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

장백산-1 2015. 6. 21. 02:56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   

2014.07.09. 07:42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

 
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 무엇일까요? 아마도 그것은 우리가 일상 속에서 평상심(平常心)을 유지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인생에 있어서 매일매일 이루어지는 일상의 생활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을 것

입니다. 깊이 생각해 보면 오늘 벌어지는 일상보다 귀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오늘을 쉽게 생각하거나

방종(放縱)하는 일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지요.

 
이와 같이 인간의 일상생활을 모두 불도(佛道)의 전개(展開)로 보려는 思想이 있습니다. ‘평상심이 곧 道’

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마조도일(馬祖道一 : 709∼788)의 법어(法語)에 나옵니다. 나아가 마조의

제자 남전보원(南泉普願 : 748∼834)이 ‘평상심이 바로 道’라며 스승의 말을 전수한데서 꽃을 피웠죠.

 
비슷한 말로 ‘착의끽반 아시송뇨(着衣喫飯 屙屎送尿)’라는 말도 있습니다. 道는 어려운 것이 아니고

의복을 걸쳐 입고, 밥 먹고, 대소변을 보는, 일상생활의 행위에 道가 있다는 말이죠. 도(道)가 일상생활에

있다는 생각은 옛 부터 있어 왔습니다. 그러나 그일을 일상생활의 행위에 근거해 짤막하게 한마디로 단언

한 것에서 역시 마조의 특출한 선기(禪機)를 느끼게 합니다.

 
마조가 직접 설파(說破)한 平常心이란 이렇습니다. “평소의 마음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일부러 꾸미지 않고

이러니저러니 判斷을 하지 않으며, 마음에 드는 것만을 좋아하지도 않고, 단견상견(斷見常見)을 버리며,

범성(凡聖)을 구분하는 생각과 멀리 떨어져 있는 마음을 가리킨다. 경전에 이런 말이 있다. ‘범부처럼

행세하지도 않고 성인 현자처럼 행세하지도 않는 것이 바로 보살행이다.’ 지금 이렇게 걷다가 곧 멈추기도

하고 다시 앉아 있다가 편안하게 눕기도 하는 등 형편에 따라 움직이는 이 모든 행위가 바로 道다.”

 
아무리 청결하고 우아한 사람일지라도 하루에 몇 번 반드시 배설을 합니다. 대소변을 배설하는 것은 인간이

건강하게 살고 있다는 증거이죠. 여기에 청결과 불결을 分別할 소지는 없습니다. 마조의 말처럼 있는 그대로

넘치거나 부족함이 없으면 거기에 眞理가 있는 것이죠. 자칫하면 철학적으로 생각됐던 생로병사의 진리가

마조 이후 식욕과 배설이란 가장 원시적인 생리 기능면에서 생각하게 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평상심시도’는 일상의 마음이 곧 道라는 이야기입니다. 어려운 것이 아니죠. 진리(眞理)는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일상의 삶이 道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삶에서 진정한 정도(正道)와 중도(中道)란

우리 모두가 平常心을 유지하는 일인 것이지요.

 

마조는「無造作, 無是非, 無取捨, 無斷常, 無凡無聖!」이것을 일러 곧 平常心이라 했습니다. 일부러 造作하지

않고,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으며, 취하고 버리지도 않고, 죽으면 끝으로 단절된다거나 영원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범부도 아니고 성인도 아닌 것이 바로 평상심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오염(汚染)된 중생(衆生)의

마음이 집착심(執着心)이면서 분별심(分別心)이고, 오염 안 된 本來마음이 곧 平常心이고 불도(佛道)인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화엄경(華嚴經)》에서는 “마음과 부처 그리고 중생(衆生), 이 셋은 차별(差別)이 없다”고 했습니다. 바로

‘마음이 도(道)’이고, ‘마음이 부처’라는 얘기이지요. 그리고 성인(聖人)과 범부(凡夫)가 차이가 없습니다.

한마음 깨치면 부처이고 깨치지 못하면 범부이고 중생인 것이죠. 그러니까 부처와 범부는 다만 깨끗하고

더러움에 물든 差異라는 말씀입니다.

 
선입견(先入見), 편견(偏見) 등 分別心 없이 보면 本來 모습이 그대로 보입니다. 執着하고 取捨選擇하는

애증(愛憎)심으로 보기 때문에 서로 어긋나서 그르치게 보이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오염된 중생(衆生)의

마음이 억지로 꾸민 造作된 마음이고, 執着心이고 分別心입니다. 그러므로 오염이 안 된 本來의 마음이

平常心인 것이죠. 깨달은 道人이라고 별다른 특별한 마음과 신통이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럼 이렇게 重要한 平常心을 어떻게 運營하면 좋을까요?

 

첫째, 지키는 바 신의(信義)가 여일(如一)한 것입니다.

무슨 일이나 정당한 곳에 입각했거든 그 信念이 항상 환경을 超越하여 환영과 배척이 능히 마음을

더하고 덜하게 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리고 환란과 영화(榮華)가 능히 마음을 變하게 하며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것이 平常心입니다.

 
둘째, 교제(交際)의 精神이 항상 원만하고 순일(純一)한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은의(恩誼)로 맺어진 이상 그 정신이 능히 파당(派黨)에 초연하고 증애(憎愛)에 끌리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은혜를 베풀 때에도 마음이 순일한 것이 평상심입니다.

 
셋째, 부귀빈천(富貴貧賤)에 처해도 感情이 항상 담박(淡泊)한 것입니다.

가난하여도 가난한 바에 구구한 바가 없고, 부(富)하여도 넘치는 바가 없습니다, 그리고 금의옥식(錦衣玉食)

을 하더라도 교만하지 않고, 추의악식(醜衣惡食)을 하더라도 부끄럼이 없는 것이 평상심입니다.

 
넷째, 편안함과 위태로움을 당해 精神이 오직 전일(全一)한 것입니다.

편안할 때도 항상 조심하고, 위급할 때에도 항상 규모(規模)와 절도(節度)를 범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한가히 지내거나 난중(亂中)에 처하나 그 부동(不動)하고 유유(悠悠)한 精神이 조금도 變하지

않는 것이 평상심인 것이지요.

 
그러나 사실 말이 쉽지 平常心이 그리 쉬운가요? 그러니까 저마다 道를 닦아 平常心을 운영하려는

것이지요. 평상심 공부 잘한 사람이 참 道人입니다. 그리고 빈부귀천 고락간에 도심(道心)이 일관하는

사람이 큰 도인입니다. 우리 ‘평상심공부’ 잘하여 참 도인, 큰 도인이 되면 어떨 까요?

 
 

원기 99년(2014) 7월 9일 덕 산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