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06. 12 - 온 우주는 '하나'다
온 우주는 ‘하나’뿐이다
어제 이야기한 것처럼 이 宇宙 全部가 오로지 ‘하나’일 뿐이라면, 그 누구와 싸울 것이고, 그 누구와 다툴
것인가? 너와 내가 둘이 아닌 '하나'라면 相對方에게 行하는 것이 곧 나 自身에게 行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相對方을 괴롭히는 것은 곧 나 自身을 괴롭히는 것이다. 상대방을 돕는 것은 곧 나 자신을 돕는
것이다. 너와 내가 事實은 둘이 아닌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둘이 아닌 하나, 不二法의 자리, 모양도 형체도 없는 텅~빈 바탕 공간,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서 보면 모든 것이 無爭三昧인 것이다. 다툴 것 없는 삼매, 卽 보는 者, 보이는 對相境界, 보는 行爲가
바로 그 '하나'다 三位一體다, 萬法歸一이다. 그 누구와도 다투지 않고, 그 누구와도 싸우지 않으며, 그 누구의
것도 욕심내지 않고, 그 누구도 질투하지 않고, 원망하지 않는다. 내가 미워하고 사랑하며, 욕하고 질투하던
그 모든 對相이 사실은 둘로 分離되지 않은 하나, 自身이기 때문이다.
너와 내가 참된 '하나'이며, 이 宇宙萬物 全切가 둘이 아닌 '하나'일 뿐이라면, 무엇을 欲心내고 執着할
것인가? 전혀 무언가를 가지려고, 소유하려고 執着할 必要와 理由가 없어진다. 모든 것이 바로 나 自身
으로써 오직 '하나일 뿐'이라면 전혀 不足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소유하려는 것들이 바로 나와 다르지
않은 '하나'인데 무엇을 소유하려 애쓸 것인가?
所有라는 觀念은 我와 我所, 卽 ‘나’와 ‘내 것’이 둘로 分離되어 나누어져 있어야만 可能한 槪念이다.
나와 내것 너와 네것모두가 둘이 아닌 '하나뿐'인데 무엇을 더 많이 소유할 것이고, 무엇이 부족할 것인가?
이 세상 모든 것이 오직 '하나일 뿐'일 때는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고, 그 어떤 것을 소유함으로 인해, 혹은
무언가를 얻는 것을 통해 완전해질 하등의 理由가 없어지는 것이다. 名譽, 權力, 物質, 돈, 所有物, 사랑,
사람 등등 그 모두가 全部 나 아님이 없는 둘이 아닌 存在, '하나'일 뿐인데 무엇을 갖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
그것이 바로 나이니까 따로 나를 얻으려 할 것이 없는 것이다.
이처럼 그 宇宙全切 ‘하나’를 ‘나’라고 표현한다면, 이 宇宙에는 단 하나의 티끌 조차도 ‘나’ 아닌 것이 없다.
그러니 그 무엇도 얻으려고 남을 짓밟고 굳이 애쓸 필요가 없다. 지금 여기 이대로 完全하며, 充滿할 뿐이다.
온 宇宙萬物 全切가 둘로 분리된 것이 아닌 참된 '하나'일 뿐이기에, 이 宇宙에는 전혀 不足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到達해야 할 어떤 目的地도 없다. 그 目的地, 그 자리가 바로 지금 여기 이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欲望의 열차를 올라타서 到着하려고 애써왔던 最終 目的地가 바로 지금 여기
이 자리, 아무 것도 아니고 보잘 것 없는 모양도 形體도 없는 텅~빈 바탕 空間 意識, 이 자리다.
우리는 단 한 발자국도 옮길 필요가 없다. 眞理를 찾아서 깨달음을 찾아서 히말라야며, 온 宇宙를 다 찾아
헤매고 다닐지라도 事實은 단 한 발짝도 옮기지 않은 것이다. 언제나 지금 여기 이 자리 그 자리에 있을
뿐이다. 이 자리를 禪에서는 立處皆眞 , 當處라고 表現한다. 어딜 가나 지금 여기 이 자리일 뿐인 것이다.
바로 지금 여기 이 자리, 모양 형체도 없는 텅~빈 바탕 空間 意識, 本來面目, 當處뿐인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본래면목, 完全한 完成의 자리, 부처의 자리에 있을 수밖에 없다. 단 한 瞬間도 그 자리를
벗어난 적이 없다. 내 生覺, 分別心, 妄想이 그 자리에 없다고 錯覺하고, 둘로 나뉘어 分離되어 있다고
分別했을 뿐이지, 그 妄想 分別心 生覺만 없다면, 우리는 단 한 瞬間도 완전하지 않은 때가 없다. 부처가
아닌 적이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꿈 속에서나 기도 중에 부처님을 親見했다거나, 오대산에서 지장보살을 친견했다거나, 부처님
聖地에서 加被를 입었거나, 寂滅寶宮에 가서 眞身사리를 친견했다고 할지라도 事實은 내가 부처를 본 것이
아니라, 내가 나 自身을 마주한 것일 뿐이다. 친견한 부처 또한 나 自身이며, 입은 가피가 따로 없고, 친견한
진신사리 또한 언제나 지금 내 안에 오롯이 있었던 것일 뿐이다. 새로이 發見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언제나 지금 여기 이 자리 있는 것, 이것 모양도 없는 텅~빈 바탕 공간 의식, 이것만이 계속 있을 뿐이다.
바로 이 하나의 眞實, 하나의 마음이 있을 뿐이다. 이것을 大乘起信論에서는 ‘一切境界 本來一心’이라고도
표현했고, 法華經에서는 一乘法이라 했다. 이 '하나'의 자리에서는 그 어떤 分離 分別도 붙을 자리가 없는
것이다. 이 하나의 자리에서 모든 분리 분별을 녹아내리게 하라.
BBS 불교방송 라디오 '법상스님의 목탁소리'(평일 07:50~08:00)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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