불교방송 라디오 '법상스님의 목탁소리'(평일 07:50~08:00)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