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석과불식( 碩果不食)’

장백산-1 2016. 1. 16. 17:03

‘석과불식’

앙상한 가지를 직시하라

 


데스크승인 2013.10.14  구미래 | 불교민속학자   


 

마지막 남은 ‘씨과실’은 모든 生命에 있는 ‘佛性’ 그것을 싹틔울 때 보물보다 귀한 꽃 피울 수 있어

 

음력9월은 가을의 마지막 달이다. 단풍이 무르익어 가을이 절정에 달하는 시기건만 절기상으로는

이미 겨울맞이 채비를 앞둔 셈이다. 9월을 달리 추말(秋末).현월(玄月)이라고도 부른다. ‘추말’은

마지막 가을이라는 뜻이요, '현월'은 만물이 생명을 다하여 그 색깔이 검게 변함을 뜻한다.


우주만물은 한순간도 머묾 없이 시시각각 변하지만 그 변화는 ‘순환’이라는 원리를 동반한다.

우리는 매순간 지난 시간과 단절되는 직선의 시간을 살아가면서도 크고 작은 無數한 循環의 圓을

그리며 나아가는 것이다. 하루하루의 거듭되는 순환, 달과 계절의 순환, 생명 있는 존재들의 나고

죽는 순환이 모두 그러하다. 났다가 없어지고 흥했다가 멸하는 모든 循環의 現象이 매우 自然스런

모습으로 보이는 것은 이러한 모든 循環이 自然의 理致 안에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주역〉에서 9월은 산지박(山地剝) 卦에 해당한다. 음(陰)이 가득 차올라 하나밖에 남지 않은

꼭대기의 양(陽)의 괘가 위태롭게 보인다. 이 卦는 山이 무너지는 形相이라 64괘 가운데에서

가장 어려운 狀況을 나타내고, 여기에 해당하는 운세도 ‘가면 불리하다’는 해석이 나온다고 한다.


이에 신영복 선생은 山地剝의 卦에서 늦가을의 감나무가지 끝에 까치밥으로 남은 한 개의 감을

떠올리고, ‘씨과실은 먹지 않는다’는 의미의 석과불식(碩果不食)의 이치를 말했다. 열매와 잎이

모두 떨어지고 삭풍에 남아 있는 마지막 과실을 먹지 않고 땅에 심어 새봄의 싹으로 돋아나게

하는 것, 이것이 碩果不食의 敎訓이다. 그는 또 마지막 까치밥에서 最後의 良心, 最後의 理想을

보았다. 個人 뿐만이 아니라 한 社會, 한 時代의 良心과 理想은 결코 사라지는 법이 없다는

메시지를 선언한 것이다.


씨과실은 하나의 象徵이다. 絶望이 곧 希望이며 가장 어려운 逆境도 希望이라는 言語로 읽을 수

있다는 변증법을 이야기하기 위함이다. 그러니 마지막 남은 씨과실마저 떨어진 벌거벗은 앙상한

나무에겐 希望의 機會조차 없다는 뜻이 아님은 물론이다. 일상적으로 보는 마지막 까치밥에서

보이지 않는 까치밥의 理致를 알아차리는 그 마음이 바로 가장 소중한 씨과실이기 때문이다.


불교적으로 해석하면 박(剝) 괘의 형상도, 마지막 남은 씨과실도 모든 生命에 核처럼 간직된

불성(佛性)을 뜻한다. 불자가 아니더라도 모든 사람들이 간직하고 있는 善하고 天眞無垢한

본래성품(本性)을 싹틔울 때 어떤 값진 보물보다 귀한 꽃을 피울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마조(馬祖)스님은 깨달음을 찾는 제자에게 “너의 寶物倉庫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어찌

밖에서 깨달음을 찾으려 하는가”라고 말했다. 제자가 “제 보물창고가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묻자 다음과 같이 답했다. “지금 묻고 답하는 그것이 바로 보물창고지.”  일체가 부족함 없이

갖추어져 있으며 아무리 써도 바닥나지 않는 자신의 보물창고가 있건만 그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중생일 것이다.


역경에 처했을 때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잎사귀를 떨구고 裸木으로 서는 일이며, 앙상하게

드러난 裸木을 直視하는 일이라고 했다. 幻想과 거품을 걷어내고 화려한 의상을 벗으면 앙상한

가지에 마지막 남은 까치밥이 드러나고, 그제야 자신의 보물창고를 열어 마음껏 보물을 사용하

게 되지 않을까.


[불교신문2953호/2013년10월16일자]