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佛未生前 凝然一相圓 釋迦猶未會 迦葉豈能傳 -금강경 오가해-
고불미생전 응연일상원 석가유미회 가섭기능전
옛 부처 나기도 전에 역력하게 둥근 모양 하나 뚜렷하였네.
석가도 오히려 알지 못했거늘 가섭이 어찌 전할 수 있었으랴.
佛法은 마음의 法이다. 佛祖들은 마음의 法을 깨달아서 무수한 가르침을 전개하였다.
禪이 있고 敎가 있고 律이 있고, 戒定慧 三學이 있다. 이것을 방편으로 펼치면
팔만 가지 經이지만 거두어드리면 한 마음일 뿐이다. 이 한 마음, 진리, 깨달음의
道理는 석가모니와 같은 세상의 모든 성현들이 만들어 낸 것이 결코 아니다.
이 한 마음, 진리, 깨달음이라는 개념의 본질은 누가 만들어 내고 없애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원래부터 本來부터 스스로 저절로 있어온 것이다. 한 마음은 最初의 부처라는 위음왕(威音王)부처
以前에도 이미 있었고 이 우주가 생겨나기 이전에도 이미 있었다. 확실하고 뚜렷하게 있었다. 그
한 마음을 석가도 아마 알지 못하리라. 왜냐하면 한 마음은 안다 모른다 할 수 있는 存在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 마음이라고 부르는 이름 개념의 본질은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 이 보잘것 없고
아무것도 아닌 모양도 형체도 없는 텅~빈 바탕 공간 하나의 의식이랄 수 있다. 이 표현도 어디까지나
비유적인 표현일 뿐 어떤 對相으로써의 한 마음, 진리, 깨달음을 나타내 보일 수 있는 표현은 아니다.
법성게에서 말하는 것 처럼 法性圓融無二相 諸法不動本來寂 無名無相絶一切 證知所知非餘境이다.
한 마음, 법성이란 시작도 끝도 없이 서로 거침없이 통해서 분리 분별이 없기 때문에 두 가지의 모양이
없다. 이 세상에 생겨난 모든 것들은 본래부터 움직임이 없고 고요하여 있는 그대로 여여하게 있을 뿐이다.
이름과 모양 생각 개념 관념이 일체 끊어진 자리이기 때문에 체험으로 알 수 있을 뿐 다른 도리가 없다.
또한 법화경에서는 諸法從本來 常自寂滅相 佛子行道已 來世得作佛이라고 말한다.
이 세상에 생겨난 모든 것들은 본래부터 항상 스스로 움직임이 없고 고요한 모습이다.
이 한 마음, 법신불의 현현인 우리들이 이러한 도리를 알고 행하여 마치면 곧바로 부처이니라.
이 세상 모든 것, 우주삼라만상만물은 이미 있는 그대로 부처인 것이다. 이것을 법화경에서는
一乘, 一佛乘이라고 말한다.
또한 채근담인가에서는 我有一卷經 不因紙墨成 展開無一字 常放大光明이라고 표현한다.
나에게 한 권의 경전이 있는데 종이와 먹으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펼쳐서 봐도 한 글자도
없지만 그 경은 항상 한량없는 무량한 광명을 비추고 있다.
항상 한량없는 무량한 밝은 빛을 비추고 있는 이 經은 무엇일까?
한 마음, 일승, 진리, 깨달음이라는 이름으로 일컬어지고 있는 그것이다.
한 마음은 생각 분별 개념 관념으로는 결코 알 수 없는 그 너머의 일이기 때문에 말이나 글
생각 분별 개념 관념의 표현으로는 절대로 전해줄 수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석가도 모르는
일을 석가의 제자인 가섭에게 한 마음을 어떻게 전할 수 있었겠는가. 석가세존이 세 곳에서
마음을 전했다는 삼처전심(三處傳心)의 일도 모두 方便의 허망한 소리일 뿐이다.
事實은 이 말이 眞實이다. 한 마음은 결코 傳할 수 있는 무엇도 아니며 傳해지는 무엇도 아니다.
萬古에 眞實한 名言이다. 이 말은 格을 벗어난 格 밖의 지극히 고차원적인 소리 같이 들리지만
조용히 사유해보면 모를 일도 아닐 수 있는 것이다.
'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 마음이 곧 부처임을 알지 못하면 (0) | 2015.06.19 |
---|---|
변하는 마음, 변하지 않는 본래마음 (0) | 2015.06.19 |
마음에 속지 않으려면 / 숭산 스님 (0) | 2015.06.19 |
有와 無 (0) | 2015.06.17 |
눈 맞춤의 힘 (0) | 2015.06.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