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가난한 절이 그립다 / 법정 스님

장백산-1 2015. 12. 26. 00:52

 

가난한 절이 그립다 / 법정 스님         

 

가난한 절이 그립다 / 법정 스님

 

옛 스승은 말씀하셨다. "道를 배우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먼저 가난해야 한다. 가진 것이 많으면

반드시 그 뜻을 잃는다. 예전의 출가 수행자는 한 벌 가사와 한 벌 바리때 외에는 아무것도 지니

려고 하지 않았다. 사는 집에 집착하지 않고, 옷이나 음식에도 생각을 두지 않았다.  이와 같이

살았기 때문에 오로지 道에만 專念할 수 있었다."

 

이런 법문을 대할 때마다 나는 몹시 부끄럽다. 지금 내가 지니고 있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누구나 할 것 없이, 한 生覺 일으켜 살던 집에서 뛰쳐나와 入山 出家할 때는 빈손으로 온다.
이 世上에 처음 올 때도 빈손으로 오듯이...이 절 저 절로 옮겨 다니면서 이런 일 저런 일에 관계

하다 보니 걸리는 것도 많아지고 가진 것도 많아지게 된 것이다. 지닌 것이 많을수록 수행의 길

과는 점점 멀어진다.

 

出家 修行僧을 다른 말로는 '비구'라 한다. 산스크리트에서 音으로 옮겨진 말인데 그 뜻은 거지

(乞士)다. 印度에서는 모든 수행자들이 전통적으로 음식을 탁발에 의해 얻어먹기 때문에 이런

거지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일반 거지와는 달리 밥을 빌어서 먹으면서도 그 指向하는 바가

다르다. 출가 수행자는 밖으로는 飮食을 빌어먹으면서 肉身을 돕고, 안으로는 부처님의 法을 빌어
지혜목숨(慧命)을 돕는다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이와 같은 수행 거지들이 모여 사는 곳이 절이다.

時代의 흐름에 따라 옛날과 한결같을 수 없는 것은 수행자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시대의

어떤 흐름 앞에서라도 修行者의 根本精神인 위 두 가지 根本精神을 잃는다면 수행자의 存在 意味는

사라지고 만다. 수행자들이 사는 세계를 흔히 출세간(出世間)이라고 하는데, 생활양식이 世俗이나

다름이 없다면 굳이 出世間이라고 말할 것이 무엇인가.

 

오늘날 山中이나 都市 가릴 것 없이 수행자가 분수르르 넘고 흥청거리는 것은 뜻있는 사람들이 한결

같이 지적해 온 바다. 나라 안이 온통 경제 위기로 인해 일터를 잃은 失業者가 무수히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살길이 막막하여 스스로 목숨을 끓는 사람들이 늘어만 가는 지금 이런 참담한 현실을 망각한

씀씀이를 함부로 하면서 흥청거릴 때인가.

 

지난봄, 볼 일이 생겨 몇 차례 내가 예전에 있던 절에 가서 2, 3일씩 묵고 온 적이 있다. 내가 혼자서

조촐히 살던 때와는 달리 모든 것이 넘치고 있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施主의 物件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옛 스승들은 한결같이 가르치신다. 배고프고, 가난한

데서 수행자의 菩提心이 싹트는 것이라고. 시주의 은혜를 많이 입으면 그 무게에 짓눌려 제정신을 차

리기가 어렵다.

 

휴정선사도 그의<선가구감>에서 출가 수행자에게 간곡히 타일렀다.
"출가하여 수행자가 되는 것이 어찌 작은 일이랴. 편하고 한가함을 구해서가 아니며, 따뜻이 입고

배불리 먹으려고 한 것도 아니며, 명예와 재물을 구하려 해서도 아니다. 生과 死를 免하려는 것이며,

煩惱를 끊으려는 것이고, 부처님 智慧를 이으려는 것이며, 번뇌 망상으로 갈등하는 수렁에서 뛰쳐

나와 중생을 건지기 위해서다. "

 

가난한 절에서 살고 싶은 것이 내 소원이요, 염원이다. 보다 단순하고 간소하게 사는 것이 修行者로서

本質的인 삶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한 施主의 갸륵한 뜻으로 吉祥寺를 세워 開院하던 날, 나는

대중 앞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요즘 절과 교회가 호사스럽게 치장하고 흥청거리는 것이 이 時代

의 流行처럼 되고 있는 現實에서, 이 절만은 가난하면서도 맑고 香氣로운 淸淨한 도량(道場)이 되었으

면 좋겠다고...

 

어떤 종교 단체를 막론하고  그 시대와 후대에 모범이 된 信仰人들은 하나같이 가난과 어려움 속에서
믿음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다는 歷史的인 事實을 想起시켰다. 또한, 이 절은 佛子들만이 아니라
누구나 부담 없이 드나들면서 마음의 平安과 삶의 智慧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私席에서 몇 차례 밝힌 바 있듯이, 내 자신은 施主의 뜻을 받아들여 절을 일으키는 일로써 내가 할 일

끝난 것이다. 運營은 이 절에 몸담아 사는 사람들이 알아서 할 일이다. 절을 세우는 데에 함께 동참

한 크고 작은 시주들에게 나는 늘 고마움을 간직하고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는 마음에서 기꺼이

참여한 시주의 공덕은 이 도량이 존속되는 한 결코 소멸되지 않을 것이다.

 

이 機會에 한 가지 밝혀 둘 것은, 절은 어떤 개인의 재산이 아니라 종단의 공유물이라는 사실이다.
시주가 이 도량을 나에게 의탁하여 절을 만들었다고 해서 어찌 내 개인의 절일 수 있겠는가. 吉祥寺

마치 내 個人 所有의 절인 줄로 알고  그동안 京鄕  各地의 많은 사람들이 물질적인 도움을 請해

올 때마다 나는 참으로 곤혹스러웠다. 낱낱이 응답을 못 해 드린 점 이해해 주기 바란다.

 

현재 내가 몸담아 사는 산중의 오두막은 여러 가지로 불편한 환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곳에서 單純하고 簡素하게 내 式대로 살 수 있기 때문에 일곱 해째 기대고 있다. 어디를 가보아도

내 그릇과 분수에 넘치는 것을 감당할 수 없어, 나는 이 오두막을 居處로 삼아 살고 있는 것이다.

거듭 밝히는 바이지만 나는 가난한 절, 청정한 도량이 그립고 그립다.

                                   

-『오두막 편지』中에서- -산방한담(山房閑談) 월간 맑고 향기롭게 2012년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